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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한 온도 Mar 21. 2024

이제는 일반사람으로 돌아갈 시간.


나는 임신과 출산을 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내가 그냥 내가 아니라 호르몬의 하수인이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만큼 임신 출산은 호르몬의 변화가 가장 극심한 시기인 것 같다. 나는 임신 중에 난생처음 겪는 일들을 마주할 때마다 매번 기겁을 했더랬다.


호르몬으로 인해
임신 초반에는 온갖 종류의 야한 꿈을 꾸어댔고
태어나 처음으로 A컵 그 이상을 경험을 해봤으며
잇몸이 새끼손톱만큼 부어올라 음식을 먹을 때마다 흐르는 피도 함께 먹어야 했다.
 

또 요즘의 나는 호르몬의 하수인답게 머리카락이 엄청나게 빠지고 있다.


그렇다. 나는 출산 후 100일 즈음부터 시작되는 '산후탈모'에 구간에 진입했다.   



이 분의 표정이 내 표정이다.



지금은 어디를 가도 바닥에 머리카락 투성이다.
베개를 보면 화들짝 놀란다.
샤워를 한 번 하면 수챗구멍에 무슨 미역줄기처럼 머리카락이 모여있다.


왜 산후탈모가 생기는지 궁금해서 인터넷에 검색해 봤다.



임신하면
에스트로겐 호르몬이 증가하는데
그러면서 원래 빠졌어야 할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출산을 하고 100일 즈음이 되면
증가했던 에스트로겐이
다시 정상 범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면 원래 빠졌어야 할 머리카락이
이때 일시에 빠지게 되는데
그걸 바로 산후 탈모라고 부른다.



사과나무는 모든 사과를 다 키우지 않고 튼튼하지 못한 사과는 일부러 톡톡 떨어뜨린다고 한다.

 
오늘 바닥에 떨어진 내 머리카락도 그랬다. 어차피 빠졌어야 할 머리카락들이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힘을 잃고 하늘거리며 날아다니다 바닥에 툭. 연약하기가 그지없었다.


첫째 때는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들을 보며 내 인생도 저렇게 힘없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 같아 참 슬펐었다.






하지만 원래 빠졌어야 할 머리카락이었다고 하니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곰이 동굴에서 마늘과 쑥만 먹다가 100일 후에 사람이 된 것처럼, 이제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것에서 벗어나 일반 사람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기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100일간의 겨울잠을 잔 뒤, 봄을 만끽하러 털갈이를 하는 기분이랄까.


심지어 순둥이 둘째가 어제부터는 9시간을 넘게 통잠을 자 주니 앞으로는 새벽에 깨는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 신나 졌다.


출산맘의 털갈이를 마친 뒤, '나'라는 일반인으로 돌아가 보자.  


그러니까 나도 이제 밤에 자유부인하면서 술 마셔도 되는 거겠지?



소소한 일탈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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