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출소했다. 아빠가 출소했다는 사실은 아빠가 나를 찾아왔기 때문에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짧은 행복의 시간 동안 왜 우리 가족은 자유를 얻었다고 자신했을까? 아빠가 우리를 찾으러 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우리의 순박함이 너무나 처연했다. 아빠가 내 눈에 비치고 나서부터 내 삶은 물론 우리 가족의 삶에 본격적으로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아빠는 출소해서 곧장 고모집으로 갔다. 나와 내 동생이 그곳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의리가 있었는지, 우리 가족을 가엽게 여겨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고모는 우리의 위치를 끝내 말하지 않았다. 그저 애들 엄마가 데려갔다. 어디로 갔는지는 나도 모른다라는 말로 일갈했을 뿐이었다.
아빠가 엄마를 찾는 방법은 의외로 손쉬웠다. 학교를 통해 나를 찾으면 되었다. 내가 어디에서 어디로 전학을 갔는지만 파악하면 되는 아주 간단한 작업이었다. 아마도 딸아이의 아빠다라는 말 몇 마디로 내가 전학 간 학교를 찾기 쉬웠을 거라 생각한다.
아빠는 수시로 거짓말을 일삼던 사내였는데 이런 것까지 꾸며대나? 싶을 정도로 혀가 능수능란했다. 아빠의 타고난 언변에는 풍부한 감정과 진심이 깃들어있었다. 듣는 이로 하여금 마음의 동요를 가져오기에 충분했고 아빠를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면 그의 이야기를 모두 사실로 받아들였다. 나 또한 때로는 아빠의 거짓말이 진실이라고 믿고 싶을 때가 있었으니까.
여느 때와 같이 엄마가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열었을 때 이미 아빠는 나와 내 동생과 함께 집 안에 앉아있었다. 엄마는 이 놀라운 광경에 보고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숨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빠를 피해 달아나 봤자 아빠의 손바닥 안인 것 같은 무력감이 엄습해왔다. 그간 살을 깎는 고통으로 일구어낸 엄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12살의 나는 "엄마 미안해"라는 말만 되뇌며 아빠를 만났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실토하며 울먹였다.
아빠는 나를 통해 우리 집을 찾았다. 아빠가 집안에 들어온 그날로부터 며칠 전 아빠는 나를 찾아와 집 열쇠를 잠시 빌렸다. 나는 복사한 열쇠가 있다고 해도 집을 모르면 무용지물이라는 아주 얄팍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무리 애가 애 같지 않다느니 이제 다 컸다느니 그런 소리를 들었더라도 어린아이는 어린아이였다. 아이의 사고방식이 어른만큼 널찍할 리가 없었다.
그날 밤 엄마는 아빠를 내쫓았다. 아빠도 순순히 돌아갔다. 하지만 엄마의 뜻을 이해하고 조용히 물러갔을 거란 엄마의 생각은 오산이었다. 아빠는 집도 알았겠다. 열쇠도 있겠다. 본격적으로 우리 집을 들락거렸다.
아빠는 유독 술 취한 날에 우리를 찾아왔다. 아빠는 엄마에게 밖에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고 엄마는 당연히 그러자고 했다. 집에는 나와 내 동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빠는 엄마와 계속해서 함께 살고 싶어 했다. 그래서 엄마를 다각도로 설득했다. 다정하게 말을 하기도 하고, 앞으로 어찌어찌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하기도 했으며 다시는 손대지 않겠다며 잘못을 빌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떤 말에도 엄마의 대답은 모두 한결같았다.
"싫어. 당신과 함께 살지 않아."
대화로 하는 회유가 먹히지 않겠다고 판단한 아빠는 환한 가로등 불빛에서 나와 어두운 골목으로 엄마를 데려갔다.
엄마가 캄캄한 어둠의 장막 속으로 발을 내딛자 곧장 아빠의 손이 날아왔다. 한 번으로 끝낼 아빠가 아니었다. 엄마의 얼굴이 발갛게 부어올랐다. 엄마의 몸도 갈 길을 못 찾고 휘청거렸다. 비틀대던 몸이 결국 바닥으로 주저앉으면 이윽고 발이 등장했다. 성난 발은 엄마의 야윈 몸을 여러 차례 절구질했다.
철저하게 감추어진 좁고 어두운 골목에서는 비명조차 들리지 않았다. 엄마는 아빠에게서 가해지는 온갖 종류의 타격을 모두 삼켜냈다. 엄마가 소리 없이 저항할수록 겁쟁이 아빠는 더욱 흥분해 날뛰었다.
엄마는 절대 굴복하는 법이 없었다. 36살이었던 엄마의 정신은 그 무엇보다 선명했다. 엄마는 알고 있었다. 지금 여기서 아빠를 받아들인다면 앞으로는 절대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엄마와 아빠는 이미 1991년도 내 나이 4살, 내 동생이 태어나던 무렵 이미 서류상 이혼이 되어있었다. 이혼이 되어 있음에도 아빠는 늘 엄마를 쫓아다녔고, 그에 따라 엄마와 아빠는 내내 사실혼 관계로서 살게 된 것이었다. 아이들을 떠났을 무렵 사실혼 관계를 해지하려면 등본상 따로 떨어져 사는 기간이 1년이 넘어야 한다고 엄마는 들었다.
엄마가 아이들을 떠나 혼자 자립의 거처를 마련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엄마는 매일매일 피를 토해내는 심정으로 버텨냈다. 아이들이 사무치도록 그리울 때마다 하루라도 더 빨리 돈을 벌어 아이들을 데려올 생각으로 심연의 시간들을 견디었다.
아이들을 떠나는 선택을 감수하며 구축한 터전이었다. 이대로 모든 것이 사라지게 둘 수는 없었다. 엄마의 각오는 그 어느 때보다 단단했다.
엄마에게 가해진 무력으로는 엄마를 설득하지 못하리라 생각한 아빠는 그때부터 우리 모두에게 협박을 하는 노선으로 갈아탔다.
"다 같이 함께 살지 않는다면, 그냥 다 같이 죽자"
아빠는 가스 밸브를 끊었다. 아빠의 손에는 라이터가 쥐어져 있었다. 라이터를 거머쥔 손이 선포하듯 위로 치켜세워졌다. 보이지 않는 가스가 집안 곳곳 스며들면서 욕조에 물이 차오르듯 우리를 감싸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는 옷 아래 춤과 소매 깃으로 입과 코를 틀어막은 채 아빠를 주시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 누구도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아빠와 우리는 서로 대치하며 시선을 마주했다. 엄마는 침착하게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나누며 아빠의 손이 점점 내려가다 털썩하고 풀렸을 때 나와 내 동생은 그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문을 열어젖혔다.
살고 싶었다. 진심으로 살고 싶었다. 이렇게 아빠 손에 죽기는 싫었다.
머지않아 아빠는 식칼을 들었다. 우리 세 모녀는 비명을 지르며 방의 가장 안쪽으로 물러났다. 주저앉은 엄마는 나와 내 동생을 강하게 부둥켜안았다. 엄마의 손 끝에서 우리를 절대로 놓치지 않으려는 강한 힘이 느껴졌다.
아빠는 앞섬을 풀어헤쳐 그의 말간 맨살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그어댔다. 잔 흠집이 아빠의 몸에 새겨지고 그 흠집을 따라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피가 흐르는 몸뚱이를 나는 지켜보았다. 식칼은 마치 잔뜩 굶주린 독사의 눈처럼 먹잇감을 찾아 수색하는 것 같았다. 한참 길을 잃고 서성이던 식칼이 이윽고 우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살려주세요... 아빠.. 하지 마세요. 잘못했어요..."
내 몸에 붙어있는 모든 장기와 사지 하물며 목소리까지도 바들바들 떨렸다. 죽음이 이토록 가깝게 느껴졌던 순간은 없었던 것 같았다. 우리 가족이 사는 방법은 지금 나의 아비가 우리에게 하고 있는 저 행동을 멈추게 하는 것뿐이었다.
빌었다. 살려달라고, 잘못했다고,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필사적으로 빌었다.
끝내, 칼은 거두어졌다.
이제는 안다. 정말로 죽으려 했다기보다는 궁지에 몰린 사람의 극단적인 표현이었음을. 이렇듯 아빠는 참으로 미숙한 사람이었다. 자기 뜻대로 무언가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에 따른 해결방법을 폭력과 협박, 자해로 성취해내는 사람이었다.
이 무렵 나는 스스로 목숨을 거두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아빠 손에 죽는 것은 싫었지만 삶을 잃어가게 할 만한 죄책감이 내 안에 가득히 퍼지고 있었다. 우리 가족을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뜨린 장본인이자 파국의 매개체가 된 나라는 사람이 사라진다면 이 괴로움 모두 해결될 것만 같았다.
내가 아빠에게 열쇠를 주지 않았더라면..
아빠가 미행하는 것을 눈치채고 집을 돌아갔더라면..
아빠를 처음 봤던 날 엄마에게 미리 말을 했었더라면..
애초에 아빠를 만나지 못하게 정문으로 하교하지 않았더라면..
나만 없었다면, 엄마와 내 동생.. 우리 가족이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텐데..
나 때문에 엄마가 다시 맞고 있어.
나 때문에 내 동생이 죽을 뻔했어.
나 때문에...
죄책감과 억울함과 서러움이 한데 엉켜 나를 휘감아 놓아주질 않았다.
나는 이따금 옥상에 올라갔었다. 올라갈 때마다 살고 싶다는 실낱같은 마음이 저 아래 묻혀서 끊임없이 나에게 속삭였다. 그 속삭이는 소리에 응답을 한 나는 어두워진 밤하늘을 바라보다 다시 내려가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