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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일반사람으로 돌아갈 시간.

by 은은한 온도


나는 임신과 출산을 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내가 그냥 내가 아니라 호르몬의 하수인이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만큼 임신 출산은 호르몬의 변화가 가장 극심한 시기인 것 같다. 나는 임신 중에 난생처음 겪는 일들을 마주할 때마다 매번 기겁을 했더랬다.


호르몬으로 인해
임신 초반에는 온갖 종류의 야한 꿈을 꾸어댔고
태어나 처음으로 A컵 그 이상을 경험을 해봤으며
잇몸이 새끼손톱만큼 부어올라 음식을 먹을 때마다 흐르는 피도 함께 먹어야 했다.


또 요즘의 나는 호르몬의 하수인답게 머리카락이 엄청나게 빠지고 있다.


그렇다. 나는 출산 후 100일 즈음부터 시작되는 '산후탈모'에 구간에 진입했다.



이 분의 표정이 내 표정이다.



지금은 어디를 가도 바닥에 머리카락 투성이다.
베개를 보면 화들짝 놀란다.
샤워를 한 번 하면 수챗구멍에 무슨 미역줄기처럼 머리카락이 모여있다.


왜 산후탈모가 생기는지 궁금해서 인터넷에 검색해 봤다.



임신하면
에스트로겐 호르몬이 증가하는데
그러면서 원래 빠졌어야 할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출산을 하고 100일 즈음이 되면
증가했던 에스트로겐이
다시 정상 범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면 원래 빠졌어야 할 머리카락이
이때 일시에 빠지게 되는데
그걸 바로 산후 탈모라고 부른다.



사과나무는 모든 사과를 다 키우지 않고 튼튼하지 못한 사과는 일부러 톡톡 떨어뜨린다고 한다.


오늘 바닥에 떨어진 내 머리카락도 그랬다. 어차피 빠졌어야 할 머리카락들이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힘을 잃고 하늘거리며 날아다니다 바닥에 툭. 연약하기가 그지없었다.


첫째 때는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들을 보며 내 인생도 저렇게 힘없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 같아 참 슬펐었다.






하지만 원래 빠졌어야 할 머리카락이었다고 하니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곰이 동굴에서 마늘과 쑥만 먹다가 100일 후에 사람이 된 것처럼, 이제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것에서 벗어나 일반 사람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기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100일간의 겨울잠을 잔 뒤, 봄을 만끽하러 털갈이를 하는 기분이랄까.


심지어 순둥이 둘째가 어제부터는 9시간을 넘게 통잠을 자 주니 앞으로는 새벽에 깨는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 신나 졌다.


출산맘의 털갈이를 마친 뒤, '나'라는 일반인으로 돌아가 보자.


그러니까 나도 이제 밤에 자유부인하면서 술 마셔도 되는 거겠지?



소소한 일탈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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