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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뛰지 맙시다.

by 자유 창조

온 가족이 성수동 나들이를 함께 한 날이었다. 남자 둘은 성수동을 가본 적이 없었고 여자 둘은 가본 적이 있었으나 이번 나들이는 최근에 친구들과 함께 다녀온 딸이 주도했다. 오전부터 저녁까지 딸이 꼼꼼하게 계획한 모든 일정을 소화하려면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야 했고 이동 중에도 빨리 걸어야만 모든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다. 2호선 성수역에서 하차하자마자 딸이 앞장을 서 걸었고 거의 경보 수준 이상으로 걷던 중 오래되어 낡은 성수역 계단 위에서 "뛰지 맙시다"라는 큼지막한 문구를 보고서야 걸음 속도를 늦추자고 내가 제안했다.






딸은 짧은 시간 안에 본인이 경험한 것 이상으로 우리에게 좋은 걸 보여주고 싶은 고마운 마음이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뛰지 맙시다"라는 문구를 보고서야 정작 우리가 함께 하는 나들이의 본질이 생각났다. 온 가족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함께 나들이를 한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을 정도로 오래되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방학 중에도 자연스레 일정들이 바빠졌고 딸이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초등학교와 다르게 체험학습을 쓰기가 여간 쉽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늦어도 되고, 실수해도 되니까 우리 조금 천천히 대화하면서 걸어가면 안 될까?"라는 나의 제안으로 간혹 예약 시간 때문에 서두른 적은 있었지만 그래도 집에 올 때까지 여유롭게 대화도 많이 나누고 함께 웃으며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다. 아내도, 아이들도 다시 계획해서 오자고 할 정도로 온 가족이 만족한 여행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예전 같았으면 10~20대 젊은이들이 모이는 핫한 곳은 번잡스럽다고 싫어했던 나조차도 여기저기 힙한 곳이 너무 좋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여보, 애들이 언제 저렇게 커서 우리를 앞장서 데리고 가죠?"라고 아내한테 말했다. 그 말속에는 나이가 들어감에 느끼는 씁쓸함이 아니라 아이들이 잘 성장하고 있는 것에 대한 대견함과 고마움이었다.






정작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 지에 대해 항상 헷갈려하면서 살아왔다. 행복을 지금의 노력이라는 대가를 담보로 먼 미래로 미뤄둔 채 각자의 위치에서 정신없이 분주하게만 살아왔다. 오늘을 계기로 조금 늦더라도 손을 꼭 잡고 함께 웃으며 걸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여보! 그리고 사랑하는 내 딸, 아들아!

우리 뛰지 맙시다.


잊지 마세요. 오늘도 당신의 하루는 향기로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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