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온 여자는 남자의 숨겨둔 애인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엄마보다 더 먼저 만나던 여자였고 그 여자 입장에선 엄마가 내연녀였다.청주의 버스 안내양이었던 여자는 남자를 사랑했고 남자는 여자에게 결혼을 약속했다. 남자는 여자에게 결혼 준비를 위해 600만 원이 필요하다고 하였고 여자는 돈을 마련해 남자에게 주었다. 그리고 그 600만 원은 고스란히 엄마에게로 전해졌다.
여자는 문을 왈칵 열고 들어와 방 안을 휘젓고 다녔다.
"이 년놈들이 아주 잘 살고 있네"
엄마가 이 모든 상황에 어리둥절해하고 있을 때 남자는 엄마에게 잠시 밖에 나가 있으라 말했다. 엄마가 밖으로 나가 문이 굳게 닫히자 안에서는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우당탕탕, 쨍그랑, 와장창, 엄마가 아꼈던 이 빠진 도자기 그릇이 박살 나는 소리도 들렸다. 없는 살림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찌나 부서지는 소리가 많이 들리는지 엄마는 여자를 걱정하면서도 망가진 물건 걱정도 되었다.여자가 남자에게 바락바락 소리치는 소리가 들리고 뒤이어 여자는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왔다.
활짝 열린 문 사이로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는 깨진 도자기 그릇을 쥐어 자기 배에 할복을 했다. 내장이 튀어나오진 않았지만 살이 벌어져서 피가 철철 흘러넘치고 있었다.
엄마는 지아비를 살리기 위해 애썼다. 남자가 죽을까 봐 마음을 졸였다. 병원에서 살을 꿰매고 나와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엄마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 남자는 자칫하면 나를 죽일 수도 있겠구나... 엄마는.. 진심으로 남자가 무서웠다.
남자는 여자에게 돈을 갚겠다고 했지만 시간이 흘러도 돈은 그 여자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여자는 남자를 고소했고 남자는 결혼한 지 3개월 만에 구치소에 들어갔다. 엄마는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남편인 남자를 빼내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여기저기 다니며 사정을 설명하고 돈을 마련했다. 그중에는 외할머니도 있었다.
엄마가 외할머니를 찾아갔을 때 외할머니는 그 사이에 몸이 더 쇠약해져 있었다. 매일 수혈을 해주던 엄마가 사라지니 수혈받기가 더 힘들어진 까닭이었다. 엄마는 차마 아픈 외할머니에게 상황을 설명하지 못했다. 오히려 수혈을 해주고 외할머니에게 엄마가 가진 돈 일부를 전해주고 돌아왔다. 엄마는 엄마의 외삼촌을 찾아가 부족했던 돈을 마저 마련했고 보석금으로 남자를 구치소에서 빼냈다.
그리고 머지않아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엄마는 25세가 되기 전 아빠도 없고 엄마도 없는 고아가 되었다. 이제 엄마는 누구를 의지하며 살아야 할까.
그 집에서 살 수 없게 된 엄마는 아파트 문간방에 들어가게 되었다. 지금의 쉐어하우스처럼 아파트 한채에 방 하나는 주인이 방 하나는 엄마네가 살았고 주방, 거실, 화장실을 공용으로 썼다. 그래도 엄마가 결혼한 이후에 가장 따뜻하고 좋은 환경의 집이었다. 바로 그곳에서 내가 태어났다. 그리고 그 남자는 기어코 나의 아빠가 되었다.
엄마는 폭우가 내리치던 한 여름밤, 보건소에서 혼자 나를 낳았다. 나를 낳자마자 뱉었던 엄마의 첫마디는 손가락 발가락 다 있나요? 였다. 나를 임신하고도 병원에 한 번을 가지 못해서 내가 장애가 있는지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나는 건강했다. 보건소에서 1시간 정도 숨을 고른 뒤 엄마는 빗길을 해치며 갓 태어난 신생아를 안고 아파트 문간방으로 돌아왔다. 주인아주머니가 축하한다며 미역국을 끓여주었다. 아빠는 술에 취해 그날 새벽녘이 다 되어서야 집으로 들어왔다.
내가 있으니 엄마는 밖으로 나가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월세가 보증금에서 깎이고 깎여 0이 되자 아파트 문간방에서도 나와야만 했다. 물어물어 알게 된 한 과수원에서 일을 하는 대신 방 한 칸을 공짜로 제공해준다 하여 엄마는 그곳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나를 업고 간간히 과수원일을 하며 생계와 육아를 동시에 해냈다.
이 사연을 안 아빠의 엄마인 할머니는 할머니가 있는 남양주로 들어오라고 했다. 할머니가 살고 있는 곳은 여섯째 삼촌네 단칸방이었는데 그 방에서 할머니, 아빠의 동생들인 삼촌들 2명, 아빠, 엄마, 나까지 한 방에 총 6명이 지냈다. 밤에는 지그재그로 누워 잠을 잤다. 할머니는 공장에 일을 하러 가시고, 여섯째 삼촌은 택시일을 하러 가고 일곱째 삼촌은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 모두 외출할 때면 엄마도 나를 돌보면서 집 청소를 하고 가족의 식사를 준비하며 부업을 했다.
할머니는 7남매를 낳으셨다. 아빠는 7남매 중 셋째였다. 아빠 위로 큰아버지와 큰고모가 계셨고 나머지는 다 동생들이었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셨고 할머니 혼자 자식들을 건사하다 보니 아빠네 가족들은 늘 가난에 시달렸다. 비록 가난하긴 했지만 친가 식구들 모두 선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었다. 아빠야 말로 그 집안에서 돌연변이 같은 존재였다.
나는 할머니를 좋아했다. 12살에 아빠의 접근금지가 실행된 이후로 친가 식구들을 본 적이 없어서 할머니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할머니가 우리를 참 예뻐해 주셨다는 그 느낌은 기억이 난다. 할머니는 부모가 없었던 엄마도 자식처럼 아끼고 사랑을 주셨다.
할머니에게 아빠의 어릴 적 이야기를 물어보면 아빠는 참 별났다고 했다. 어린애 같은 천진함이 별로 없어서 어딘지 모르게 속을 잘 모르겠다고 했다. 어릴 적 지뢰를 가지고 놀다 지뢰가 터져서 피가 철철 흐를 때도 아빠는 눈 하나 깜짝 않고 할머니에게 손을 내보이며 걸어왔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아빠가 일반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감각이든, 감정이든 어디 한 군데가 고장 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면 허세가 있다던가. 도대체 저런 따뜻한 할머니에게서 어떻게 아빠 같은 자식이 나온 건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어느 날 아빠는 묘수가 있다면서 일본으로 돈을 벌러 가겠다고 했다. 3개월짜리 일본 비자를 끊어 연장하고 연장하면 최대 1년까지 그곳에서 일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 당시 엔화가 비쌌기 때문에 일본에서 돈을 벌어오는 것은 충분히 좋은 기회처럼 여겨졌다. 아빠는 묘수를 실행시키겠다며 일본을 들락거렸다. 엄마와 할머니는 돈을 모아 아빠가 일본 갈 때 필요한 비행기표와 생활경비를 조달했다. 3번 정도 일본을 왔다 갔다 하던 아빠는 하루는 집으로 마마라고 불리는 어떤 여자를 데리고 왔다.
마마는 아빠 친구의 여자 친구였다. 아빠는 엄마에게 식당 주인인 마마를 따라가서 일을 해 돈을 벌어 오라고 했다. 가서 목돈을 벌어오면 삼촌네 집에서 독립해 우리 가족 따로 살 수 있다며 엄마를 설득했다. 엄마는 돈을 벌 수 있다는데, 잘 살 수 있다는 데, 무슨 일이든 못 하겠냐 싶어 마마를 따라가기로 결정했다. 또 딱히 아빠의 뜻을 거스를 수도 없었다.
일본 나고야에 있다는 마마의 식당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아빠가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곳은 식당이 아니라 술집이었고, 마마 또한 식당 주인이 아니라 술집 마담이었다.
엄마는 눈앞이 캄캄했다. 아빠가 나쁜 사람인 것은 진즉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끔찍한 사람 이리라고는 또 미처 생각지 못했었다. 어떻게 사람이 자기 부인을 속여 술집으로 보낼 수 있을까? 인간의 기본적인 도덕성이라는 개념이 있기는 한 것일까? 엄마는 허망했다. 차라리 아빠가 솔직하게 술집이라고 얘기했다면 이 정도로 허탈감이 가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엄마는 그 또한 바보 같았던 자신을 탓했다. 엄마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이렇게 된 거 돈이나 많이 벌어서 집으로 돌아가자라는 마음으로 나고야에서의 첫 날을 보냈다.
술집의 이름은 '가지 마오'였다. 재일교포들을 대상으로 하는 술집이었는데 이곳에는 엄마 말고도 한국에서 돈을 벌러 온 여성, 일본 다른 지역에서 돈을 벌러 온 여자들도 있었다. 다행히 2차를 나가는 술집은 아니었지만 엄마는 그곳에서 원치 않는 술을 마셔야 했고, 남자들 옆에 앉아 술을 따라주어야 했으며,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노래를 불러야만 했다.
보름이 되었을 무렵, 엄마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도대체 엄마 자신이 왜 이렇게 그것도 일본에서 술을 따르고 있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차라리 식당이었으면 어떻게든 버티었겠지만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집에 두고 온 딸이 사무치도록 그리웠다.
엄마는 마마를 찾아가 울면서 얘기했다. 아빠에게 속아서 왔고 이곳이 술집인 줄 알았으면 오지 않았을 것이며 딸이 너무 보고 싶으니 지금까지 일한 15일 치 급여를 주시면 떠나겠다고 말했다.
우는 엄마를 보며 마마는 가소롭다는 듯 쏘아붙이고 가버렸다.
"진짜 웃기는 년이네. 야 너 3개월치 니 신랑이 다 가져갔어! 이년아"
쿵.
밑바닥이 열리면서 엄마의 몸뚱이가 한없이 땅 밑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조명이 꺼지듯 엄마를 비추고 있던 모든 빛들이 일순간 다 사라져 암흑이 된 것 같았다. 마치 축축하고 어둡고 깊은 우물 밑바닥에 갇혀있는 것 같았다. 우물 밖 세상만이 유일하게 엄마를 비추고 있지만 우물이 너무 깊어 올라갈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올라가려 허우적대다가 손톱도 다 닳아 빠지고 누구 하나 지나가는 사람도 없고 이렇게 우물 속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 것만 같았다.
아빠는 거짓말로 엄마를 속인 것뿐 아니라 돈을 받고 엄마를 술집으로 팔아버렸다. 이대로 딸을 보지 못한다는 공포심과 절망감이 엄마를 휘감았고 엄마는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숙소로 돌아와 함께 일하던 사람들에게 사정을 했다.
함께 일하던 여자들 중에는 돈 벌러 제주도에서 온 20대 초반의 동생이 있었다. 엄마는 그 동생을 붙잡고 간절히 호소했다. 마마는 그곳에서 일하는 여자들의 여권을 모아 마마의 방 어딘가에 숨겨두었었는데 그 동생이 유일하게 여권이 있는 장소를 알고 있었다. 엄마의 집요한 호소 끝에 제주도 동생은 마마 몰래 엄마의 여권을 가져다 주기로 했다. 마침 마마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으니 오늘이 기회였다. 아니 오늘이어야만 했다. 15일짜리 비자였으므로 오늘이 지나면 다시는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이대로 평생 딸을 못 볼 수도 있는 일이었다. 엄마는 꼭 오늘이어야 했다.
제주도 동생이 마마의 방에 간 사이에 엄마는 평소 엄마를 아꼈던 남자 손님을 찾아갔다. 그 손님은 재일교포였는데 한국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고 더듬더듬 한국말을 할 수도 있었다. 엄마는 그 남자 손님을 찾아가 절절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차마 아이가 있다는 말은 하지 못하고 한국에 있는 부모님이 위독하셔서 급하게 한국을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남자 손님은 엄마가 짐을 싸서 나오면 자기가 공항까지 데려다주고 비행기 취소 티켓을 구해 한국에 보내주겠다 약속하였다.
제주도 동생이 여권을 챙겨 나오자 엄마는 즉시 남자 손님의 차를 타고 나고야 공항으로 향했다. 남자 손님은 엄마 대신 일본말로 공항직원들과 소통하며 엄마와 함께 공항에서 취소 티겟을 기다려주었다. 기다리는 동안 엄마는 혹시라도 마미가 쫓아올까 봐 마음을 졸이며 최악의 상황이 온다면 어찌할지 곱씹었다. 기적적으로 티켓이 생기자 남자 손님은 그 티켓을 자신의 돈으로 구매해 엄마에게 주었다.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항공권이었다.
한국 행 비행기에 탑승해 하늘로 떠올랐을 때 엄마는 그동안의 모든 설움이 복받쳐 올랐다. 아무리 입을 가려봐도 새어 나오는 울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엄마는 엄마의 인생이 한탄스러웠다. 기구한 자신의 인생이 너무 가여웠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애석했다. 비행기 안에서 실컷 울고 나자 엄마는 정신이 또렷해졌다. 절대 다시는 딸과 헤어지지 않을 것이라 결심했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로 아빠에게서 벗어나야겠다고 다짐했다.
집으로 돌아온 엄마를 보자 아빠는 엄마에게 욕을 퍼부었다. 특히나 아빠는 엄마를 창녀라 부르며 몸 파는 여자 취급을 했다. 술집 여자라고 더럽다고 걸레 같다는 말을 서슴지 않으며 성적 수치심을 건드리는 욕들을 엄마를 향해 흩뿌렸다. 그리고 이때부터 아빠의 본격적인 폭력이 시작돼었다. 이전에 맞았던 따귀는 가벼운 수준이었다. 아빠는 엄마가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자 발로 차고, 발로 밟고, 주먹을 휘둘렀다. 술에 취해 들어와 이성의 끈이 놓아진 날이면 무차별적으로 공격이 시작되 온몸의 뼈가 작살나는 듯했다. 함께 있던 가족들이 말려봐도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엄마는 계속해서 아빠에게 맞아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