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가르침
장자(莊子)가 산속을 걷던 중 큰 나무를 보았는데 그 옆에 목수가 있는데도 베려하지 않았다. 장자가 그 까닭을 물었다. 목수가 답하기를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때 장자가 말했다. "이 나무는 쓸모가 없기 때문에 타고난 수명을 다 누리는구나." 장자의 '소요유(逍遙遊)' '산목(山木)'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영어의 specification, spec이라는 말은 무생물인 기계나 소프트웨어 등 제품의 명세에 관해 사용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만 경쟁에서 타인과 비교할 만한 능력치를 의미하는 속어로 종종 사용된다. 무생물에 사용되는 영단어를 두 나라에서만 인간에게 적용하여 사용한다. 우리는 명문 대학을 가기 위해 소위 스펙을 쌓는다. 막상 대학에 들어가면 취업이라는 다음 목표를 위해 온갖 자격증을 따며 스펙을 쌓는다. 그뿐인가? 취업을 해선 승진을 위해 또다시 스펙을 쌓는 행위를 반복한다. 스펙이라는 영원한 굴레 속에서 살고 있는 듯하다.
스펙이 좋으면 쓸모[쓸만한 가치] 있는 사람이고 스펙이 나쁘면 쓸모없는 인간이 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고귀한 인간이 무생물화 되어 평가되는 서글픈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급격한 산업화를 통해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그 과정 속에 오직 성장 위주의 경제논리로 인간의 존엄성은 무시되고 짓밟혀 온 것이다.
이제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두 번째 이뤄냈다. 한국전쟁 이후 고도성장으로 첫 번째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면 2024년은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문화적인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것이다. 그동안 잘 먹기 위해서만 앞만 보고 달렸다면 이제는 우리가 그동안 잊고 살았던 인간의 존엄성을 일깨워 잘 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기가 다가왔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스펙으로 우리 스스로를 판단하지 말자. 스펙이 안 좋아 취업이 안 되는 사람들이 마치 쓸모없는 인간처럼 치부되는 문화가 지금처럼 지속된다면 우리의 미래는 희망이 없다. 정해진 틀 안에서 벗어난 인간도 존중받고 대접받을 때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천재들은 비로소 날갯짓을 활짝 펴고 비상을 할 것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장자 '사목 편'의 우화는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준다. 인간의 고귀함을 존중할 수 있는 진정한 문화 선진국, 우리나라를 간절히 고대해 본다.
잊지 마세요. 당신의 오늘도 향기로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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