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하던 내가 조울증/조현병 진단을 받기까지
2017년 6월, 나는 공식적으로 조울증 및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갓 20대가 되었을 무렵부터 잔잔한 우울감은 늘 나를 따라다녔지만(주로 연애 실패로 인한 우울감이었다), 당장 입원을 해야 할 정도로 심각하다는 의사의 진단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조울증은 또 다른 말로 양극성 장애라고도 하며, 조증과 울증이라는 정반대되는 증상이 번갈아 가며 혹은 동시에 나타나는 정신 질환을 뜻한다. 기쁨이나 슬픔을 느끼는 기분 조절 장치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기분 변동의 정도가 정상 범위를 넘어서는 경우 조울증이라고 진단한다. 기분이 갑자기 들뜨거나 쉽게 우울감에 빠질 때 흔히 "조울증 있나 봐"라고 쉽게들 말하곤 하지만, 사실 조울증은 그 심각도와 생활에 미치는 영향 면에서 볼 때 보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정신적 질병이다.
조울증 증상 중 하나인 조증은 기분이 비정상적으로 고양되어 충동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이나 논리적 비약 등의 행동을 보이는 정신적 상태를 지칭한다. 조증 시기에는 과도한 흥분, 고양, 불안, 불면, 과대망상 등의 증상을 보인다. 반대로 우울증 시기에는 심각한 우울감, 무기력, 자책감, 수면장애, 피해망상 등이 나타난다. 조울증은 조증과 울증이 번갈아 나타나면서 몸의 에너지가 급변하고, 그에 따라 충동적인 행동을 할 수 있기에 일반적인 우울증보다 위험한 질병으로 간주한다. 한 전문의는 단일 질환으로 자살의 위험이 가장 높은 병으로 조울증을 꼽기도 했다. 조울증은 신경 전달 물질, 뇌세포 회로의 활성도, 호르몬 균형 등에 문제가 생기는 뇌 질환으로, 발병이나 악화에 스트레스와 생체주기 변화(수면, 생리 등이 영향을 미친다)가 밀접한 관련을 보인다.
증상별 진단은 아래 그림으로 대신한다.
개인적인 경험에 따르면, 조증이 찾아왔을 때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치 내가 전지전능한 예수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생각과 말이 많아졌고, 잠을 자지 않아도 에너지가 넘쳤다. 환청이 들렸고, 자주 망상에 빠졌다.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마다 나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고, 기분이 좋았다가 불쑥 화가 나기도 했다. 조증 증세가 극에 달했을 때, 나는 한밤중 응급실로 향해야만 했다. 옆구리가 찌르듯이 아픈 통증이 계속되어 발작을 일으켰고, 병원으로 향하는 도중에도 여러 착시 현상을 경험했다. 모든 사물과 사람들이 나를 주목하고 있거나 공격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에 따른 방어 기제로 나는 난폭해졌다. 그러다가 이후 우울증 증세가 찾아왔을 땐 180도 상황이 바뀌었는데, 정말이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12시간 넘게 잠만 자거나, 대책 없이 먹기만 했다. 어떨 땐 책을 펼치는 것조차 싫었다. 집중력도 떨어져 공부하려고 해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아가 조현병은 과거 '정신분열증'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불렸던 정신 질환이다. 망상, 환각, 비정상적이고 비상식적인 말과 행동, 대인 관계 회피, 무표정, 의욕 상실 등의 증상을 보인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조현병 발병의 주된 원인에는 '신경 전달 물질의 이상'이 있다. 외부로부터의 극심한 스트레스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조현병의 증상은 크게 양성 증상과 음성 증상으로 나뉜다. 양성 증상은 정상인에게서 없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환청, 망상, 기이한 행동 등이 대표적이다. 음성 증상은 정상인에게 있는 것이 결핍되는 것으로, 감정 둔마, 언어 빈곤, 무쾌감증, 무의욕증 등이 나타난다.
겉으로 봤을 땐 멀쩡해 보였던 내가, 조울증과 조현병 진단을 받게 된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나는 당시 다이어트를 위해 무리하게 식욕 억제제와 엄청난 양의 물을(하루 평균 약 4L) 섭취하고 있었고, 지방 분해 주사도 여러 차례 맞았다. 처방을 받을 때는 몰랐지만, 일부 식욕 억제제는 오남용 시 인체에 심각한 위해가 있어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실제 내가 다녔던 병원에서도 장기간 복용은 자제할 것을 권했으나, 나는 그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5주간 약을 받아먹었다.
약과 함께, 무리한 음주가 발병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당시 나는 할머니의 알츠하이머 진단과 더불어 타인과의 관계 지속 실패로 지독한 우울감을 앓고 있었고, 이를 술의 힘을 빌려 해소하고자 했다. 대부분의 식욕 억제제는 중추 신경계를 지속해서 흥분 시켜 식욕을 억누르고, 에너지 활동을 높여 체중 감량에 도움을 준다. 이와는 반대로, 술은 중추 신경계의 주요 기능을 억제한다. 식욕 억제제와 술은 담배와 술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그 작용에 있어 대립점에 있다. 따라서 둘을 함께 섭취하면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데, 나는 이를 간과하고 내 기분에 따라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면 몸이 가라앉으면서 기분은 좋아지는 느낌에 어쩌면 중독되어 있었던 것도 같다. 아래 그림을 통해 조울증 치료 수칙에 '술과 식욕 억제제 등의 약을 먹지 않는다'는 항목이 들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이와는 정반대로 행동했고,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법을 몰라 술에만 의존했다. 늦은 시각까지 술을 먹다 보니 수면의 질도 떨어졌다. 병을 스스로 유발한 것이나 다름없다.
조울증과 조현병은 모두 약물치료를 가장 핵심적인 치료로 간주한다. 많은 일반인이 이 부분에서 오해를 범하곤 한다. 치료에 사용되는 항(抗)정신병 약물이 중독성이나 의존성이 높지는 않은지, 그래서 오랜 기간 복용하면 부작용이 있지는 않은지 등을 걱정한다. 약으로 마음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가에 관해서도 회의적인 의견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항정신병 약물은 의존성이 없다. 또한, 오히려 질병의 급성기에는 약물치료가 가장 중요하며, 증상의 상당 부분을 호전시킬 수 있다.
한편, 정신 병원에 드나든 기록을 남기는 것을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듯, 마음이 아플 때도 마땅한 치료가 수반되어야 한다. 정신 질환을 부끄럽게 여겨 숨기려고 하고, 병원에서 도움을 받는 것을 늦출 경우 증세가 오히려 심각해질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조울증과 조현병은 만성적 질환이다. 즉, 일시적으로 증상이 호전되어도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따라서 약물을 규칙적으로, 장기간 복용해야 한다는 것을 환자와 가족 모두 분명히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약물치료와 함께 인지치료와 가족치료가 병행될 때 재발률을 낮출 수 있다. 수면 등 생체 주기와 관련하여 올바른 생활 습관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발병하기 전에는 내가 정신 질환을 앓게 되리라고는, 그래서 응급실 신세를 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정신의학과 심리학이 대중화되면서 흔히 사용되곤 하는 용어인 '조증'이나 '우울증'의 심각성도 인지하고 있지 못했다. 정신 병동에 입원하고, 매달 정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하며, 매일 약을 먹어야 할 것이란 사실도 예상치 못했다. '약'과 '술'에 대해 안일하게 생각했고, '규칙적인 생활'과 '스트레스 관리'의 중요성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말이 있다. 내 지난 3년은 정말로 그랬다. 애착하고 있던 일을 그만둬야 했고, 모든 인간관계를 포기해야 했으며, 사랑해 마지않던 서울을 떠나야만 했다. 핸드폰과 지갑을 압수당했고, 경제적/사회적 활동의 결정권을 박탈당했다. 성인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하는 이 같은 권한을 되찾는 데는 꼬박 3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현재로서는 병이 재발하지 않도록 꾸준히 관리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이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매일 두 시간가량의 운동으로 체력을 키우고, 몸에 좋은 음식을 챙겨 먹으며 폭식은 자제한다. 인지 능력 향상을 위해 꾸준히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아 학습도 병행하고 있다. 매주 한 편의 글을 쓰며 나 자신을 돌아보기도 한다. 그 결과, 최근의 생활에 대해 스스로 점수를 매긴다면 평균 80점 이상은 줄 수 있다(돈을 버는 경제적 활동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20점은 뺐다). 이 같은 패턴을 정착화하기까지 나는 조증과 울증, 그리고 조현병이라는 부단한 증상들을 겪어 왔다. 끊임없이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이었다.
사이토 시게타라는 일본의 정신과 의사는 말했다.
많이 넘어져 본 사람일수록 쉽게 일어선다.
반대로 넘어지지 않는 방법만을 배우면 결국에 일어서는 방법을 모르게 된다.
일어서기 위해 반드시 무너져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하라지만, 피할 수 있는 고생이라면 마땅히 피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항해를 하면서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뜻밖의 장애물을 만나는 경우가 더러 생긴다. 이때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우는 것은 중요하다. 곁에 있는 소중한 친구와 가족 등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몸이든 마음이든 아프면 나서서 병원의 문을 두드리는 용기도 필요하다. 나는 지금껏 여러 번 넘어져 봤기에, 다시 넘어지는 것이 무섭지 않다. '실패하면 어때, 다시 도전하면 되지'라는 마음을 장착하게 되었다. 인생이 그리 쉽게 끝나지는 않는다는 교훈도 얻었다. 물론 나보다 먼저 성공의 가도를 달리고 있는 듯한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인생을 살고 있을 따름이다. 내 인생을 책임지는 것은 나이며, 나여야 하고, 나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지난 3년의 아픔을 통해 책임감 있는 어른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멋진 어른이 되기 위해 느리지만, 한발씩 내딛는 중이다. 나는 내 인생을 응원한다. 내가 잘 됐으면 좋겠고, 잘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3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하지 않았을 선택들이 아쉽긴 하지만, 과거에 연연하기보다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훨씬 중요함을 안다. 지금 멈춰있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재도약을 위해 준비하는 기간으로 삼으면 된다. 그렇게 사용한 시간은 자양분이 되어 내게 더 좋은 삶을 선사해 줄 것이라 믿는다. 느려도, 서툴러도 괜찮다. 나는 무려 응급실에서도 살아난 사람인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