우리 부부는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오기 전 대부분의 짐을 정리하고 오기로 결정했다. 평소 미니멀라이프를 동경해 왔던 내게 이사는 더없는 좋은 기회일 거 같았고 아내의 동의를 받아 진행한 것이다. 약 두 달 전부터 불필요한 짐들을 하나씩 정리해 나가면서 마치 마음의 짐도 하나씩 내려놓는 것 같은 신기한 느낌을 받곤 했다. 당황스럽게도 TV를 없애는 건 아내가 제안을 했는데 가족 모두의 동의로 과감히 처분했다. 솔직히 아쉬운 마음은 우리 집 남자들뿐이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같은 평수의 집이지만 짐이 줄어들어 공간이 더 넓고 깨끗하게 느껴졌다. 지금도 꼭 필요하지 않은 건 사지 않다 보니 그럭저럭 잘 유지가 되고 있다. 그중 제일 잘 비웠다고 느끼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내 우려와 달리 바로 텔레비전이다. 예전엔 퇴근 후나 휴일에는 자연스레 TV 앞에 멀뚱히 앉아 채널을 돌리며 시간을 보내다 잠이 들곤 했다. 난 결혼 전 혼자 살 때부터 TV가 꺼져있으면 왠지 공허함이 느껴져 싫었는데 결혼 후에도 자연스레 그 감정이 이어진 것 같다.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블레즈 파스칼은 "인간의 불행은 조용한 방에 혼자 앉아있지 못하는 데서 시작된다."라고 했다. 아마도 그때의 나는 '내면의 날 조용히 바라볼 용기'가 없었지 않나 싶다.
우리 가족의 일상은 TV가 없어지자 훨씬 긍정적으로 바뀐 경험을 하고 있다. 물론 가끔은 최신 프로그램을 보지 못해 아쉬울 때가 있다.
TV 하나만 없어졌는데 우리에게 지금까지 네 가지의 긍정적인 효과가 생겼다.
첫째, 가족 간의 대화가 자연스레 많아졌다. 일상적인 소소한 대화부터 가족 모두의 중요한 계획까지 대화를 나눌 기회가 훨씬 많아져 유대감이 끈끈해졌다.
둘째, 여유가 생긴 거실에 그동안 베란다에 놓아두던 화분을 옮겨와 관심을 갖고 키울 수 있게 되었다. 집안 분위기가 생기가 넘치고 공기가 좋아진 건 덤이다.
셋째, 여가시간이 늘어나자 각자의 취미활동을 즐기게 되었다. 아들은 방에서 기타 연습을 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우리 부부는 독서를 확실히 많이 하게 된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돌이켜보면 TV를 없앤 것에서 시작이 된 것이었다.
넷째, 좋아하는 음악을 아내와 함께 즐길 기회가 늘었다. 음악을 들을 때 몰입하고 집중이 가능해져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카타르시스'를 가끔 느끼곤 한다.
음악을 전공한 해박한 아내의 설명 덕분에 가요만 들었던 내가 클래식을 사랑하게 되었고, 요즘은 아르투어 쇼펜하우어가 말한 "인간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예술에 있다."라는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걱정과 욕심을 잠시 내려놓고 아무런 생각 없이 오로지 선율에만 집중할 때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작은 거실에서도 이런 감동을 받는데 오케스트라 연주를 실제 현장에서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들지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올해에는 아내의 조언을 받아 작은 음악회부터 다녀보기로 결심했다.
살다 보면 TV가 다시 우리 거실을 차지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TV를 없애자고 제안한 아내 덕분에 난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매일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산책을 하고 음악을 사랑하며 글쓰기를 즐기고 있다.
좋아하는 취미가 생기다 보니 일상이 활기가 넘친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았다. 바로 지금, 내가 숨 쉬는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면 되는 것이었다.
당신의 오늘도 향기로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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