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이 여자는 자식을 버리고 도망간 여자입니다.

by 은은한 온도

엄마는 그 이후로도 내내 아빠에게 시달렸다.


아빠는 엄마를 불러내 자동차 조수석에 태우고 어디론가 데려갔다. 아빠가 엄마를 태워 도착한 곳은 낭떠러지였다. 낭떠러지에서 아빠는 다시금 그만의 방식으로 엄마와 대화했다. 함께 살지 않을 시 이대로 떨어진다는 무서운 말이었다.


아빠는 같은 이야기를 계속 반복했다. 엄마의 대답도 한결같았다. 엄마에게 가해지는 파괴적 압력도 죽지 않을 만큼 일정했다. 아빠는 차에 타고 있는 엄마의 얼굴을 자동차 유리창에 짓이겼다. 짓이긴 것으로도 성에 차지 않을 때는 주먹으로 얼굴을 강타했다.


한쪽으로만 물이 똑똑 떨어지면 바위조차 구멍이 난다. 같은 방향으로 거니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 방향으로 자연스레 길이 생긴다. 엄마의 가녀린 목은 같은자리에서 같은 패턴으로 날아오는 주먹에 자리를 잃고 돌아갔다. 돌아간 목이 다시 자리를 잡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아빠의 자해와, 협박과, 폭력과, 강압은 다양한 방법으로 이렇게 계속되고 있었다.


헷갈렸다. 아빠가 진정으로 가족과 함께 살고 싶은 것인지 그저 분풀이 대상을 찾고 싶은 것인지 아빠의 본심이 무엇이며 그 기저에 어떤 감정이 오갔을지 헤아릴 수가 없었다. 진심으로 함께 살고 싶다면 이런 방법이 아니라 이전과 다른 행동을 보여주어 가족의 마음을 돌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정말 이 방법이 옳다고 믿는 것일까? 이 방법밖에 모르는 것일까?


아빠는 정녕 미성숙한 인간이었다.




그 당시 엄마는 잠실 롯데백화점 아동복 코너에서 일하고 있었다. 엄마에게는 아빠 말고도 엄마의 신경을 쓰이게 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는데 바로 엄마의 막냇동생이었다.


최근 엄마의 막냇동생인 삼촌부부가 며칠 째 연락이 닿질 않았다. 엄마는 삼촌과 숙모가 걱정이 되었다. 체 찜찜한 기운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날은 엄마가 삼촌네 집에 가기로 작정을 한 날이었다. 엄마는 잠실에서 일을 마치고 옆 매장 언니와 함께 삼촌 집으로 가기로 했다. 촌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왜 연락이 안 되는지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건지 기어코 꼭 확인해야 성이 풀릴 것 같았다.


그런데 하필 그날, 엄마가 일하는 매장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빠였다. 아빠는 엄마에게 만나서 이야기 좀 나누자고 했다. 엄마는 약속이 있어 만날 수 없다고 거절했다. 그날은 어떻게든 동생을 보러 가야 했기 때문에 쓸데없이 반복되는 아빠와의 대화로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전화를 끊고 머지않아 엄마를 찾는다는 내용의 송이 백화점 전체에 울려 퍼졌다. 기어코 엄마를 곤란하게 만드는 아빠였다. 하지만 오늘은 런 아빠조차 신경 쓸 여력이 되지 않았다. 계속해서 울리는 전화벨을 무시하고 엄마는 묵묵히 퇴근시간만을 기다렸다.


엄마의 일터는 송파구 잠실, 삼촌네 집은 강서구 화곡. 지하철로도 거의 1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였다. 엄마는 옆 매장 언니와 함께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불길한 생각을 최대한 억누르며 이런저런 대화를 하는데 문득 어디선가 엄마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엄마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엄마의 시선 끝에 익숙한 얼굴이 스쳤는데 바로 아빠였다.




아빠는 예전부터 늘 엄마를 의심했다. 일반적인 말로 의처증, 사전적 정의로 부정 망상이라고 한다. 사전에 따르면 부정 망상은 부인 또는 남편이 상대방의 정조를 의심하는 망상성 장애의 하나이며 증거가 확실해도 믿지 않고 오히려 배우자가 부정하다는 증거를 찾고 싶어 한다고 쓰여있다. 주로 편집증적 성격을 지닌 사람에게 많이 나타나며 심리적으로 배우자에 대한 열등감이 있는 사람에게도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사실, 옛날부터 아빠가 엄마를 때리고 엄마를 못살게 군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이점이었다. 회사를 다니지 못하게 하는 것도 일하러 가는 것을 극도록 싫어하는 것도 모두 엄마가 다른 남자를 만나 바람을 피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는 알지 못한다. 그저 엄마가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점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의처증의 이유였다.


엄마는 시장에서 몇 천 원짜리 옷을 걸치더라도 백화점에서 사 온 옷이라고 믿게 할 만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몸에 난 상처도 눈에 든 멍자국도 엄마의 아름다움을 가릴 수 없었다. 어디를 가도 엄마는 눈에 띄는 사람이었고 오히려 진흙 속의 진주처럼 스스로 빛을 냈다. 그렇다. 엄마는 스스로 빛을 내는 맑은 사람 것이다.


나는 너무 맑으면 때로는 불안하고 두렵다. 너무 깨끗하고 투명하고 맑은 물을 볼 때 아름다움에 감탄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너무 맑기 때문에 오히려 무섭고 겁이 날 때가 있다. 마치 내 속내가 맑은 물에 다 비치어 들통날 것만 같은 부끄럽고 불편한 감정이 다.


지금의 나는 아빠를 추측해본다. 내가 아빠의 딸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아빠도 어쩌면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리 짓밟아도 아무리 상처를 주어도 훼손되지 않는 고귀하고 단단한 엄마의 맑음 앞에서 아빠는 불안을 느끼고 겁이 났을 거라고. 아빠의 기저에 어떤 종류의 두려움과 불안이 자리하고 있었는지 본인조차 미처 알지 못했만 그저 본능적으로 알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아빠는 절대 엄마를 꺾을 수 없다는 것을.


다른 것은 몰라도 아빠에 대해 분명 말할 수 있는 점이 하나 있다. 아빠는 그 맑은 물을 그대로 보존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이 겁이나 그 물에 흙탕물을 끼얹어 망가뜨리고 가는 사람이는 점이다.


아빠가 저렇게 엄마를 따라온 이유는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까닭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엄마가 하리라고 예상하는 부정의 현장을 스스로 잡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늘은 아빠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굳이 따돌리지도 굳이 걸음을 재촉하지도 않고 엄마는 엄마의 길을 갔다.


삼촌 집에 도착하니 문이 잠겨있었다. 문을 두드려도 기척이 없었다. 엄마는 삼촌이 혹시라도 자다가 연탄가스를 마시고 일어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엄마는 주인아주머니를 만나 사정을 한 뒤에 아예 열쇠를 새것으로 교체하고 나서야 방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방은 비어있었다. 모든 것이 단정했다. 래도 최악의 상황은 면한 것 같아 정을 반쯤 내려놓고 엄마는 밖으로 나갔다.

문을 열고 나가자 건물 초입에 아빠가 서 있었다. 아빠는 역시 그랬다는 듯 확신의 눈빛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는 동행했던 옆매장 언니에게 외쳤다.

"뛰어!!!"


정신없이 달렸다. 알지 못하는 동네의 골목골목을 죽기 살기로 뛰었다. 여기서 잡힌다면 어떤 상황이 초래될지 불 보듯 뻔했다. 누가 쫓아온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다리가 무거울 수가 없었다. 내딛는 걸음마다 납덩어리를 매달아 놓은 것처럼 무거웠고 마치 강한 자석이 등 뒤에서 엄마를 끌어당기고 있는 것만 같았다. 거친 숨이 귓가에 가득 찼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엄마가 아무리 재빨라도 아빠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결국 엄마의 머리채는 아빠의 거친 손에 잡히고 말았다. 작은 구멍가게 앞이었다. 교차로 앞에 있는 구멍가게라 사방에서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증거를 단단히 잡았다 생각한 아빠의 폭언과 폭행은 자신만만했다. 하늘에서 미사일과 폭탄들이 목적지를 향해 자비 없이 떨어지는 것처럼 뺨, 머리, 얼굴, 등, 배, 가슴, 무릎 할 것 없이 아빠의 손과 아빠의 발이 엄마의 몸뚱이로 쉼 없이 쏟아져내렸다. 엄마는 길 모퉁이에 내동댕이쳐지고 다시 붙들려 가서 또 내동댕이쳐지기를 반복했다. 사람들이 점점 아빠와 엄마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아빠는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이 여자는 걸레 같은 년입니다. 남자한테 미쳐서 자기 새끼도 버리고 도망간 아주 나쁜 년입니다!"


엄마는 반박하고 싶지도 않고 반박할 수 있는 몸 상태도 아니었다. 그저 아빠의 모든 폭력을 오롯이 감내할 뿐이었다. 엄마의 몸 군데군데에서 피가 흘러내렸고 옷가지와 머리는 이미 누더기처럼 찢어지고 헝클어져 있었다. 사람들도 이 낯선 광경에 그 누구 하나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저 왕좌왕할 뿐이었다.


아빠는 자신이 엄마를 때리는 정당성을 사람들에게 공표한 뒤 다시금 엄마에게 집중했다. 그 이후로도 한동안 엄마는 아빠의 폭력을 온몸으로 받아내었다.


그리고 마침내 옆매장 언니의 신고로 경찰이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