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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한 온도 Mar 29. 2024

대충 먹지 마세요, 좋은 음식 드세요.


요알못인 나는 뭔가 요리를 하려고 하면 겁부터 난다. 겁을 물리치고 오늘은 또 생전 처음 하는 요리를 해봤다. 최근에 수제비를 완성시켜 보고 약간 자신감이 붙었기 때문이었다.



자신감이 살짝 붙은 뒤로 요리할 만한 재료를 몇 가지 집에 구비해 두었었는데, 오늘은 오징어가 생각이 났다.



나는 매콤 달달한 오징어 덮밥이 먹고 싶었지만 딸을 위해 간장베이스 레시피를 뒤적였다. 적당히 내가 해 볼 수 있을 법한 레시피를 찾았고 차근차근 순서대로 해보았다.



손질된 냉동 오징어를 물에 담가 녹이고 씻은 뒤, 야채도 썰었다.



레시피 순서대로 양념을 하고 볶았는데...



음..?



휴대폰 속의 음식의 비주얼과 내 요리가 뭔가 좀 달라.. 다.. 왜 같은 레시피로 똑같이 하는데 내 요리는 다른 것일까? 사진 속 비주얼은 간장 국물이 훨씬 걸쭉한데 나는 묽었다..



괜찮은... 걸까..?



어디 한 번 맛을....



.


.


.




오잉? 나쁘지 않은데...?



그리하여 요리를 완성했다.



밥을 담고 오징어를 밥 위에 솔솔 올려놓으니 꽤 그럴싸했다. 맛도 괜찮았다.





사실, 자신감도 자신감이지만 요리를 계속해보자 마음먹은 계기가 있다.




최근 오디오 북으로 <마음 지구력>이라는 윤홍균 작가님의 책을 듣고 있다. 번아웃 그러니까 소진 증후군에 관한 내용인데 자기의 지친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먹기'가 꽤 좋은 방법이라는 내용이었다.



먹는 것은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때문에 사람들이 맛집을 탐방하는 건 매우 바람직한 행동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요리도 잘 못하지만 식욕도 딱히 없고 입도 짧은 편이다. 맛있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귀찮으면 대충 먹어 치워 버린다. 요리나 음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한다기보다 그냥 살기 위한 연료를 급하게 주입하는 느낌?



그 말을 듣고 예전에 연극치료대학원에서 공부할 때 교수님이 나에게 해주셨던 처방이 생각이 났다.



그때 한참 제대로 방황하던 시기였고, 마음에 공허함이 잔뜩 있던 시기였는데 교수님은 하루에 한 번 먹고 싶은 음식을 찾아 먹으라고 하셨다.



그건 교수님이 나에게만 특별히 주신 미션이었다. 나는 생각나지 않는 음식을 억지로 꾸역꾸역 생각해서 찾아 먹었었다.



솔직히 그때는 왜 그런 처방을 해주셨는지 잘 이해하지 못 했지만, 이제는 조알 것 같다.



오늘

조물조물 오징어를 씻고,

탁탁 야채를 썰고,

지글지글 볶아

갓 지은 따뜻한 밥 위에

오징어를 소로로 올리니

기분이 좋았다.



한 술 크게 떠서 입에 넣으니 맛있고 따뜻해서 만족스러웠다.



실제로도 배가 든든해졌지만 마음도 든든해진 기분이었다. 마치 내가 나에게 '좋은 거 먹어라~!' 하고 대접을 해준 느낌도 들었다.



직접 요리 한 음식에는 음식을 하는 사람의 마음이 들어가 있어서 그런지 더 든든한 것 같았다.



이래서 세상 모든 엄마들이 자식들이 집에 오면 자꾸 음식을 해 주는 것일까?  



나는 여전히 요리를 모르는 요알못이다. 하지만 오늘은 요리를 해서 먹는 이유를 어쩐지 좀 알 것 같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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