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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한 온도 Mar 23. 2024

내가 굳이 이 소아과를 다니는 이유.


둘째는 지금 감기 때문에 한 달째 소아과를 다니며 약을 먹고 있다. 그동안 소아과를 여기저기 다녀봤지만 지금 다니는 이곳 참 괜찮은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첫째가 7세가 되는 동안 터전을 세 번 바꾸었으니 소아과도 그때마다 새로운 곳을 다녔다. 지금 어림잡아 보니 한 15군데 정도 다녀본 것 같다.



그중에서도 지금 다니는 이 소아과는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참 만족스러운 곳이다. 이 소아과는 여자 의사 선생님 한 분이 진료를 보시고 '똑딱'이라는 애플리케이션으로 접수를 한다. 특히 유행병이 돌거나 토요일에는 접수가 정말 힘들다.



접수는 오전 8시 40분에 열린다. 지난 주말에도 바로 접수했지만 1분 뒤에 확정된 내 순번은 69번이었다. 원래도 토요일은 소아과 접수가 치열한 편인데 이곳도 만만치 않다.





이곳 접수가 워낙 힘들어서 다른 몇 군데서 진료도 받아 봤었지만 결국 다시 이 소아과로 돌아왔다.






이곳이 좋은 이유는 딱 하나다. 이 소아과의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은 내 입장에서 <굳이> 싶은 일들을 하신다.



1. 사람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꼼꼼하고 상세하게 봐주신다.



이 소아과는 그야말로 오래 기다린 보람이 있다.



보통 토요일의 병원은 사람이 어마어마어마어마어마하게 많다. 심지어 마트 문 열릴 때 마트 병원에 접수 빨리하려고 아이 안고 뛰는 부모님들도 많이 봤다.



그렇게 오랜 시간 기다려서 들어갔건만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진료가 매우 쏜살같이 지나간다. 심지어 청진을 안 하는 곳도 있다. 마치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조립받는 부품처럼 쓱쓱 보고 탁탁 쓰고 끝난다. 들어가면 1분 정도나 있을까 싶다.  



그런데 이곳은 다르다. 토요일이어도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도 충분히 아이를 살펴봐 주시고 정성껏 설명을 해주신다. 내가 기다린 만큼 충분히 진료를 봐주시니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  



2. 또 <굳이> 아이와 대화를 하신다.


진료를 보러 들어가면 말 통하는 첫째랑은 짧게라도 이야기를 나누신다. 말 못 하는 둘째에게도 "이쁜이 왔구나~!!!" 하시며 말을 걸어주신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으면, 이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을 정말 좋아하시는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왠지 소아과를 선택하는 의사 선생님은 다 저렇게 친절하실 것 같지만 생각보다 무뚝뚝한 분들이 많으시다. 워낙 아이들이 많고 바쁘시니까. 피곤에 지쳐 보이는 분들도 계시고 기계처럼 돌아가다 보니 기계로 변하신 것 같은 분들도 계시다.



그런데 이곳은 아무리 바빠도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이 미간을 찌푸리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엄마 입장에서는 기왕이면 우리 아이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곳에 가고 싶기 마련이다.



@ cdc. 출처 Unsplsah



3.  마지막으로 이게 제일 중요한데, 안 하셔도 될 법한 일을 <굳이> 하신다.  



지난번 둘째 예방접종 때, 먹는 약이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약을 먹이시다가 문득 나에게 물으셨다.



"어우 아기가 잘 안 먹네요. 제가 드리는 약도 잘 안 먹을 것 같은데, 잘 먹나요?"



정확했다. 하도 목구멍을 열 질 않아서 약 먹일 때마다 전쟁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약 잘 먹이는 꿀팁을 무려 3개 정도 전수해 주셨다. 그 이후로는 무리 없이 약을 잘 먹이고 있다.



사실, 약 먹이는 것까지 의사 선생님의 소관일까 싶었다. 그래서 나도 애초에 선생님께 질문드리지 않았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굳이 나에게 물어봐서 어려움 해결에 도움을 주셨다.



이곳은 간호사 선생님까지도 굳이 나서서 나를 도와주신다.



우리 둘째가 토쟁이라 밝힌 적이 있다. 



역시나 병원에서 우리 토쟁이가 갑자기 우웨웩 하는 바람에 내가 급하게 손으로 둘째의 토를 받았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간호사 선생님이 쓰레기통을 들고 나타나셨다. 내 손에 있는 토를 버릴 수 있게 쓰레기통을 받쳐주셨고 물티슈까지 주셨다. 덕분에 토들을 아주 잘 처리할 수 있었다.



또 한 번은 둘째가 큰 볼일을 봐서 간호사 선생님이 알려준 공간에서 기저귀를 갈고 있었다.  역시나 갑자기 간호사 선생님이 "비닐 필요하시죠?" 하며 봉지를 주셨다.



(보통 외부에서 기저귀를 갈면 냄새 때문에 봉지에 넣어 밀봉을 한 뒤, 쓰레기통에 버린다. 그래서 항상 여분의 비닐봉지를 가지고 다닌다.)



물론 내 가방에는 비닐봉지가 있었지만 간호사 선생님이 주신 봉지를 이용해 잘 버렸다.





@ cdc. 출처 Unsplash



사실, 의사 선생님이 굳이 나에게 약 먹는 꿀팁을 전수해 주실 필요는 없으시다. 간호사 선생님도 굳이 하던 일을 멈추고 나에게 쓰레기통을 받쳐 주실 필요도 없으시다.



심지어 내가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하지만 때로는 요청하지 않았지만 혹은 요청을 하지 못했지만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다. 내가 겪은 순간들은 다 그런 순간들이었다. 도움이 필요했지만 말 못 했던 순간들.



이 소아과의 선생님들은 그런 어려움을 간파하고 나에게 굳이 도움을 주셨다.



더 좋았던 건 어떤 의도를 가지고 '내가 꼭 엄마들의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게 도와줘야지~!'라는 느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굳이하는 행동에서 어떤 의도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너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불편하지가 않았다. 오히려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이 선생님들의 굳이에 감동받아 접수도 어려운 이 소아과를 접수 알람까지 맞춰가며 굳이 다니고 있다.






정리하자면, 우리가 타인에게 감동받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인 것 같다. <굳이>


 

그러니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거든 굳이라고 생각되는 일들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게 관계이든, 그게 고객이든, 그게 소비자이든, 그게 독자이든, 그게 사랑하는 사람이든.

 


어쩌면 이 글을 쓰는 것도 굳이 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되기를 희망하면서 쓰는 글이니 말이다.



오늘도 굳이 행동하시는 따뜻한 분들을 위해 은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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