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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네 Feb 14. 2022

주인이 반쪽뿐인 기억

풀어야 할 매듭은 아직 많은데

도자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가마 온도는 1200도가 넘는다고 한다. 빚고 있는 흙덩이가 단단히 굳어지는 모양을 상상했다. 뜨거운 불길이 도자기를 휘감는 모양이 사납고 거칠다. 상상 속 불길 안에 도자기였던 것이, 아빠가 담긴 관이 되었다. 둘둘 감아놓은 천주교기와 나무 관짝도 순식간에 사라진다. 믿을 수 없게도 타고 남은 백골 조각이 나의 아빠다. 상상은 시간을 거꾸로 흘러 씻겨놓은 아빠의 식은 얼굴이 되었다가 불과 일주일 전, 눈 쌓인 팔공산을 함께 오르며 내쉬던 가쁜 숨이 되어 흩어졌다.


화장을 마치고 납골당에 가던 날. 하얀 보자기로 감싼 유골함을 안고 버스에 앉았다. 뜨거운 뼛가루가 담긴 유골함은 둥그스름하니 사람 머리 같아 자꾸 쓰다듬게 되더라. "아빠 머리 같다." 옆자리에 앉은 동생에게 속삭이자 동생도 살포시 손을 얹고 쓰다듬었다. 나와 동생은 상을 치르던 내내 선택을 해야 했다. 음식은 얼마나 준비해야 할지, 영정사진은 어떤 걸로 사용해야 할지, 유골함은 얼마짜리를 사용할 것인지, 그리고 납골당 어디에 그 유골함을 놓을 것인지. 죽은 사람 자릿값도 천차만별이다. 아빠는 이제 없는데 무슨 소용인가 하고 생각하면서도 조금 더 좋은 자리에 안치시켰다.

 

아마 아빠한테 본인 자리 고르라면 손도 닿지 않는 저 높은 자리를 골랐으려나. 다시 찾아올 딸들 인사하기도 힘들게. 아빠에게 선택이란 최소한의 필요를 충족하는 것을 고르는 일이었기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당연했다. ‘이렇게 살아도 안 죽는다’는 것이 그 선택의 주된 이유였다. 죽지만 않으면 괜찮은 게 이유이라니. 하지만 나는 조금 더 좋은 것. 그걸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부모의 선택으로 인생의 많은 부분이 결정되던 어린 시절에는 더욱.


미대가 가고 싶었다. 열일곱 인생에 가장 큰 선택이었지만 그림을 그리는 일 따위 아빠 기준에 아주 쓸모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하기를 원했는데 국가에서 생활비를 지원해 준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한숨만 나올 일이다. 아버지, 저는 100미터 달리기도 20초 안에 겨우 들어오는 사람입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뒤에는 늦기 전에 실기를 시켜달라고 틈틈이 보챘다. 내 의지가 얼마나 굳건한지 보여주기 위해 단식투쟁도 해봤다. 무려 치킨을 두고 방문을 닫는걸 보고서야 아빠는 내가 진심이라는 걸 믿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를 불러 앉힌 뒤 자신의 생각을 알려줬다.


“... 너 미술 시켜주는 건 투자가 아니라 투기인 것 같다.”


그때 이후로 더 이상 미술을 시켜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모래 한 움큼 입에 문 듯한 퍼석한 삶. 딸이 그런 모양의 삶을 살기를 바라시느냐 묻고 싶었다. 먹고사는 테두리 바깥의 삶을 그려보신 적이 없느냐고. 그러나 아빠와의 응어리는 도무지 정리할 수 없는 잡동사니 같아서, 마음속 서랍장 어딘가에 욱여넣고 문을 닫았었다. 생각이 꼬리를 물다가도 그 끝에 더 이상 아빠가 없다는 낯선 사실에 닿는다. 풀지 못한 매듭은 수도 없이 쌓였는데 이제는 이렇게 뒤로 감지 않으면 아빠를 만날 길이 없구나. 주인이 반쪽만 남은 기억들이 머릿속에 나뒹굴고 있다. 그러나 나는 밉고 그리운 기억 뭉텅이를 하나하나 주워 담아야 한다. ‘우리’로서 풀지 못한 이야기가 후회로 남아 제멋대로 나를 갉아먹지 않도록. 당신의 삶에 던졌던 수많은 질문들. 그 답을 찾는 일은 이제 나의 숙제이다.


차곡차곡. 숨을 깊이 들이쉬고 내쉬며 흙을 눌렀다. 손바닥 온기가 흙으로 옮겨간다.


‘아빠, 나 요즘 도자기 만들고 있어.

     ...이거 안 해도 사는데 아무 지장은 없지만.’


하지 못한 말이 많지만 그 또한 꾹꾹 눌러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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