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엄마는 아빠를 사랑해서 결혼한 게 아니었어.

by 은은한 온도

엄마의 평탄한 인생은 엄마 나이 18살,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깨어졌다.


엄마네 집안은 유복했다. 엄마는 어릴 적 돈 걱정을 하면서 살아본 적이 없었다. 외할머니는 쌀집을 운영하셨고 외할아버지는 그 당시 오산에 있는 단위농협의 소장님이셨다. 임기응변에 능하고 책임감이 강했던 똑똑한 외할아버지 주변에는 늘 사람이 많았고 넓은 인맥과 지위만큼 나름 그 지역에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었.


엄마는 5남매 중 딱 가운데, 셋째로 태어났다. 외할아버지는 큰 외삼촌의 바로 아래인 둘째 외삼촌이 어릴 적 돌아가시자 아들을 하나 더 낳아야겠다고 생각고 줄줄이 딸 셋을 낳은 뒤 막내 삼촌이 태어나자 을 닫았다. 큰외삼촌, 큰 이모, 엄마, 작은 이모, 막내 삼촌. 이렇게 아들과 딸, 딸과 아들 사이에 딱 간이었다. 서열을 보고 엄마 성격이 왜 온순할 수밖에 없었는지 단박에 이해를 했다.


형제 서열 중 가운데 중심 차지하고 있는 엄마는 참 착실하고 착한 딸이었다. 잡기에 능했던 큰 외삼촌, 고등학교 졸업 전에 임신을 해서 일찍 시집을 간 큰 이모, 소위 좀 놀았던 작은 이모, 아직 너무 어렸던 막내 삼촌. 이 요란했던 형제자매들 사이에서 엄마는 늘 조용하고 성실한, 부모에게 걱정할 거리를 만들지 않는 순한 이었다. 집과 학교 이 두 장소만 오갔으며 연애를 해본 적도 없었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바로 부모님의 일손을 도와 쌀 배달을 다니는 그야말로 든든한 딸이 바로 엄마였다.


그래서인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착하고 순한 예쁜 중간 딸을 참 예뻐하셨다. 사랑도 많이 주셨다. 엄마는 얘기했다. 형제들 모두 권위적인 외할아버지를 많이 무서워했지만 엄마는 별로 무섭지 않았다고. 아마 외할아버지 뜻에 거스르는 행동을 일절 하지 않으니 엄마는 딱히 두려워할 것도 무서워할 것도 없었던 것 같다.


한편 중간에 끼어있다 보면 진짜 원해서라기 보다는 오빠 언니에게 양보하고, 동생들에게 양보하며 어쩔 수 없이 중간 역할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엄마는 달랐다. 말 순수한 의도로 나라도 부모님 속을 섞이지 말아야지 생각했고, 왜 굳이?라고 생각하며 중간 딸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며 살았다.


지금도 보면 엄마는 엄마에게 벌어지는 모든 현상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편이다. 나는 왜 이러지? 나만 왜 이렇게 힘들지? 왜 나는 남편한테 맞아야지? 하며 자신의 삶이나 처지를 비관하지 않았다. 비관이나 좌절보다는 우선 현재의 자신의 삶을 받아들였다. 그저 받아들이고 다음 살 길을 도모했다. 나와 내 동생을 쭉 키워내면서 엄마의 꿈은 현모양처라는 말을 이따금 뱉기는 했지만 절대 자신의 인생이 왜 이렇게 힘든지 우리에게 하소연하는 모습도, 아빠 때문이라며 아빠를 탓하는 모습도 본 적이 없다. 언할 수 있다. 나와 내 동생이 이렇게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엄마덕분이라고.


엄마가 이렇게 만 쭉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엄마는 아빠 같은 사람을 만나지 않고 엄마의 꿈인 현모양처가 되어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사람의 인생은 얄궂은 면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당뇨가 심했던 외할아버지가 위암 말기 선고를 받았다. 할아버지는 술을 받고 1년도 채 되지 않아 하늘의 별이 되셨다. 이미 큰 이모는 출가한 상황이었고 엄마와 7살 차이가 났던 큰 외삼촌은 지에 가장이 되었다.


처자식과 미성년자였던 동생들을 건사해야 했던 큰 외삼촌은 그동안 할아버지가 쌓아두었던 든 재산을 노름으로 탕진했다. 그것도 모자라 외할아버지 입김으로 들어간 농협에서 공금을 횡령해 회사에서 쫓겨나기까지 했다. 에는 빨간딱지가 붙고 2층 집에 살던 가족들은 순식간에 모두 다락이 딸린 단칸방으로 옮겨갔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엄마는 고3 여름방학이 지나고부터 바로 수원에 있는 농협에 취직을 해 10대 때 가장이 되었다.


엄마의 외모는 외할머니를 닮았지만, 성격은 외할아버지를 닮은 것 같다. 외할아버지는 살아생전에 처와 다섯 남매, 외할아버지의 두 번째 부인과 자식 셋, 증조할아버지, 외할아버지 형제의 처와 자식까지 건사할 만큼 착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분이셨다. 이런 외할아버지의 굳건함 대부분 엄마에게 내려간 것 같다. 엄마는 매일매일 남은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하고 또 일했다. 일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듯 살았었다.


이대로 쭉 살며 집안이 일으켜졌으면 좋으련만 또 슬픈 일이 생겼다. 엄마네 가족은 단칸방에서 살았었기 때문에 화장실이 밖에 있었다. 방안에는 요강이 하나 있었는데 어느 날 밤 엄마는 용변을 보기 위해 요강 뚜껑을 열었다가 일순간 잠에서 깨어났다. 요강 안에는 오줌 대신 피가 가득 차있었다. 엄마는 외할머니를 깨웠다. 할머니는 이미 가족들 몰래 병원에 가서 자궁암 판정을 받은 상태였다. 엄마 나이 22살이었다.


엄마는 외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다시 찾아갔다. 병원에서는 이미 수술도 할 수 없는 상태라며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다고 했다. 액형이 맞았던 엄마는 때부터 할머니에게 주기적으로 수혈을 해주었다. 할머니는 하룻밤 사이에도 요강을 몇 차례나 비워 내릴 정도로 피를 쏟았다. 제대로 혈액을 공급받지 못한 할머니의 몸과 머리는 늘 아팠다. 누가 망치로 머리를 때리는 것 같다고 하기도 했고 머리에 기차가 지나가는 것 같다고도 했다. 수혈의 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있었고 그만큼 외할머니를 보내드려야 하는 시간도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하필이면 바로 이 시점에, 엄마는.. 아빠를 만나게 되었다.



엄마는 내가 어릴 적부터 늘 다양한 경험을 해보라고 했다. 특히 남자를 많이 만나보라고 했다. 엄마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우리에게 자주 성교육을 시켜주었다. 내가 15살에 남자 친구와 키스한 것을 걸렸을 때, 혼날까 봐 웅크리고 있던 나에게 엄마는 다정하고도 분명하게 말해주었다.


"어땠어?"

"음.... 괜찮았어.."

"그래? 그럼 됐어. 좋아하는 사람이랑 스킨십하고 싶은 건 당연한 거야. 대신 네 기분이 어떤지가 중요해. 어떤 이유에서든 네가 이상하다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면 그건 안 되는 거야. 알겠지?"


나는 이렇게 말해준 엄마 덕분에 연애하는 동안 남자 친구가 없다며 엄마를 속여본 적이 없다. 오히려 늘 엄마에게 일정 시점이 되면 남자 친구들을 보여주었다. 더불어 스킨십에 관해서도 신념이 생겨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절대 선을 넘지 않았었다.


엄마는 늘 말했다. 연애도 많이, 경험도 많이 해봐야 한다고. 엄마가 집과 학교밖에 모르고 남자도 만나본 적 없어서 너무 순진하기만 했다고. 그렇게 순진하기만 하면 안 된다고. 엄마가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순진했기 때문에 너네 아빠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된 거라고.

정말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엄마가 조금만 더 세상 물정을 알았더라면, 그때 그렇게 순순히 아빠 손에 이끌려 가진 않았을 것이다.




엄마는 평소처럼 근무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은행으로 잘못 걸린 전화가 왔다. 경기 구 의료보험조합을 찾는 전화였다. 아니라고 전화를 끊었지만 같은 장소를 찾는 전화가 3번이 다. 친절한 엄마는 마지막 3번째 전화에서 상대방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한 뒤 114에 물어봐 경기 구 의료보험 조합번호를 찾아 알려주었다. 알고 보니 마지막 한자리가 은행 번호와 달랐다. 잠시 뒤에 엄마 자리로 또 전화가 울렸다. 엄마가 전화를 받자 조금 전에 그 남자였다. 전화 속 남자는 엄마가 친절하게 대해주어 감사하다며 인사를 전하기 위해 다시 걸었다고 했다.


그다음 날부터 3개월 동안 엄마 앞으로 매일 속달 등기의 편지가 도착했다. 잘못 걸린 전화 속 남자가 보낸 편지였다. 남자는 어디를 갈 때마다 엄마 생각이 난다며 자신의 마음을 나지막이 전했다. 편지 속의 내용은 정말이지 아름다웠다. 사람의 가슴을 울리게 할 만한 글들이었다. 은행 사람들은 엄마에게 전달되는 연애편지를 읽으며 호들갑을 떨었고 몇몇의 직원들은 엄마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엄마가 답장을 보낸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 편지들을 읽을 때마다 가슴이 말랑해지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누군가로부터 고백을 받는다는 것은 꽤 기분 좋은 일이었고 힘든 생활 속에서 그 편지들은 엄마에게 위로가 되었다. 편지 속의 남자는 열심히 사는 근사한 청년이었고 엄마도 점점 이 남자가 궁금졌다.

그리고 100째 편지가 왔던 날, 편지 속의 남자는 엄마에게 만나자고 했다. 은행 전화로 서로 어떤 옷을 입고 있겠다 약속도 정했다. 약속 장소는 남자가 살고 있던 청주였다. 오산에 살고 있는 엄마 집과는 거리 차이가 좀 있었지만 엄마는 청주로 내려갔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편지 속 남자와 터미널에서 처음 마주했을 때 엄마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편지를 통해 상상해왔던 남자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었다.


편지 속 남자는 눈이 작고 키도 작고 피부가 까맸다. 콧수염을 기르고 있었고 짧은 곱슬머리를 하고 있었다. 엄마의 이상형과는 달라도 한참 달랐다. 엄마는 과거 교회 오빠를 짝사랑 한 적 있었는데 똑똑하고 다정하고 점잖은 남자였다. 하지만 이 남자는 점잖다는 것과도 거리가 멀었다. 엄마는 방방 뜨는 목소리를 지닌 이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경양식 레스토랑에서 돈가스를 먹은 뒤 엄마는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남자는 엄마가 초행이라 길을 잘 모르니 자신이 직접 터미널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하며 함께 택시를 탔다. 하지만 택시를 타고 도착한 곳은 남자의 자취방 앞이었다. 엄마는 놀라서 뭐하시는 거냐고 물었다. 남자는 놀란 엄마를 진정시키며 집에 들어가 차 한 잔 하자며 엄마를 꾀어냈다. 차 마시고 나면 이번에는 정말 터미널을 데려다주겠다고 차분하게 엄마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바보 엄마는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날, 엄마는 겁탈을 당했다. 차 한잔이 거의 끝나갈 무렵 남자는 엄마의 손을 잡았고 엄마는 그 손을 뿌리쳤다. 엄마는 그제야 무엇인가 잘 못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그 남자의 소굴 안에 들어와 있었다. 고삐 풀린 남자의 추악한 속내가 여실히 밖으로 드러났다. 남자는 엄마를 덮쳤고 엄마는 온 힘을 다해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굶주린 검은 늑대 소굴 안에 들어간 순진하고 어린 새하얀 토끼였다. 제 아무리 토끼가 날쌔다 한들 늑대 집 안에서 어떻게 탈출할 수 있었겠는가. 남자는 거세게 저항하는 엄마를 힘으로 붙들어 의자에 손과 발을 묶어버렸다. 미처 끝나지 않은 월경혈이 의자에 묻어 나왔다. 의자에 묶이고 나자 엄마의 마음에서 무언가 스르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더 이상의 저항은 무의미했다. 상황은 벌어지고 있었고 토끼는 그렇게 늑대에게 잡아먹혔다.

다음날 엄마는 집으로 돌아왔다. 중간 딸의 처음 있는 외박에 매우 놀란 외할머니에게 엄마는 친구 집에서 자고 왔다고 둘러댔다. 회사에는 그만두겠다 말했다. 엄마는 창피했다. 그 누구에게도 말을 할 수가 없었고 밖에 나가고 싶지도 않았다. 수치심과 부끄러움, 절망과 자책이 서로 엉겨 붙어 엄마를 짓누르고 있었다. 신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실제로 성폭행 피해자들은 본인이 성폭행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죄책감을 느끼며 자책한다고 한다. 왜 내가 당했을까, 왜 더 격렬하게 저항하지 못했을까, 왜 막아내지 못했을까 하며 괴로워한다고 한다. 엄마도 그 남자를 탓하기보다는 자신을 탓했다. 내가 왜 청주로 내려갔을까? 내가 왜 그 남자와 같이 택시를 탔을까? 내가 왜 그 남자가 차 한잔 하자는 그 말을 믿었을까? 나는 왜 그 남자 집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을까? 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엄마는 이 모든 것을 오롯이 혼자 감당하고 있었다.

엄마의 사표 소식에 지점장이 찾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고살아야 하니 엄마는 마음을 붙잡아 일주일 만에 다시 출근을 했다. 다시 출근을 한 지 머지않아 남자는 엄마가 일하는 은행 앞으로 꽃다발을 들고 찾아왔다. 남자는 엄마에게 너를 책임지겠다 말한 뒤 돌아갔다.

혼란 속에 있던 엄마에게 스친 생각은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의 말이었다. 가부장적이었던 외할아버지는 들에게 말했었다. 여자는 첫 몸 뺏긴 남자에게 시집을 가야 한다고. 여자는 첫 몸을 뺏기면 정조를 잃기 때문에 그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한다는 외할아버지의 말이 왜 그때 생각이 났을까? 엄마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그 남자와 결혼을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엄마는 외할머니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 그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했다. 외할머니는 자신이 죽기 전에 딸이 시집가서 안정적으로 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또 만약 엄마까지 출가한다면 큰외삼촌이 정신을 차리고 가족을 돌보지 않겠냐는 생각에 할머니는 엄마의 결혼을 허락다.


만약에 그때 엄마가 남자에게 당했던 일을 아픈 외할머니나 대찼던 여동생에게 말했다면 과연 엄마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달라지긴 했을까? 나라면 아픈 어머니를 두고 과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자신보다 어린 여동생에게 말을 할 수 있었을까? 고민하게 된다. 분명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쉽지 않았음에도 나는 그때 엄마가 결혼을 선택했던 자신을 얼마나 탓했는지 알고 있다. 그렇기에 딸들은 그러지 않았으면 해서 나에게 연애도 많이, 경험도 많이 해보라고 했던 것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이런 엄마의 삶을 들여다볼 때면 더욱 가슴이 아프다.



결혼 준비가 시작되었다. 엄마는 상견례를 하려 했지만 자는 남자의 가족들이 모두 외국에 살고 있다고 했다. 결혼식 당일에 다 오기로 이야기가 되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엄마에게 600만 원을 주었다. 남자는 이제 청주에서 살아야 하니 은행을 그만두는 게 어떻겠냐 해서 엄마는 직장도 그만두었다. 엄마는 남자가 준 돈으로 식장을 잡고 남자의 자취방에 장롱과 이런저런 가구들을 사서 넣어놨다.


결혼식은 4월 5일 식목일이었다. 엄마 나이 23살이었고 남자가 편지를 보낸 날로부터 결혼까지는 꼬박 10개월이 걸렸다. 결혼식 당일날이 되자 남자의 말과 달리 남자의 가족은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엄마의 친적 어른들이 사기결혼이라며 난리를 쳤다. 그러자 남자는 예식이 끝나기가 무섭게 엄마를 데리고 도망을 쳤다. 분명 제주도에 신혼여행 숙소를 예약했다고 했었는데 남자는 엄마를 제주도가 아닌 강원도로 데리고 갔다. 강원도에도 예약된 숙소는 없었다. 그 당시 식목일은 공휴일이라서 호텔, 모텔, 콘도 등 모든 숙박업체들이 만석이었다. 엄마는 물도 나오지 않은 민박집에서 신혼 첫 날밤을 보냈다.

2일의 신혼여행을 마치고 청주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는데 또 놀랄 일이 있었다. 엄마의 짐을 포함하여 방 안에 있던 모든 신혼살림들이 다 밖으로 나와 있었다. 알고 보니 남자가 살면서 단 한 번도 월세를 내지 않은 것이었다. 참다못한 주인이 방안에 있던 짐들을 다 밖으로 꺼내 놓았고 엄마는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신혼집에서 쫓겨났다. 다행히 그날 바로 주방이 없는 방하나를 구했고 엄마와 남자는 한동안 그곳에서 살게 되었다.

엄마는 도자기 공장에 일을 구했다. 은행에 다녔던 어여쁜 숙녀는 공순이가 되었다. 엄마는 도자기 공장에서 이가 빠진 파기 물건을 집으로 몰래 들고 와 밥그릇, 국그릇으로 이용했다. 주방이 없던 방이라 곤로를 가지고 밥을 지어먹었다. 돈이 없어서 하루하루 끼니 걱정만으로도 벅찼는데 남자는 돈을 벌지 않고 그 당시 개최했던 86 아시안게임에 봉사를 하러 다녔다.

그렇게 결혼한 지 3개월이 됐을 무렵이었다. 마와 남자가 밥을 먹고 있는데 별안간 어떤 여자가 찾아와 방문을 벌컥 열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자의 다른 여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