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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한 온도 Sep 06. 2024

괜찮아, 처음에는 다 흘리는 거야.


어린 아기에게는 삶의 매 순간이 도전이겠지만 그중에서도 꽤 긴 시간 동안 연습하는 분야가 있습니다.



바로, 이유식입니다.



이유식은 젖이나 분유 등 액체 형태의 음식에서 밥이나 고기 등 고체 형태의 음식을 이빨로 씹어서 먹기 위한 딱 그 중간단계에 있습니다.



쉽게 말해, 분유를 먹던 아기가 밥을 먹기 위해 치르는 연습 과정이라고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또 씹는 연습을 하는 과정 속에 3일에 한 번은 새로운 음식 재료를 추가하는데요. 이는 아기에게 해당 음식의 알레르기가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신체발달의 과정은 아기가 스스로 해내는 한 편, 이유식은 주 양육자가 연습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유식은 대략 생후 5~ 6개월 즈음부터 시작해서 돌까지, 약 반년간 치러지는 긴 프로젝트입니다. 주 양육자도 매번 새로운 음식을 준비해야 하고 아기 또한 주어지는 새로운 맛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이유식 초기에는 주르륵 물처럼 흐르는 쌀미음으로 시작해서 중간중간 입자와 농도를 크게 키워갑니다. 밥 바로 직전에는 아주 되직한 죽 형태까지 오게 되지요. 또 먹는 재료의 가짓수도 다양하게 늘어납니다.



우리의 아기가 처음 이유식을 먹었던 날이 기억이 납니다.






(아기를 아기 의자에 앉힌다)



냐 아 냐냐 (해맑둥절)



(숟가락으로 묽은 이유식을 떠먹인다)



아앙.

날름날름.


???

으윽윽.

(도리도리)


베에엑.

주르르르륵.





처음 먹어보는 낯선 맛과 질감에 아기는 이내 이유식을 주르륵 다 뱉어버립니다. 며칠이 지나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처음에 이유식을 먹이면 대부분은 흘리고 뱉고 주변에 묻고 버려지고 바닥에 뿌려집니다. 먹는 양보다 먹지 못하는 양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것뿐이게요?



익숙해질 만하면 새로운 재료가 등장하고

또 익숙해질 만하면 하루에 두 번 먹어야 하고

또 익숙해질 만하면 질감이 달라지고

또 익숙해질 만하면 세 번을 먹어야 하고

또 익숙해질 만하면 다른 맛의 음식이 등장합니다.



어쩌면 아기에게는 살아가는 매 순간들이 다 혼돈과 낯섦과 도전이지 않나 싶습니다.



하지만 이런 낯선 도전도 차근차근 매일매일 연습하다 보면 달라집니다. 결국 아기는 밥을 먹게 될 테니까요.





 

이유식 먹는 아기를 보면서 저는 맨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이유식 한 숟가락이 마치 제가 쓴 한 편의 글처럼 보였습니다.



한 숟가락, 하나의 글이 독자에게 읽혔다가 주르륵 퉤.

한 숟가락, 하나의 글이 독자에게 읽히지도 못하고 피웅 날아가 바닥에 철퍼덕.

한 숟가락, 하나의 글에 이런 재료 저런 재료를 넣었다가 독자가 웩.

한 숟가락, 하나의 글이 독자에게 겨우 꿀꺽.



하지만 괜찮습니다. 저는 끝을 알고 있으니까요. 대부분 흘리면서 이유식을 먹던 아기도 언젠가는 스스로 숟가락질을 해서 밥을 먹게 된다는 것을요.



아기가 꾸준히 이유식을 먹어 결국 밥을 먹게 되듯이 저도 꾸준히 쓰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 글 역시도 언젠가는 더 많은 독자들에게 꿀꺽하는 날이 올 테니까요.



처음에는 누구나 다 흘립니다. 실은 흘리는 게 당연합니다. 처음부터 모든 일을 능숙하게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숟가락으로 밥을 뜨는 것,

숟가락을 입에 넣는 것,

음식이 들어오면 이빨로 씹는 것,

이빨로 씹어서 삼키는 것,

빨대로 물을 빨아들이는 연습을 하는 것,

컵에 물을 담아 입 대고 마시는 것,

컵으로 입 대고 마실 때 흘리지 않는 것.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하는 이 하나하나가 실은 아기 때 다 했던 연습들입니다. 수많은 흘림과 시행착오들과 연습을 통해 지금 능숙하게 먹고 마실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제가 쓰고 있는 글뿐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려는 모든 일들은 다 비슷한 과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기가 이유식으로 한 단계 한 단계 난이도를 높여가며 계속 밥 먹는 연습을 하듯 우리도 계속 도전하고 연습하다 보면 잘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다 제 입으로 넣지 못하고 흘리는 게 당연합니다.  



흘리면서 배워봅시다. 더 많이 흘리고 자주 흘려봅시다. 흘리면서 어떻게 하면 덜 흘릴 수 있을지 궁리하고 연습해 봅시다. 꾸준히 연습하다 보면 혼자서 잘 먹을 수 있는 그날이 분명, 옵니다.







* <반가워, 나의 아기 선생님> 은 매주 금요일 연재됩니다. :)



여러분의 꿈이 중간에 많이 흘려지더라도 결국 다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오늘도 은은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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