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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네 Feb 07. 2022

글에도 옷을 입힐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소설이 있다. 한 겨울 얼어 죽기 좋은 모습으로 벌거벗은 남자가 길가에 앉아있었다. 이 청승맞은 남자에게 얼마 있지도 않은 빵을 나눠주는 가난한 한 가정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인류애 가득한 톨스토이의 소설. 그 책을 읽은 16살 소녀였던 나는 얼마나 가슴이 따뜻하던지. ‘역시 중학생 필독도서는 다르군!’ 하고 생각했다.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아름다운 그 책. 그러나 나는 이 책을 무지 원망하게 된다.


 중학교 3학년 때 나는 반장이었다. 1학기가 끝나갈 즘 친한 친구들 몇 명을 처음으로 우리 집에 초대했다. 초대받은 인원이 쉬는 시간마다 더 늘어나는가 싶더니 결국 3학년 1반 전원이 집에 오기로 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때 살았던 우리 집은 몇십 년된,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빌라 1층이었다. 덥고 습한 여름날. 초라하기 짝이 없었던 나의 작은방에 8명의 여학생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앉지도 서지도 않은 모양새로 에어컨만 바라보고 있었다. 뒤늦게 도착한 친구들은 사태를 파악하고 현관문 앞에서 발길을 돌렸다. 찜통 같은 대구의 대낮의 열기보다, 전기세가 걱정이었던 나는 에어컨을 껐다 켰다 반복했다. 때마침 퇴근후 집으로 돌아온 아빠. 하지만 아빠는 우두커니 그 상황을 바라보다가 아무런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가버리는게 아닌가.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필요했지만 한참 사춘기였던 나에게 그런 아빠는 불편하기만 했고, 결국 이혼하고 따로 살던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엄마는

‘역시 우리 딸!’

하더니 나를 무척 자랑스러워하며 친구들과 먹을 피자를 시켜주신다고 하셨다. 그러나 딸을 위하는 마음과는 달리 엄마의 통장잔고는 텅 비어있었다. 주문한 피자의 양이 충분하지 못했던 것. 그날 내 친구들은 한 사람에 한 조각의 피자조차 먹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 날 엄마는 나를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친구들에게 인기 많고 사랑받는 사람이라고. 부족한 건 돈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나는 돈도 없이 사랑만 있다고 엄마를 원망했다. 사랑만 있는 삶은 동화처럼 아름답지 않았다.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던 톨스토이의 말이 어찌나 가증스럽던지. 그 책이 서점에 추천도서라고 놓여있는 것을 볼 때마다 울화가 치밀었다.


 이 이야기는 내가 살아온 세상의 압축본이다. 결핍으로 인한 서러운 기억들. 낮은 자존감. 돈이 행복을 주지 않는다고 믿어야만 버틸 수 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피해의식. 그 속에서 나는 행복하고 싶어 발버둥 치는 사람이었다. 몇 년 뒤,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다. 대구를 떠나 서울에 오니, 갑갑한 현실을 탈출하는 기분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서는 일을 하며 스스로 삶을 꾸려나가는 초보 어른이 되었다. 가끔 그늘진 생각이 말과 행동에서 불쑥불쑥 티가 났지만 그래도 그런대로 괜찮은 사람이 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누리고 싶었던 삶에 가까워짐을 느꼈다. 이제 서글픈 어린 시절은 아득한 기억 속 이야기일 뿐이다. 굳이 꺼내어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 캐캐 묵은 해프닝이 불쑥 떠오른 건 '문토'라는 글쓰기 소셜 살롱에 참여했을 때였다. 글이나 써볼까 하는 가벼운 생각으로 시작한 모임이었다. 첫 번째 주제는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나를 소개하는 글을 적어야 한다. 직업이나 나이, 취향 같은 것들로 나를 설명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다지 자랑스럽지도 않은 중학생 시절 이야기가 떠오른 이유가 뭘까. 글로 써내야 하는 '나'는 왠지 말로 뱉는 것보다 진지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나로 말할 것 같으면'이라는 거창한 표현의 무게감이었을지도. 나는 어떤 사람일까. 못난 마음으로, 삐뚤어진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 적 없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러나 삶이 바닥을 찍는 것 같은 순간에도 내가 여기까지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 않았었나.


“역시 우리 딸!”


 생각이 흘러 그날의 목소리가 들렸다. 실패한 순간들, 억울한 상황들, 그러나 나는 여기에 좌절할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믿음.  많이 외면했지만 지난날의 틈틈에 지금의 나를 만든 엄마의 말이 스며있었다. 그때 심었던 믿음의 말들이 뿌리를 단단히 내려, 나는 나를 지키고   있었다.  서글픈 기억이 떠오른 이유가 어슴푸레 이해되는 순간, 믿기 힘들 만큼 커다란 감정이 몰아쳤다. 외면한 기억  열여섯  소녀는 여전히 그날에 살면서 ‘이까짓  너는  이겨낼 야!’라고 응원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지 아직도 모르겠고, 사랑만 있는 삶이 동화처럼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랑이 없었다면 이만큼을 살아내지 못했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편의 자기소개글을 쓰고 나는  많이 울었다. 넘실넘실 정리되지 못한 기억들이 쏟아져 나왔다. 모임이 끝난 뒤에도 여전히 글을 쓰고 있다. 마음속에 부유하는 불안과 혼란, 상처와 슬픔을 뜰채로 떠서 이리저리 다듬어 낸다. 나를 다듬어 낸다. 가라앉을 일만 남은 감정 덩어리인  알았더니, 다듬을수록 빛을 받아 반짝한다. 글도 옷을 입힐  있으면 조금  부끄러울 텐데. 벌거벗겨 내놓은 글은 어딘가 부끄럽다. 하지만 나는 뻔뻔한 사람인지, 항상  새롭게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생각난다.   있는 이야기가 많아서, 글을 쓰겠다고 생각한 이후로 결핍도 복처럼 느껴졌다.

 

 수십번을 고쳐썼지만 여전히 낯부끄러운 벌거숭이 글을 드디어 내놓아 본다. 마음속에서 부유하는 상처를 가라앉히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을 찾지 못한 누군가에게, 뜰채 같은 위로가 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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