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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네 Mar 09. 2022

아빠가 한라봉을 들고 나를 찾아왔다.

내가 믿는 세상에 영혼은 없지만

 제주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참치덮밥을 먹으러 갔다. 한 입 먹자마자 ‘그래 이거지’ 하며 순수한 행복감이 올라왔다. 먹는 거 이렇게 좋아하는 건 백 프로 아빠를 닮아서다.

이름도 귀여운 <도로도로동>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로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먹먹한 가슴과 젖은 베개를 보면서 어제 또 자다가 울었나 보다 하고 추측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무슨 꿈을 꾼 건지 기억하지 못한다. 자는 동안 충분히 슬퍼해서일까. 요즘은 깨어있는 동안 아빠의 일이 많이 덤덤해졌다. 딱 한 번 기억나는 꿈속에서 아빠는 한라봉을 들고 멋쩍게 웃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뺏어 먹기 전에 무라”


 아니, 누가 뺏어 먹을지도 모르는 한라봉을 왜 어디서 갖고 온 건지 이상했지만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거니와, 나는 빨리 아빠를 집으로 데려가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아빠 집에 가자...”
 

 한라봉을 받아 들고 아빠 손을 잡아끌었다. 꿈쩍도 않는 아빠를 올려다보니, 그저 미안한고 무안한 미소만 짓고선 대답을 하지 못했다. 두껍한 손도, 희끄므리한 새치머리도 그대로인 아빠지만, 꿈이었다.


 꿈인데… 그냥 같이 간다고 해주지. 서럽고 밉고 슬펐다. 집에 가자는 대답 대신 손에 쥐여준 한라봉을 들고 서있다가 잠에서 깼다. 영혼이 있다고 믿지는 않지만, 그 꿈이 마지막 말 한마디 못 남기고 떠난 아빠의 마음 같아서 괜히 의미 부여를 했다. 아빠는 지켜주지 못한 행복을 다른 사람한테 뺏기지 말고 잘 살아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하필이면 한라봉이 꿈에 나와서... 제주도 여행 첫 식사였던 참치 덮밥을 먹다 말고 아빠 생각을 했다. 숙소로 가는 길, 라디오에서 박정현의 ‘꿈에’가 흘러나왔다.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난 너무 가슴이 떨려서 우리 옛날 그대로의 모습으로 만나고 있네요.’


 노래방에서 수 십 번 불렀을 오래된 노래 가사가 새삼스레 가슴에 박혔다. 그래. 어디 참치 덮밥뿐이겠는가. 세상 어디에도 아빠는 없는데 아빠를 떠올리게 하는 것은 넘쳐난다. 변한 것 없는 일상에는 황망함과 그리움이 한 겹 덧붙었다. 내가 믿는 세상에는 영혼이 없어서 아빠가 나에게 남아있을 방법은 이토록 가슴 시린 추억팔이뿐이다. 그래서 살다가, 또다른 참치 덮밥을 만난다면 나는 아주 반가운 마음으로 그 그릇을 비울 것이다.


아빠를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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