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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한 온도 Jul 17. 2024

당신이 불을 피웠다고 하던데요.



책을 읽다가 이 페이지에서 잠시 시공간이 멈춰버렸다.



<이제야 쓸 수 있는 이야기> 손 다니엘 편 中



18살 아무도 없는 내 방, 창가에 붙어 앉아 불을 붙여보았다. 더 어릴 적에 시도해 본 적은 있으나 그저 메케한 연기를 잘못 삼켜 눈물을 짜며 울다 끝난 미수였다.


그렇게 된통 당했으면 다시 안 할 법도 한데, 나는 기어코 다시 찾아 입에 물어보았다.


그간 더 주워들은 말들도 있었기 때문에 숨을 들이켜며 불을 붙였다. 가느다란 불은 차그르 미세한 소리와 함께 종이를 타고 지글거렸다. 들숨으로 내 안에 들어온 무언가는 이내 날숨으로 뿌연 연기와 함께 토해져 나왔다.


이윽고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의 독한 어지러움이 찾아왔다. 팔다리를 가눌 수가 없어 어지러움이 가실 때까지 나는 사지를 활짝 펴 침대에 누워있어야만 했다. 수분이 흐르는 동안 나는 몽롱한 그 상태가 어쩐지 두렵기도 어쩐지 후련하기도 했다.


그날 이후 나는 그 몽롱함을 다시 맛보기 위해 불을 피웠다. 집 안에는 엄마의 남자친구한테서 가져온 작은 각들이 충분히 있었다. 나는 티가 나지 않게 이 각, 저 각으로 손을 뻗어 그 가느다란 하얀 기둥을 쏙 빼서 불을 피운 뒤 흔적 또한 싹 없애버렸다.


당당한 나이가 되었을 때도 나는 이따금 몽롱함을 찾았다. 알코올이 들어가면 꼭 그렇게 더 나를 몽롱함으로 밀어붙이고 싶었다. 나중에는 말짱한 현실에서도 그 몽롱함이 필요해 더 자주 불을 피웠다.


그러나 아무리 불을 피워도 그 헛헛한 마음은 그대로였다. 그 몽롱함도 잠시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텅 비워져 버린 마음에 고작 기체 따위로 내 마음이 가득 차길 기대했다는 것이 참 처연했다. 심지어 그 기체 따위는 머물러있지도 않고 금세 나가버리니 여전히 헛헛한 게 당연했다.


더불어 몽롱함으로 잠시 떠나봤자 다시 더 선명한 나의 삶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유목민이 아니었으니까. 그냥 그때의 나는 쥐지도 놓지도 못하고 방황하는 인간에 불과했다.


가끔씩 떠났던 그 몽롱함을 떨치고 현실에 발붙일 수 있었던 건 누군가의 진심이 내 마음속에 꽉 들어찼기 때문이었다.


마침 나도 명확하게 현실을 죔죔 하기로 택했다.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픈 것도 기쁜 것도 온전히. 기체 따위로 나를 달래지 않고 스스로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 이후로는 더 이상 불을 피우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헛헛하지도 않았고 몽롱함으로 떠나고 싶지도 않았다. 그와 함께 이 땅에 발을 붙여 살았다.


결국 나를 채운 건, 그 이름도 찬란한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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