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하지 않고 내 마음 알아주기
“아줌마 오뎅.. 국물은 한 국자에 얼마예요?”
오뎅 하나에 삼백 원하던 2000년 겨울. 쭈뼛거리며 이런 짠한 질문을 하는 동네 꼬맹이 덕분에 겨우 오뎅 하나 먹고 있는 게 눈치가 보였다. 무뚝뚝한 아줌마가 종이컵 가득 국물을 퍼다 아이 앞에 놓아주었다. 아이는 잠시 망설이는 것 같더니 야무지게 입김을 불어 오뎅 국물을 마셨다. ‘아이고 짠해라. 용돈이 없나 보다.’ 사실 용돈이 없었는지 어쨌는지는 알 길이 없었음에도 참 쉽게 동정을 했다. 그리고 나는 어디 가서 저런 질문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목련 몽우리가 올라올 때쯤, 어김없이 새 학기가 시작됐다. 설렘과 긴장이 오가던 개학 첫날. 그다지 낯을 가리지 않는 나는 앞장서서 아이들을 데리고 교실을 뛰놀았다. 이런 성격 덕에 매년 반장을 했었다. 그 해에도 반장선거가 다가왔고 나는 자연스럽게 후보로 거론되고 있었다. 그 시절 반장이 되면 학기 초에 롯데리아 불고기 버거를, 여름 방학 시작 전에 아이스크림을 한 번씩 돌리는 것이 당연한 관례였다. 마음이야 반장을 하기 위해서 몇 번이고 햄버거를 쏘고 싶었지만, 열 살짜리 꼬맹이는 결정권이 없다. 저녁을 먹고 온 가족이 둘러 누워 티브이를 보는 시간. 스리슬쩍 엄마에게 반장선거에 나가도 되냐고 물었다. 엄마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올해는 그냥 넘어갈까? 반장 하면 돈이 너무 많이 든다”
덤덤하게 말했지만 나를 보지 못하는 얼굴에 미안함이 서렸다. 괜한 말을 한 것 같아 어린 마음에도 미안함이 번져왔다.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과는 별개로 눈치가 없었던 나. 다음날 학교에서 반장선거 출마하라는 담임 선생님의 권유에 아주 해맑은 얼굴로 “엄마가 반장 하면 돈 많이 든다고 하지 말래요!”하고 대답했다. 그때 그 선생님의 당혹스러워하는 표정과 순간의 정적을 잊을 수 가없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하루 종일 그 순간이 떠올라 마음이 불편했다. 조금 억울하기도 했던 것 같다. 집에 돌아오니 상황이 더 별로였다. 말 많은 동네 아줌마들 사이에서 이 정도의 이야기는 빠르게 엄마에게 전해졌다. 그녀는 민망함을 감추지 못하고 괜한 말을 전했다며 나를 꾸짖었다. 속상한 마음으로 방에 들어왔다. 지난겨울, 오뎅 국물 한 국자 가격을 물어보던 꼬맹이 생각이 났다.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내가 아니길 바랐건만. 사실 그 다짐은 불가능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문뜩 그 일이 떠올랐고 반장 그까짓 게 뭐라고 여태 마음에 담아두는 나도 참 웃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반장선거에 나가지 못한 열 살 소녀는 분명 굉장히 슬펐다. 살면서 원하는 것을 전부 가질 수 없다는 걸, 그 나이에 맞는 방법으로 배운 것이리라. 하지만 이 일이 더 이상 나에게 슬프거나 속상한 기억이지만은 않다. 그 이유는 괜히 딸을 꾸짖은 엄마의 마음을 이해해서도 아니고, 과거의 일이 아무렇지 않기 때문도 아니다. 서른 살이 되기까지 수많은 ‘오뎅 국물’을 마주쳤다. 그 과정에서 애써 그것을 원치 않는 척 외면하기보다는 ‘그래, 내가 저 오뎅 국물이 먹고 싶구나!’ 하고 인정하는 일이 나를 위로하는 첫걸음임을 깨달았을 뿐이다.
그리고 나면 갖고 싶은, 하지만 당장 가질 수 없는 무엇이 있을 때 ‘아이고 짠해라’ 말하는 자기 연민의 마음보다는 ‘오뎅 국물, 한 국자에 얼마예요?’ 하고 물어볼 용기가 생기곤 하더라. 생각해보면, 그때 꼬마 아이는 종이컵 한가득 뜨거운 오뎅 국물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