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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네 Feb 21. 2022

홍대병을 겪지 않은 나는 싫어 (상)

10년짜리 사춘기의 시작

 붓 한번 제대로 들어본 적 없는 내가 무려 홍대 미대에 붙었다. 말도 안 되게 운이 좋았다. 대학입시를 하는 2010년. 실기 없이 성적과 면접만으로 신입생을 뽑는 전형이 생긴 것이다. 차를 타고 서울에 올라오는 길. 아빠는 내가 미대에 합격한 이유가 본인이 실기를 시켜주지 않은 덕분이라는 논리적인 망언을 하고 슬쩍 내 눈치를 보았다. 잠시 뒤, 믿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사과도 덧붙였다. 사과를 기대하지 않아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어쨌든 괜찮았다. 모로 가도 서울로 가면 된다. 그저 대구를 떠난다는 이유만으로도 마음이 홀가분했다. 어차피, 아빠와 나의 우여곡절은 몇 시간 운전 길에 풀어낼 내용도, 건조한 사과 한마디로 눈 녹듯 사라질 기억도 아니다.


 기숙사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트렁크에서 헐레벌떡 짐을 내리고 게시판에서 내 이름을 찾았다. '미술대학 자율전공 정이네 506호'. 딱 봐도 엘리베이터가 없는데 5층이라니. 그래, 어차피 살 빼려고 했다. 바리바리 짐을 들쳐업고서 계단을 올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기숙사는 정말 가관이었다. 책상과 매트리스로 구성된 2층 침대 4개가 놓인 모습은 흡사 닭장 같았고, 작디작은 창문에 쇠창살은 화룡점정이었다. 물론 그런 것 따위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아빠가 담배를 피우면 호적에서 확 파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싱글벙글 웃음만 났다.


 홍대는 눈을 뜨고 숨만 쉬어도 서울에 살고 있음이 실감 나는 곳이었다. 학교 정문 앞, 살면서 처음으로 연예인을 봤다. 신호등보다 밝게 빛나는 새빨간 롱 코트를 입은 사람은 바로 홍석천. 교과서에서만 봤던 국회의사당도 기숙사 옥상에 올라가면 언제든지 보인다. 소소한 것들에도 두근두근하며 설렜다. 밤마다 거리에서 버스킹 하는 사람들, 라이브 카페에서 열리는 공연들을 구경했다. 지금까지 대구같이 시시한 곳에서 살았구나 하는 억울한 마음이 들면서 더, 더, 더 이곳을 만끽하고 싶었다. 남들은 어쩌다 한 번씩 놀러 오는 동네가 나에게는 일상의 공간이라는 사실이 참을 수 없이 뿌듯했다.


 무채색 인간 같았던 나에게 이곳에서 보고, 듣고, 부대끼는 모든 것은 색색의 조각이었다. 빨주노초파남보. 폭죽처럼 쏟아지는 조각들을 정신없이 주워 담았다. 그중에 모난 조각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로. 새로운 공간, 음식, 사람. ‘전에 없던 경험’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가감 없이 나를 노출시키기에 충분한 이유였다. 문득 찾아오는 불안감과 의구심은 눈먼 쾌감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술을 마시며 밤을 새웠다. 친구들과 노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기숙사 통금시간 따위 신경 쓰지 않는 ‘쿨함’이 유치한 쾌감을 줬다. 심지어 담배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호적에서 파 버리겠다던 아빠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흔히들 말하는 담타(담배를 피우는 타임)를 가질 때마다 느끼는 동질감, 소속감은 담배보다 지독한 중독이었다. 그뿐인가 샛노랗게 탈색을 하고 귓바퀴 가득 귀도 뚫고 피어싱도 했다. 학기가 끝났을 때 나는 결국 병에 걸려있었다. 바로 홍대병. 방학이라고 내려온 딸이 시커먼 너구리 화장을 하고 소파에 누워있는 걸 본 아빠는 차 안에서 했던 사과의 말을 주워 담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대구를 벗어나면, 아니 사실은 아빠를 벗어나면 전혀 새로운 인생을 살 것이라 다짐한 탓일까. 허무하리 만큼 쉽게 얻어진 미술 대학 입학 때문일까. 세상이 만만하기도 했다. 아빠는 틀렸다는 억울함과 반발심, 당신의 도움 없이도 잘 살 것이라는 근본 없는 자신감이 뒤엉켜 있었다. 용돈을 받지 않으면 한 달은 커녕 일주일도 못 버티는 게 현실이면서.


 한 아름 주워 담은 색색의 조각은 분명 지금의 내가 만들어진 재료들이다. 하지만 주워 담기만 급급했던 그때의 나는 조각을 골라 꿰어낼 생각을 하지 못했다. 반짝반짝 예쁜 조각들이 그저 스쳐가는 걸 지켜보면서도 버려야 할 조각을 양손 가득 꽉 쥐고 있었으니. 그래서 그렇게 갈망하던 새로운 경험들을 하고 또 해도 마음속 어딘가 허전하고 답답했다. 그 이유를 돈이 없어서, 시간이 부족해서, 좋은 인맥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둘러댔다. 하지만 이 공허함의 핑계를 찾을수록 나는 불만쟁이로 변해갔을 뿐이다. 이것들을 꿰어야 한다는 사실을 눈치채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방법을 찾지 못했을 뿐.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많은 조각을 이고 지고 버티다가 나는 결국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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