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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를 낳으니 조리원은 진짜 천국이 되었다.

by 은은한 온도

나는 지금 산후조리원에 있다. 도분만을 잡아놨는데 자궁수축이 와서 급하게 아이를 낳게 됐다. 그래도 특별한 이벤트 없이 아이와 나 모두 건강하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아무래도 조리원에 있다 보니 첫째 때 조리원에서 우왕좌왕하던 내 모습이 생각난다.



그때는 출산도 너무 정신없었고 조리원에서의 생활도 감옥 같아서 조리원이 천국이다라는 말을 잘 체감하지 못했었다. 교육일정이 없는 주말에는 우울감이 밀려와 혼자서 많이 울기도 했다.



그에 반면 지금은 정당하게 주어진 나 혼자만의 시간을 마음껏 누리는 중이다. 물론 둘째의 수유콜을 계속 받고, 자다가도 일어나 시간 맞춰 유축을 해야 하지만 그 외에 모든 일들을 간호사 선생님이 봐주시니까 건 뭐 거의 나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과 다름없다.


빨래 안 해도 되고, 밥 안 해도 되고, 설거지 안 해도 되고, 청소 안 해도 되고, 아이 옆에 전적으로 붙어서 보살피지 않아도 되고 오로지 나의 회복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천국인가. 아이엄마로 근 5년간 살아오면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바로 [신랑도 애도 없이 며칠만 혼자 있고 싶다]인데 그걸 원 없이 하는 중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조리원은 그때도 천국이었던 것 같다. 다만 그때는 가 천국을 누릴 수 있는 정신상태 아니었을 뿐.


지금의 성교육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 기억으로는 성교육 시간에 피임과 그저 임신이 떤 경로로 되는지 정도로만 배던 것 같다. (정자와 난자가 어쩌고저쩌고 하는 딱 그 정도의 성교육) 그러다 보니 임신생활, 출산, 육아 등 임신 이후에 겪게 될 과정 대해서는 정보도 었고 군다나 그로 인해 펼쳐지는 사람의 변화에 대해서 더더욱 알지 못했다.



입덧이 그렇게 힘든 것인지, 임신으로 겪어야 하는 불편함과 몸의 변화는 또 얼마나 다양한지 밖에 안 해봤지만 두 번 다 쉽지가 않았다. 또한 출산의 과정은 목숨을 내놓는 처절한 현장이었으며, 출산 이후에 직면하는 수유라는 산은 나라는 사람의 존엄을 모조리 뒤흔드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모든 엄마들이 다 그러하겠지만 자고로 첫 출산이라 함은 여자에서 엄마로 변해가는 성장통을 호되게 치르는 시기가 아닌가 싶다.






무지했던 내가 첫 아이를 낳고 가장 힘들었던 것은 모유수유외로움이었다.



아이니만큼 주변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었는데 특히 시댁과 조리원에서는 모유수유를 강조하는 분위기였다. 원래도 모유수유를 할 생각이었지만 마치 모유수유를 하지 않으면 큰 죄라도 지은 양 요란했다.



하지만 모유수유는 옛날에 다 하던 것 치고 결코 쉽지 않았다. 젖몸살은 한 번쯤 거쳐가는 과정이었고, 수유 자세를 아이에게 맞추다 보니 몸이 점점 뒤틀렸다. 딱딱한 가슴은 옆으로 자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고, 가슴에서 생산되는 젖 양만큼 아이가 먹지 못하니 벽에도 일어나 유축을 해야 했다. 잠이 많은 나에게 2~3시간의 쪽잠은 스트레스를 더욱 가중시키는 요소였다.


무엇보다 나의 봉긋한 가슴은 더 이상 여자의 가슴이 아니라 그저 아이의 식량창고가 되었구나 라는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샤워를 하고 있으면 모유가 발아래로 뚝뚝 흘러내렸고 나는 이런 변화가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모유수유의 불편함은 조리원에서 퇴소 이후에도 계속됐다. 수유실이 없는 식당에서 수유커버를 뒤집어쓴 채 나 혼자 젖가슴을 내놓고 아이를 먹이고 있노라면, 나는 과연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라는 존재론적인 질문이 튀어 올랐다.


그리고 모유수유는 오로지 나만 아이에게 먹일 수 있기 때문에 참 외로웠다. 분명 신랑과 내가 함께 만든 아이인데 나 혼자만 삶이 송두리째 바뀐 느낌이었다. 더군다나 야간일을 하는 신랑은 내가 수많은 밤동안 얼마나 아이와 고군분투했었는지 머리로는 알지만 몸으로 체감하진 못했다. 호르몬의 영향도 분명 있었겠지만 지금 너무나 말짱한 걸 봐서는 비단 호르몬 탓 만은 아닌 것 같다.


지금은 출산 이후의 펼쳐질 나의 생활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기도 하고 마음의 준비도 단단히 해 놓아서 인지 정말 마음이 평화롭다. 새벽에 일어나는 일도 그전처럼 괴롭지 않고, 모유가 바닥에 뚝뚝 떨어지거나 가슴을 타고 흘러내려도 그러려니 한다. 또 조리원 밖에서 첫째를 돌보고 있는 남편이 있으니 혼자가 아니라 비로소 한 팀이 되었구나 하는 느낌도 든다.


결국, 조리원을 감옥에서 천국으로 만드는 건 나의 마음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원하는 모든 여자들이 임신과 출산, 출산 직후, 육아 등 모든 과정들을 미리 알고 준비했으면 한다. 그래야 처음 엄마가 되는 그 순간이 조금이라도 덜 혼란스러울 테니까.



조리원을 퇴소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역시나 처음 겪은 애 둘 육아에 허둥대겠지만 그래도 천국에 있다 나왔으니 보다 넉넉해진 마음으로 아이들을 돌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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