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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위로 Jun 09. 2022

Day 9: 혼자라면 하지 못했을 일

칸 남우주연상에 빛나는 영화 〈브로커〉를 개봉 당일 관람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전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재밌게 봤던 터라 약간의 기대를 안고 영화관을 찾았다. 아이유, 강동원, 배두나… 좋아하는 배우들이 대거 나와서 더 기대가 컸다.


미혼모 신분으로 아기를 낳은 소영(아이유)은 '베이비 박스'를 찾는다. 베이비 박스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아기를 키울 수 없는 산모가 작은 철체 상자 안에 아기를 두고 갈 수 있도록 만든 것으로, 유기되는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만들어진 시설이다. 소영은 혼자 힘으로 아이를 키우는 게 버거웠다. 꼭 돌아오겠다는 메모를 남겼지만 사실 돌아올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바로 다음날 베이비 박스 시설을 재방문한다. 소영의 아기 우성은 이미 불법 입양 브로커 상현(송강호)과 동수(강동원)가 빼돌린 뒤였다. 우성에게 더 좋은 부모를 찾아주겠다는 두 브로커의 설득에, 소영은 두 사람과 동행한다. 한편, 두 명의 형사(배두나, 이주영)가 이들 일행을 쫓는다.


영화는 바로 이 동행길에서 일어나는 인물들 간의 미묘한 변화를 포착한다. 이들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고, 가까워진다. 그러나 불법 입양은 순탄치 않다. 도중 동수가 어린 시절을 보낸 보육원에 방문하고, 그곳에 있던 8살 소년 해진(임승수)도 여정에 합류한다. 이혼 후 세탁소를 운영하지만 빚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현, 엄마가 자신을 버리고 간 뒤 보육원에서 자란 동수, 성매매로 생긴 아기 우성을 낳았지만 키우지 못해 베이비 박스를 찾은 소영, 나이가 차 더 이상 입양을 꿈꾸기 힘든 해진까지. 각기 다른 상처를 가진 이들이 서로를 위로하고, 진심으로 걱정하게 된다.


버려지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영화는 결국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혼자라면 하지 못했을 일을 함께 헤쳐나가고, 비가 그치지 않는 인생에 우산을 건넨다. 우성을 '버려진 아이'가 아닌 '지켜진 아이'로 자라게 하기 위한 이상한 가족의 여정은 서로가 서로를 아끼는 마음으로 이어진다.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말에 각자의 마음에 있던 응어리가 녹아내린다.


알고 보니 이 영화는 칸 남우주연상 외에 에큐메니컬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이 상은 인간 존재를 깊이 있게 성찰한 예술적 성취가 돋보이는 영화에게 수여되는 상이라고. 과연 그렇다. 영화는 아이를 낳은 후 책임지지 못하는 것과 낳기 전 지우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잘못인지, 잘못된 길로 접어든 한 사람의 인생이 다른 이들의 도움으로 재시작될 수 있는지, 생판 남이었던 이들이 가족처럼 서로를 아끼고 위로할 수 있는지, 계속해서 묻는다. 허술하지만 따뜻한 브로커 상현과 동수가 영화 속에만 있는 인물들이 아니라면 좋겠다. 그렇담 이 세상도 조금은 더 따뜻해질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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