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더미 속에서 쓰레기로 불을 지펴, 폐수에서 건져 낸 죽은 물고기를 튀겨먹는다. 쓰레기가 고인 물로 세수를 하고 쓰레기 속에서 진주를 캐내듯 아직 쓸 만한 화장품과 장난감을 발견해낸다. 그날은 수지맞은 날이다. 쓰레기가 산을 이루는 중국의 한 마을에서 사는 쓰레기 재활용 공장을 운영하는 가족들의 이야기이다.
영화는 쓰레기를 분류하고 고된 노동을 하는 두 가족을 보여준다. 한 가족은 쓰레기 재활용 공장을 운영하는 사장의 가족이고, 다른 가족은 그 사장에게 고용된 직원 가족의 이야기이다. 같은 일을 하지만 이들에게도 사회적 계급은 존재한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양극화는 결국 '돈'이다.
쓰레기 재활용 공장의 직원 펭씨는 자식을 사랑하지만 쓰레기 삶에서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어 주지는 못한다. 그가 자신의 아이에게 배움의 기회도, 더 나은 삶을 위한 준비도 해주지 못하는 까닭은 지금 앞에 놓인 쓰레기를 아무리 분류해도 삶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술이 없으면 밥을 먹지 못한다.
영화가 주는 교훈은 단순히 '분리수거를 잘하고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자' 뿐만이 아니다. 지금 현 사회가 가지고 있는 기형적인 빈부를 타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감독은 이 사실을 영화 곳곳에서 외치고 있다. 지금 쓰레기 더미 속에서 사는 이들의 자식이 열심히 공부해서 현재의 삶보다 더 나은 삶을 산다고 한들, 사회의 구조를 타파하지는 못한다. 또 다른 개인이 짊어지어야 할 비극은 개인에서 개인으로 넘어간다.
우리는 유념해야 한다. 중국 정부가 말하는 샤오캉 사회 (물질적으로 안락한 사회)는 한 계층만을 이루는 말이 아니다. 또한 한 나라만을 이르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현대의 산업 구조와 환경을 대하는 방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쓰레기 속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할 것이다. 플라스틱 차이나가 아닌, 플라스틱 어스로 가는 길은 이미 도래해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