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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한 온도 Sep 12. 2023

입덧을 하더라도 멈추지 말걸.

2021년 12월 나는 나에 대해 뜨거운 결정을 했다.


바로, 미라클 모닝이었다.



직장생활과 육아 그리고 집안일을 하는 동안 나는 당최 나라는 사람이 누구였는지를 어버렸었다. 그래서 온전히 나에 대한 시간을 주기 위해 라클모닝을 시작했다.


미라클모닝을 습관으로 만들기 위해 꽤 고군분투했다. 조용히 하면 흐지부지 될까 봐 주변에 소문도 냈고, 일부러 블로그에 루하루의 남겼다. 오픈채팅방에도 들어갔고, 새벽기상에 관한 책을 읽었으며, 미라클모닝모임에 회비를 내 참석하기도 했다.


간혹 자다 깨서 걸어 나오는 딸을 다시 재우러 들어가거나, 깨서 잠들지 않는 딸에게 오랜 시간 티브이를 틀어줄 때면 '내가 을 잠 못 들게 하면서까지 해야 하나..'라는 현실자각타임이 오기도 했지만 그래도 나는 나에게 주어지는 그 시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미라클모닝을 하는 동안 나의 삶은 꽉 차있었다. 작년 한 해 동안 블로그 활동을 해봤고, 브런치 작가가 되었으며, 브런치 공모전과 그 외에 공모전에도 응모를 해 보았다. 나는 매일매일 명상을 했고, 스트레칭을 했고, 독서 했고, 글을 썼다.


좋았다. 인생이 대단히 드라마틱하게 변한 건 없었지만 하루하루가 의미 있고 소중했다. 무엇보다 침대에 누워서 허둥지둥 딸을 깨우는것이 아니라, 기상뽀뽀를 하며 깨우는 아침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나에 대해 고민할 시간을 확보해서 그런지 40대 이후의 삶에 대한 설계와 목표도 생겼었다.




그렇게 미라클 모닝한 지 1년 3개월이 지났을 무렵, 나는 갑자기 둘째를 임신했다. 올해 3월이었다.


획에 없던 임신이라 적잖이 당황을 했는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나는 첫째 때도 입덧이 아주 심했는데, 둘째 때도 만만치 않았다. 입덧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정말 생활이 엉망진창이 었다. 나의 컨디션을 고려하여 미라클 모닝 시간을 조금 뒤로 미뤘음에도 저히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음식조차 제대로 먹지 못했는데 어찌 책이 눈에 들어왔겠는가. 몸이 무너지자 머리로 하는 일 또한 철저히 무너져 내렸다.


나는 당분간 미라클 모닝을 멈추기로 결정했다. 미라클 모닝이 멈추니 자연스레 독서도, 글쓰기도 모두 멈춰졌다. 그때는 정말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에 집중해야 했다.


그렇게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입덧이 끝났고, 친정 근처로 이사도 갔다. 임신 중 육아휴직을 하게 되면서 시간이 많이 생겼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멈춰있다. 


멈춰진 시간 동안 책을 펼치고 싶지도 않을 만큼 머리 굳었고, 도 삐걱댔다. 일찍 커져버린 배 때문관절 석구석 안 아픈 곳이 없었다. 잘 때가 제일 고역이었는데 누우면 비염으로 코가 막히고, 허리가 쑤셨으며, 목구멍으로는 계속 신물이 올라왔다. 소파에 앉아서 자는 일이 많아졌다. 여전히 몸이 힘드니 생각이라는 것 자체 하고 싶지 않았다. 마치 생각는 법을 잃어버리기라도 한 듯 일상에서조차 머리를 쓰지 않았다.

 

야속하게도 시간은 계속 흘렀 어느덧 출산일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출산이 임박해 오니 넋 놓고 있던 나의 시간들에 대해 자꾸만 생각하게 되었다. 신생아가 태어나면 다시금 전쟁 같은 하루일 텐데 내가 지금 이렇게 내 시간을 축내고 있어도 되나 싶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정말 아까웠다.

 

다 문득, 어릴 적 어디선가 배웠던 구절이 생각이 났다. 솔직히 체육 교과서에서 봤던 것인지 아니면 육상였을 때 선생님께 배웠던 것인지 기억이 잘 나진 않았지그 구절은 지금까지도 머릿속에 꽉 박혀있다. 바로, 장거리 달리기에 관한 내용이었다.  



장거리 달리기를 완주하려면 '아무리 힘들어도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숨이 가쁘고 힘들 때는 제자리에서 뛰면서 숨을 골라야 한다. 제자리 뛰기를 하는 동안 숨이 다시 나의 패턴으로  돌아오면 그때 다시 달려야 한다. 그럼 멈추지 않고 장거리를 완주할 수 있다.


이 구절이 생각나자 나는 머리가 띵했다.



아... 멈추지 말걸..


 

나는 제자리 뛰기를 했어야 했다. 미라클 모닝을 아예 멈출 것이 아니라 기상시간을 수정했어야 했다, 읽기가 힘들 때는 오디오 북이라도 들었어야 했다. 10분이라도 매일 쓰면서 쓰기의 감각을 잃지 말았어야 했다. (설사 업로드가 안될지언정)

 

내 몸은 마치 방전되어서 시동이 켜지지 않는 자동차 배터리 같았다. 예전에는 손가락으로 전원버튼을 누르는 것 만으로 시동을 켤 수 있었지만 지금은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시동이 걸렸다. 보험사에 접수해 긴급출동 기사님을 기다리고, 기사님이 오시면 배터리 살리는 기계로 배터리를 건드려 주어야 하며, 배터리가 꺼지지 않게 최소 30분을 주행해야 하는 그런 일련의 과정 있어야 나라는 사람의  배터리를 살릴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기사님을 기다리다 끝나고, 보험사를 찾다가 끝나버렸다.


그만큼 지금 멈춰진 나의 리듬은 쉽사리 끌어올려지지가 않았다. 실제로 두 달 전부터 계속 쓰기 시도했지만 썼다가 지웠다가, 빈 창을 켜놨다가 껐다가를 반복하며 결국엔 쓰지 못했다.


나는 후회한다. 미라클모닝을 멈춘 것을 후회한다. 책 읽기를 멈추고 글쓰기를 멈춘 것 또한 후회한다. 하지만 후회로 끝을 맺고 싶진 않다. 왜냐하면 나는 다시 달리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두 달 있으면 신생아가 태어난다. 신생아육아란 정말 입덧 못지않 높은 난이도의 일과지만 그래도 나신입이 아닌 경력자다. 더군다나 첫째와 터울이 있고, 친정 근처로 이사도 왔으니 조금은 낫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그리고 설사 육아의 현장이 전쟁 같아도 괜찮다. 이제는 멈추면 안 된다는 교훈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


앞으로 나는,
어디서든 어떻게는 나만의 방식으로
 '제자리 뛰기'를 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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