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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한 온도 Apr 08. 2024

아이는 아이만의 속도로 가고 있다.


최근에 7살인 첫째가 태어나 처음으로 미용실에서 파마를 했다.



첫째는 기질이 매우 예민한 편이다. 낮도 굉장히 많이 가려서 키우면서 애를 많이 먹었다. 조리원 동기 모임 때에도 사진 찍으려고 아기들을 쪼로로 모아놓으면 그중에서 우리 첫째만 울었다.



소시지의 껍질을 싫어해서 5살이 되어서야 먹기 시작했고, 고기를 먹은 것도 5살 후반, 김을 먹은 지는 한 3개월 정도 되었다.  계란 프라이와 삶은 달걀은 아직도 먹지 않는다.



그 무엇이든지 변화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고, 새로운 것은 먼저 경계부터 하고 본다. 그래서 언제나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그리하여 미용실도 제대로 가본 적이 없었다. 어릴 때는 의자에만 앉으면 울어서 못 갔고 조금 커서는 가기 싫다고 거부해서 못 갔다. 겨우 설득해 데리고 갔을 때에도 머리 감는 것이 무서워 늘 분무기로 칙칙 뿌려 상한 끝부분만 다듬곤 했다.



그랬던 그녀가 머리를 잘라보겠다고 했다. 심지어 단발이 하고 싶다고 했다. 미용실에 도착해서 기다렸는데 갑자기 머리를 감아보겠다고 하지 않겠는가!



듣던 중 반가운 소리에 C컬로 예쁘게 말린 단발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 단발을 하려면 파마를 해야 하는데 파마도 할 수 있겠냐 물어보았다.



첫째가 고개를 끄덕였다.



와... 세상에....!!!!!



혹시나 마음이 바뀔까 싶어, 당장 진행을 했다. 총 3번의 머리를 감았는데 3번 내내 내 손을 잡고 긴장한 표정으로 누워서 머리를 감았다. 그래도 다행히 그만하겠다거나 안 하고 싶다는 말이 없었다.



그렇게 긴장 속에서 완성된 예쁜 단발. 본인도 흡족한지 거울을 보며 연신 "단발 예뻐"를 외쳤다.



저렇게 긴 머리를 싹둑.






신나서 킥보드를 타고 달려가는 딸을 바라보며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편은 딸의 성장에 매우 감격을 한 것 같았다.



체육대회 했던 날, 다른 아이들이 신나서 박을 터트리는데 유일하게 혼자만 덩그러니 앉아있던 아이였다. (친구들과 부대끼는 게 싫었던 모양)  



놀이터에서 누가 놀자고 말을 걸면, 대답도 못한 채 내 뒤로 숨던 아이였다. 소아치과에서조차 너무 울어서 제대로 이빨을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몇 년 사이에 많이 달라지고 성장했다.



작년 음악회 때는 가운데에서 활짝 웃으며 악기를 연주했다. 이제는 놀이터에서 다른 친구에게 먼저 말을 걸기도 했다.



치과에 가서도 나한테 인사한 뒤 혼자 진료실로 들어갔으며, 미용실에서 머리를 세 번이나 감고 파마를 하는 아이가 되었다.





Resplash @Jukan Tateisi



나와 남편은 첫째의 마음이 움직일 때까지 꽤 오랜 시간 기다렸다. '때가 되면 하겠지'라는 믿음으로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기다리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기다림에 보답이라도 하듯 첫째는 어느 순간부터 못하던 일들을 하나씩 해나갔다.  



남편은 말했다.



"아이는 아이만의 속도로 가고 있는 건데, 우리 어른들이 어른의 시각으로 너무 아이를 보채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맞는 것 같았다. 아이는 아이만의 속도로 가고 있는데 조급하게 굴었던 건 늘 나였던 것 같았다. 혹시나 뒤처지는 것일까 봐, 남들은 다 하는 데 우리 애만 못할까 봐 마음을 졸였었다.  



아이에게 내색은 안 했지만 혼자서 뭐가 문제일까?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 고민을 했다. 그런데 그건 나의 마음이었지. 아이의 마음은 아니었다



물론 두려움과 낯섦을 해결하는 방법은 끊임없이 얘기해 줬다. 아이의 마음에 공감도 해주었다. 그 외에는 딱히 내가 도와준 건 없었다.



더 솔직히 얘기하면 내가 도와줄 수 없는 영역이었다. 첫째가 망설였 대부분은 본인이 스스로 나아가야 가능한 일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가끔 아이의 의사를 물어보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첫째는 천천히 나아갔다.



이제야 아이만의 속도와 시간을 기다려주는 일이 내가 할 일의 전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생각했다. 앞으로 학교에 가게 되면 더 많은 비교 속에 노출이 될 텐데 그때에도 우리 아이만의 속도를 믿고 기다려 주자고.



첫째가 스스로 머리를 감아보고 파마를 해보겠다고 얘기했던 것처럼, 안녕하고 치과 진료실로 들어갔던 것처럼. 어느 순간 고기도 먹고 김도 먹었던 것처럼.



믿고 기다리다 보면 스스로 다 하게 될 것이라고.



오늘도 아이는 아이만의 속도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중이다. 앞으로도 내가 할 일은 내 속도에 아이를 끌고 오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보폭에 내 보폭을 맞추는 일이 될 것이다. 그 다음에는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는 일의 할 일이 되겠지?



다음엔 우리 첫째가 또 어떤 도약을 보여줄까? 다음은 삶은 계란을 먹는 일이었으면 좋겠다. 그럼 드디어 장조림을 해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덧. 아침마다 머리 묶는거 실갱이 안 해도 되서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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