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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한 온도 Feb 22. 2024

꽃다발을 받는 여자로 자라길.


오늘은 딸의 수료식이다. 졸업식이 아니다. 6살을 마치는 수료식이다.


딸이 오늘 일어나자마자 "엄마, 오늘 나한테 꽃 줘야 해"라고 했다.


아니, 졸업식이 아니라 수료식인데 무슨 꽃??? 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입 밖으로 말을 뱉진 않았다. 어디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아니면 어디서 뭘 본 건지는 모르겠지만 딸은 자기한테 오늘 꽃다발을 줘야 한다고 했고, 나는 알겠다고 했다.


신랑과 같이 서점에 갔다가 집에 오는 길에 꽃집에 들렀다. 적당한 가격의 꽃다발을 주문했다.


사장님께 저희 딸 <인생 첫 꽃다발>이라고 말씀드렸더니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 딸이 좋아하는 핑크 계열 꽃으로 골라주셨고, 서비스로 인형과 비싼 데이지 꽃도 넣어주셨다. 포장지까지 세심하고 귀엽게 준비를 해 주셨다.


솔직히 졸업식도 아니고 수료식에 꽃다발이라니 나도 딸도 약간 유난이다 싶은 생각에 민망해서 사장님께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았다.


대화하다가 아내에게 꽃 선물 자주 하시는 분들 보면 대부분 가정적이시더라고요라는 말에 남편 생각이 났다. 뭐 물론 졸업식에 해줄게 하고 꽃다발을 안 해도 됐었겠지만, 나는 굳이 준비했다.


왜냐하면 어릴 적부터 꽃을 받는 사람이 되면 나중에 커서도 자신에게 꽃을 선물해 주는 남자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다. 나는 딸이 꽃다발을 받는 여자로 자랐으면 한다.


나는 우리 남편과 연애할 때 태어나 처음으로 '여자'로서 꽃다발을 받았었다. 그 이후로도 우리 남편은 나에게 꽃다발을 자주 선사했다. 연애를 시작한 지 100일째 되던 날에도, 1년째 되던 날에도, 로즈데이에도, 내 생일에도, 프러포즈 날에도, 첫째를 임신했을 때도 늘 꽃을 선물해 주었다.


한 번은 우리 남편이 그랬다.


사실, 꽃이란 게 보고 좋은 거 이외에는 하등 쓸모없잖아. 실용적이지도 않고. 근데 이렇게 가장 실용성도 없고 필요도 없는 것을 당신한테 사 주는 데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거 보니 여전히 당신을 많이 사랑하는 것 같아서 좋아.


그 말을 듣고 나는 남편에게 더 이상 꽃에 돈 쓰지 말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남편이 꽃을 사 오면 기쁘게 품에 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꽃다발을 잘 받고 있다.   


나는 우리 딸도 그랬으면 좋겠다.


하등 필요도 없고, 쓸모도 없고,
화병에 꽂아 놔도 며칠 지나 시들어 버리는 꽃이지만
단지 보기에만 예쁜 꽃이지만
받을 때 기분 좋게 화창하고 처치 곤란한 꽃이지만  


쓸모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꽃다발을 받고 좋아할 그 사람의 얼굴을 생각하며
돈을 쓸 수 있는 그런 남자와 만나 사랑받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오늘 굳이 꽃다발을 샀다. 나름 의미 있는 날이라 생각하고 샀다. 나중에 꼭 의미 있는 날이 아니어도 딸에게 꽃을 사주라고 남편을 종용할 예정이다.


아직 딸을 만나러 가기 전이다. 인생 첫 꽃다발을 받을 딸의 표정이 어떨까? 무척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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