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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한 온도 Feb 13. 2024

분명 결혼 전의 명절은 휴일이었는데.


나에게 결혼 전의 명절은 기나긴 휴일의 연속이었다.


전날 다 같이 모여 음식 하고, 당일 예배드리고 (외삼촌 집 종교에 맞춰) 밥 먹고 해산하면 끝이었다.


그때부터는 자유의 시간이 펼쳐졌다.


친구랑 만나 놀기도 하고, 집에서 마음껏 뒹굴뒹굴하기도 하고, 낮잠도 내가 자고 싶은 만큼 늘어지게 잤다. 명절이 길수록 좋았다. 휴일도 그만큼 길어지니까.


그러나 결혼을 한 뒤, 명절은 휴일이 아니라 극한 노동의 날로 바뀌었다.


시댁을 가고 친정을 다녀오면 3일은 아주 빠르게 후다닥 지나갔다. 마지막 대체공휴일은 유일한 휴식 기회였으나 그마저도 신혼 초에는 시댁 어른들에게 반납해야 했다. 그만큼 그때 우리 부부는 시댁에서 관심의 대상이었다.


친정에 오니 엄마 혼자 음식을 다 준비하셨다.



아이가 생기고 나니 명절은 더욱 바빠졌다. 짐도 더 많아졌다.


특히 시댁에는 아이가 없다. 우리 딸이 유일한 미성년자다. (이제 둘째가 생겨 미성년자가 두 명이 되었다.) 그렇다 보니 명절은 딸에게 지루한 시간이다.


친정을 가면 그나마 같이 놀 또래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자신의 엄마 아빠와 놀 시간을 가슴 한편에 꼭 남겨 놓는다.  


그리하여 마지막 남은 대체 공휴일은 온전히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으로 쓴다.


보통 주말에도 아이와 온전히 함께 하지만 명절에는 유난히 에너지가 더 많이 필요하다.


나와 신랑 모두 우리의 리듬이 아니라 어른들의 리듬에 우리를 맞추다 보니 에너지가 금세 동이 난다. 이번 명절에도 신랑은 시댁에서 무려 7시간 동안 같은 자리에 앉아서 술을 마셔야 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남은 에너지를 쥐어짜 집안을 정리하다 보면 정말 말 그대로 너덜너덜해진다. (집으로 돌아오면, 가지고 갔던 짐들을 정리하고 싸 가지고 온 음식들, 시댁 친정에서 주신 물건들을 한참 정리해야 한다.)  


마치 긴 여행을 다녀온 뒤에 찾아오는 극심한 피로 같은 것이 명절에 찾아온다.


그걸 1년에 꼬박 2번씩 하는 셈이다.



© izzyfisch_, 출처 Unsplash



결혼 전에는 막연히 '식구가 많으면 좋지~!' '명절에는 다 같이 복작거리는 맛이지!'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명절날 쉴 수 있었던 딸 신분이라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며느리가 되고, 엄마가 된 요즘은 명절이 반갑지만은 않다. 그건 남편이 되고, 아빠가 된 우리 신랑도 마찬가지다. 분명 이름은 공휴일이건만 나에게는 몸과 맘을 단단히 먹고 움직여야 하는 고된 일이 됐다.


그래서 가끔은, 결혼 전의 내가 참 그립다. 그저 휴일을 휴일로 즐길 수 있던 그 시간이.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쉬고 싶어서 한 번 그때를 그리워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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