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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한 온도 Apr 01. 2024

러브레터인 줄 알았는데.


지난 주말, 아침부터 첫째가 식탁 밑에 들어가 편지를 쓰고 있었다.


내가 기웃거릴 때마다 비밀이라고 보지 말라고 연신 손사래를 쳤다.


"엄마, 예는 어떻게 써? 뻐는?"


맨 첫 문장이 엄마로 시작하고, '예'를 묻고 '뻐'를 묻는다... 필시 이건 나에게 쓰는 러브레터가 틀림없었다.


분주했던 아침이 지나고 다 같이 차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뒷좌석에 딸이 부스럭부스럭 무언가를 꺼내 나에게 건네었다.


사각 네모로 두 번 접힌 종이를 활짝 펼치니 아침에 쓰던 바로 그 러브 레터였다. 비뚤배뚤한 글씨 아래에 형형색색의 머리카락을 지닌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비뚤배뚤 글씨를 따라 소리 나는 대로 글자를 적어놓은 앙증맞은 러브레터.




나는 이렇게 읽었다.



엄마 사랑해. 예뻐. 고운 목소리로 말해.
주연 조해써 사랑해.



세상에~! 내가 예쁘고, 내 목소리는 곱다니!!! 역시 딸밖에 없구나.. 자식 키운 보람이 있다 있어!! 감동을 듬뿍 받았다.



그런데 해석이 안 되는 단어가 있었다. 나는 주연 조해써라는 말을 딸에게 물어봤다.



"고마워~! 근데 주연 조해써가 무슨 말이야?"



첫째는 편지를 자기한테 달라고 했다.

"내가 읽어줄게. 엄마 사랑해. 예쁜 고운 목소리로 말해주면 좋겠어. 사랑해."



아!?!?!?!?!?



맙소사.... 이건 러브레터가 아니었다. 상소문이자 고객의 소리였다.



김칫국을 잔뜩 마신 내가 너무 어이가 없어서 한껏 크게 웃은 뒤에 첫째에게 사과를 했다.



"편지 잘 받았어. 엄마가 앞으로 고운 목소리로 말하도록 노력할게."






맞다. 첫째의 말처럼 나는 최근자주 언성을 높인다. 오죽하면 첫째가 나보고 도깨비 엄마라고 한다.



우리 첫째는 현재 7살이다. 어느 정도 대화가 되고 사리분별을 할 수 있다. 스스로 옷을 입을 수도 있고, 세수 치카는 물론이고 완전하게는 아니지만 머리 감기도 가능하다. 심지어 대변 후 뒤처리까지도 가능한 늠름한 언니다.



우리 둘째는 현재 5개월이다. 이제 태어난 지 160일도 되지 않았다. 뒤집기를 했고 아래 이빨이 하나 올라오고 있다.



내 마음 같아서는 첫째가 스스로 다 할 줄 아니까 유치원 준비도 좀 스스로 하고, 잘 준비도 스스로 척척해주면 참 좋으련만 그렇지가 않다. 매일 양치하기 싫다고 도망 다니고, 옷 갈아입는 것도 세월아 네월아다.



아이가 한 명일 때는 기다릴 수가 있었다. 그런데 두 명이 되고 보니 내 인내심의 끈이 자꾸만 끊어진다.



그렇게 되면 나는 도깨비로 변해 입에서 천둥소리가 나온다.



딸의 상소를 읽고 뜨끔했다.



그래,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인데 꼭 천둥 같은 소리로 말할 필요는 없지. 나 같아도 누가 나한테 도깨비같이 말하면 기분이 나쁘겠어.



반성했다. 딸의 상소대로 예쁘고 고운 목소리로 말할 수 있게 노력해 봐야겠다. 사실, 상소를 읽고 지난주부터 노력 중이긴 한데 쉽지는 않다.



하하.. 나도 도깨비가 아닌 선녀 같은 엄마 되고 싶다. 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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