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인생을 살다 보면 힘든 위기를 겪는다. 태어날 때부터 부잣집에서 태어난 사람이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사람이나 위기의 순간은 반드시 찾아온다.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 된 나에게도 세 번의 위기가 찾아왔었다.
첫 번째는 학창 시절 지인의 사기로 아버지 사업이 망하면서 우리 집 가세는 순식간에 기울었고 TV 속 드라마에서나 보던 빨간 딱지가 온 집안에 붙을 정도로 심각했었다. 내가 학창 시절에는 무상교육이 아니다 보니 학교마다 육성회비를 내야 했는데 그때의 난 제때 낸 적이 없었다. 그래도 부모님은 돈을 마련하고자 하루하루 힘들게 일하시며 감사하게 나를 키워주셨다. 학생으로서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오직 이 악물고 공부해서 장학금을 받아 부모님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고 싶었고 목표가 간절했는지 실제로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대학의 진로 또한 학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등록금이 전액 면제되는 사관학교에 입학했다.
두 번째는 직업군인 시절에 빗길에 끼어드는 차를 피하다 커브길에서 중앙 콘크리트 가드레일과 측면 보호대를 돌면서 세 차례나 충돌하는 대형사고를 겪었다. 사랑하는 나의 첫째 딸이 아내의 뱃속에 있을 때였다. 그 도로는 폭이 좁고 구불구불한 구간이 많았고 평소 통행량이 많은 도로라서 연쇄 추돌사고로 이어지지 않은 게 천운이라고 지인들이 말했을 정도였다. 충돌을 하며 의식을 잃기 전까지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사랑하는 아내와 뱃속에 있어 아직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이름도 없는 내 딸, 그리고 평생 고생만 하신 어머니 걱정을 하며 의식을 잃었었다. 내 뒤를 따르던 차들은 불과 몇 미터 전에서 차를 멈출 수 있었고 덕분에 난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얻었다.
최근에는 코로나가 한창 유행할 때 백신과 코로나의 후유증으로 왼쪽 청력을 잃게 되었고 온몸의 두드러기가 발진해 1년 넘게 독한 약들을 먹으며 살았을 때이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다니던 회사는 빈번한 인력 교체와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업무량이 많아 스트레스가 많았고 수면 부족까지 겹쳐 나의 일상은 날이 갈수록 피폐해져만 갔다. 결국 공황장애까지 진단받고 병원 치료를 시작했다. 그 당시 누가 봐도 나의 몸은 정상이 아니었다. 자존감은 바닥을 찍었고 몸무게는 120kg이었다.
인간은 위기를 겪고 나서도 각자의 사정으로 그때의 경험을 싶게 망각하고 지금을 살아간다. 나도 두 번의 위기를 겪고 당장 닥친 현실을 맞이하며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망각하고 내 삶의 소중한 의미를 잊은 채 살았다. "여보! 이러다 당신 죽을 거 같아요. 지금이라도 당신이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아봐요. 당신이 진짜 하고 싶은 게 뭐예요?" 아내의 사려 깊은 물음에도 난 아무런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나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부끄러웠다. 그냥 너무 창피해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아내의 질문 이후 난 달라지기로 결심했다. 어린 시절 '돈'과 어른이 되어 '건강과 일'에 대한 위기의 순간들을 겪어보니 이제야 진지하게 삶의 의미를 찾고 싶어진 것이다. 그때부터 아내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나만의 여정을 시작했다.
평소 잠이 많았던 난 건강을 되찾고 나의 습관을 바꾸기 위해 제일 싫어하는 것부터 바꾸기로 결심했고 새벽 4시에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120kg의 육중한 내 몸은 정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조금만 걸어도 무릎과 발바닥 통증이 심했다. 병원에선 피로골절이니 당분간 무리하지 말라고 했지만 난 그때도 압박붕대를 감고 무작정 걸으며 날 한계점까지 밀어 넣었다. 운동화 밑창과 뒷굽이 터져 나올 정도로 반복했다. 오늘도 난 새벽에 일어나 걸었다. 그리고 어느덧 내 몸무게는 정확히 80kg이 되었고 정확히 40kg이 내 몸에서 빠져나갔다. 얼마 전 아내가 자신이 긁지 않은 복권 같은 남자와 결혼했다고 농담을 했고 아내 지인들은 다른 남자와 사는 기분이 어떠냐고 농담을 했다고 한다. 우스갯소리지만 그동안 견뎌와 준 내 무릎과 의지에 감사하고 있다.
건강을 되찾기 시작하면서 정신 또한 맑아지는 게 느껴졌고 내 삶의 의미를 찾아 나섰다. 독서를 하기 시작했고 끊임없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걸으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고 내 안에서 답을 주면 휴대폰에 메모하기 시작했다. 책장에 책이 쌓여가고 질문에 대한 답이 늘어날 때마다 마치 컴컴하고 눅눅한 터널을 외로이 혼자 불 없이 더듬더듬 걷다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엔 촛불이 시간이 좀 더 지나자 성능 좋은 랜턴이 내 앞을 밝혀주기 시작했다. 저 멀리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터널은 밝은 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답을 찾아 아내에게 제일 먼저 말했다. 아내는 누구보다 기뻐해 주었고 응원해 주었다.
타인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 따라 정해지는 '실패와 성공'이라는 단어들은 이제 나에게 의미가 없어졌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 정한 소중한 내 꿈을 포기하는 일은 앞으로 없을 것이다. 분명 그 과정 속에도 풍파는 또다시 찾아올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 내 인생의 성능 좋은 나침반이 생겨 방향을 잃을 걱정은 없다. 단지 새벽에 눈을 뜨고 다시 소중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음에 매일 감사함을 느끼고 내 꿈을 천천히 일궈 나가는 과정을 순간순간 설레며 즐긴다. 어제 아내와 잠시 틈을 내어 집 근처 도서관에서 책을 보는데 갑자기 아내가 눈물을 흘리고 있어 깜짝 놀라 물어보니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하고 감사해서 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런 아내가 난 참 고맙고 사랑스럽다.
나는 이미 부자가 되었다.
돈의 양으로 기준을 삼는다면 부자는 아니다.
하지만 매일 아무도 없는 길거리에 떨어진 쓰레기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치우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내 것을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진 진짜 부자가 되었다.
이건 작년에 길을 걷다 멈춰 휴대폰에 메모한 글 중 하나인데 부끄럽지만 일부만 공개한다.
부자는 단지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풍요로운 사람'인 걸 깨달았다.
인간이 매번 신에게 매달려 간절한 기도를 하는 걸 보면
신은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 있고, 인간에게 줄 수도 있는 '풍요로운 존재' 다.
그렇다면 반대로 신의 뜻대로 살아가고 있는 진짜 부자는 인간 중에 과연 몇이란 말인가.
만약 내가 신이라면 바쁜 나를 대신해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주는 소수의 인간이 얼마나 기특하겠는가.
떡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겠다.
당신의 오늘도 향기로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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