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 보던 드라마가 20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앞선 글에서도 소개한 적 있는 '우리들의 블루스'는 주인공 15명(다운증후군을 앓는 영희가 마지막으로 추가되었다)들의 이야기를 옴니버스식으로 풀어낸다. 애달프고 애처로운 인물들의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 웰메이드 드라마다. 20회 중 마지막 3회는 암에 걸린 옥동(김혜자)과 옥동의 아들 동석(이병헌)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정말이지 눈물 없이 보기가 힘들다.
일찍 남편을 여의고 해녀로 일하던 딸마저 먼저 저세상으로 보낸 옥동은 딸이 죽은 지 한 달 만에 남편 친구의 첩살이를 시작한다. 남은 가족이라고는 엄마뿐이었던 동석은 돈 걱정 때문에 그러는 거라면 자기가 벌어오겠으니 재가하지 말 것을 애원하지만, 옥동은 어린 아들의 뺨을 여러 차례 내리치며 앞으로 자신을 엄마가 아닌 '작은 엄마'라 부르라 말한다. 그렇게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동석은 옥동을 원망하며 성인이 된 이후에는 생판 남처럼 지낸다.
두 사람의 사이가 달라지는 데는 옥동이 걸린 암의 몫이 컸다. 오죽하면 춘희(고두심)가 옥동에게 "언니가 암 걸린 것이 복이라" 했겠는가. 옥동이 암에 걸리지 않았다면, 그리고 동석이 그것을 몰랐다면, 동석은 옥동과의 화해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동석은 죽기 전에 옥동이 하고 싶은 것을 다 들어주고, 그 후에 왜 어린 시절 자신을 그렇게 모질게 대했는지 물어볼(따질) 심산이었다. 그리하여 둘은 함께 양아버지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목포로 떠나고, 그 여정에서 두 사람은 조금씩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게 된다.
사실 내 주변에는 옥동의 행동이나 태도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꽤 있다. 동석을 키우기 위해 첩살이를 시작했다면 동석에게 왜 그렇게 냉담했는지, 의붓형제인 종우-종철에게 시도 때도 없이 두들겨 맞는 동석을 보고도 멀리서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설정 덕인지 옥동의 마지막을 돌보는 동석의 착한 마음이 부각된다. 옥동에게 받은 상처가 너무도 크지만, 그것은 동석이 옥동을 누구보다도 사랑했기 때문일 것이다.
평생 엄마를 원망해온 동석은 옥동이 죽고 나서야 깨달았다. 자신이 엄마를 미워했던 게 아니라, 실은 화해하고 싶었다는 것을. 싸늘한 시체가 되어버린 옥동을 껴안고 우는 동석의 속마음이 내레이션으로 전해진다. 옥동은 사랑한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동석이 좋아했던 된장찌개 한 사발만 끓여 놓고 떠났다. 옥동이 죽은 뒤에야 동석은 엄마의 손과 얼굴을 쓰다듬고 끌어안으며 오열한다.
드라마는 옥동이 죽은 지 1개월 뒤, 제주 푸릉마을에서 열리는 체육대회의 모습을 담아내며 끝이 난다. 앞서 등장한 인물들이 모두 한데 모여 웃고 땀을 흘리며 서로를 응원한다. 단체로 닭싸움하며 즐거워하는 푸릉마을 사람들의 모습과 각 인물의 주요 장면들이 어우러진 가운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분명한 사명 하나. 우리는 이 땅에 괴롭기 위해 불행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오직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것. 모두 행복하세요!"라는 메시지가 나온다. "살아있는 우리 모두 행복하라!"는 메인 포스터 속 문구와 겹치는 구석이 있다.
이 작품을 쓴 노희경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음을, 비록 보잘것없어 보일지라도 모든 삶은 가치가 있음을, 슬픔이 지나간 자리에도 인생은 계속됨을. 제주 어딘가에서 실제로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생생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나는 한동안 그리워할 것이다. 또, 살다가 지칠 때 이들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어 보며 위로를 받기도 할 것이다. 이 드라마를 행복해지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