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함과 예의
고슴도치는 추운 날 얼어 죽지 않기 위해 서로 달라붙어 하나가 된다. 하지만 서로의 가시들로 통증을 느끼곤 다시 떨어진다. 추위를 견디기 위해 떨어졌다 붙었다를 반복하다 결국 상대의 가시를 견딜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찾아 체온을 나눈다고 한다. 쇼펜하우어는 '홀로서기와 함께하는 삶' 사이의 갈등을 고슴도치의 우화를 통해 풀어냈다.
쇼펜하우어는 서로 견딜 수 있는 적당한 간격을 "정중함과 예의"라고 했다. 영화 "킹스맨"에서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Manner, Maketh, Man) 이라는 주인공 해리 하트의 명대사가 생각난다. 원래 이 명언은 영국의 신학자이자 교육자인 윌리엄이 한 말로 윈체스터 칼리지의 표어로 더 유명하다.
우리는 처음 보는 사람보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상대에게 상처를 줄 가능성이 높다. 친밀감이 상대를 자신의 욕망과 동일시하여 자신의 소유물로 여길 가능성이 높아져, 때로는 아픔을 주는 막말을 하게 된다. 우리는 쇼펜하우어처럼 평생을 혼자 지내기란 쉽지 않다. 많은 관계를 형성하고 특히 가족과 같은 경우는 평생을 함께한다. 수많은 관계들 속에서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오랜 시간 잘 지내길 원한다면 상대에 대해 정중하고 예의 있는 태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가장 가까운 가족은 더욱 그렇다.
상대가 나의 기대와 다른 행동을 할 때 우린 종종 욱하는 마음이 올라온다. 몇 시간만 지나도 그런 자신의 행동이 부끄럽고 후회가 됨을 한 번쯤은 겪어봤을 것이다. 나도 사랑하는 가족에게 한 번씩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할 때가 있다. 내 기대와 욕심과 다른 행동을 발견할 때가 바로 그때다. 하지만 그럴 때는 일단 그곳을 벗어나 산책을 하며 그곳에서 벗어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고슴도치와 같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어젯밤에 아내와 아들에게 화를 냈다. 화가 나는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말을 한 것이다. 말을 하고는 밖에 나와 한참을 산책하면서 얼마 전 읽은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강용수 지음]" 중 고슴도치의 교훈이 떠올랐다. 내 욕심과 감정의 그릇 크기를 들켜버린 거 같아 창피함에 한참을 집 밖에서 서성였다. 후회가 되었다. 얼마 전 내가 블로그에 쓴 글 "말이 가진 힘"에서도 언급했듯이 한번 입 밖을 떠난 말은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 집으로 돌아와 나로 인해 상처받은 아내와 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했고, 용서를 구했다. '정중함과 예의'를 가슴속에 다시 새기며 조금 더 성숙해질 나를 기대해 본다.
잊지 마세요. 당신의 오늘도 향기로울 거예요.
Go toget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