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이네 Jul 31. 2022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이 선물한 것

하루의 가치를 가늠하는 일

<이모의 마지막 목욕>

생각해보니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 아빠가 처음은 아니었다. 이모는 40대 초반의 나이에 암 선고를 받았다. 그때의 이모는 젊은 나이 때문인지 살고자 하는 의지와 기운이 있어 보였다. 삶의 기운이라는 것은 11살 어린이였던 나도 느낄 수 있는 것이어서 ‘이모가 많이 아프데~’ 하는 말에 걱정이 되었지만, 영영 사라질 것 같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5년 뒤 암이 재발한 이모의 낯선 모습은 조각조각 선명하다. 사춘기 중학생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병든 이모의 모습은 예전과는 달랐고 이런저런 이유로 약간의 서먹함을 느끼고 있었다. 별것도 아닌 일에 유난히 크고 호탕하게 웃던 그녀의 웃음소리. 그렇게 웃긴 일인가 싶었지만, 이모가 웃으니 별생각 없이 따라 웃었다. 그러다 고개를 들었을 때 그 웃음 끝에 비친 서글픔과 허탈한 표정을 보았다. 삶을 붙잡고 웃음을 뱉어내는 이모 옆에서, 티브이 너머 허공을 응시하는 이모부도 보았다. 그때 나는 이모가 사라지고 있는 것만 같은 공포감을 느꼈던 것 같다.


아픈 이모에게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살갑게 이야기하면서도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낯섦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 나에게 엄마는 이모 목욕을 도와드리라 했다. 앙상하게 드러난 갈비뼈와 한 줌도 되지 않을 것 같은 허벅지, 움푹 팬 엉덩이. 이모는 뼈와 살갗만 앙상히 남은 몸을 물에 풍덩 담그면서 ‘아’하고 낮은 숨을 뱉었다.

“이네가 등을 다 밀어주고 이모가 호강하네~”

뭐라 대답할지 몰라 쭈뼛거리며 때수건을 문질렀다. 숨구멍마저 없을 것만 같은 까만 피부였다.

"때 나오나? 안 나오제. 이제 내 몸에서는 때도 안 나온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왠지 송구스러운 마음이 들어 더 힘을 주어 등을 밀었다. 정해진 시간의 끝에서 이모에게 한 톨의 때는 이 세상에 조금 더 있어도 된다는 희망의 표시였을까. 야속하게도 때는 끝내 나오지 않았고, 이모는 얼마 뒤 세상을 떠났다.


<하루를 저울질 하는 일>

30대가 되고 친구들과 만나면 이번에는  때문에 병원을 다녀왔는지 이야기하는  안부 인사가 되었다. 영양제는 지금부터 챙겨야 한다거나 이제는 살려고 운동을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마냥 우습지는 않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이모가 얼마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는지 느껴져 새삼 마음이 아팠다. 물론 아빠도 마찬가지이고.


나는 하루의 가치를 저울질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저울질의 기준은 '주어진 시간의 끝'이었다. 저울의 한쪽에는 오늘 하루를 반대쪽에는 죽음, 시간의 끝 같은 무거운 말들을 얹어놓고 비교 했다. 의미 없는 하루를 보내고나면, 수평을 유지하던 저울이 한쪽으로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점점 더 묵직해지는 '시간의 끝'과 균형을 맞출 의미를 만드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나중보다는 지금, 해야 한다면 당장, 기왕이면 기분이 더 좋아지는 것들로 살아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슬픔과 분노, 황망한 마음은 일상에 무게를 실어주는 어떤 힘으로 변해가는 중이다. 이걸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겪은 보상이라고 하면 너무 괴랄하려나.


이 괴랄한 보상을 아주 감사한 마음으로 즐길 생각이다. 덕분에 하루하루 조금씩 덜 후회하고 살아가는 중이니까. 이제는 더 만족하는 일들을 해내 보려고 한다. 무엇보다 건강하자. 몸도 마음도.

작가의 이전글 다행히 오늘도 퇴사하지 않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