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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한 온도 Jan 17. 2024

사주 보는 분이 나한테 글 못 쓴다고 하셨다.


지난 주말에는 둘째를 낳고 첫 자유부인이 데이를 가졌다. 자유부인을 하긴 했어도 주로 낮에 가졌었는데 이번에는 밤에 혼자 있으니 엄청나게 해방된 기분이었다. 친구는 무려 1년 만에 아이 없이 혼자 자유시간을 갖는 날이었으니 우리의 마음이 어땠겠는가!



친구와 나는 애들하고 있으면 같이 갈 수 없는 술집 거리로 들어가, 애들하고 있을 때 먹을 수 없는 곱창을 시켜 먹었다.



이상하게 밤에 자유부인을 하면 자꾸 (애들하고 못 먹는 음식 = 곱창) 을 먹게 된다.



곱창집에서 술을 한 잔도 먹지 않은 우리는 분위기 좋은 칵테일 바를 찾아 거리로 나섰다. 오랜만에 고등학생 때처럼 서로에게 붙어 팔짱을 끼고 종종거리며 가는데 난데없이 친구가 물어봤다.



"우리 사주 볼래?"

"응?? 그럴까? 어디 있어??"

"응! 저기!"



친구가 가리킨 손끝에는 창문 전체를 다 가릴 정도로 커다랗게 사 주 라는 글씨가 쓰여있었다. 마치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듯 그 글씨가 어찌나 눈에 잘 들어오던지.  



2층에 위치한 사주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독특한 인상의 주인분이 계셨다. (이하 선생님이라 칭하겠다)



뭐랄까? 어딘가 나사 하나가 살짝 빠져 보이지만 호락호락하지 않은, 엉뚱해 보이고 굉장히 괴짜스럽지만 알고 보니 무림의 절대고 수 같은 그런 인상이랄까?



마치 이런 느낌이었다.



네이버 영화 <백 투 더 퓨처> 중



괴짜 사주 선생님과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친구도 올해 사업 준비를 하고 있었고 우리 집도 신랑의 이직을 고민하고 있어서 여러모로 선생님께 궁금한 점이 있었다.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내가 선택을 하려는데 사주상에도 좋다면 내 선택에 좋은 기운 한 스푼을 얹는 기분이랄까. 뭐 혹시라도 안 좋은 얘기를 들으면 조심하거나 대비하면 되니까 기대 반 설렘 반으로 답변을 기다렸다.



결론적으로 올해 우리 신랑은 십 년마다 오는 대운이 바뀌는 시기라 이직을 해봐도 좋다고 하셨다. 그리고 역마살이 있으니 이직 시 돌아다니는 직업을 가지면 본인에게 잘 맞는다고도 하셨다.



친구 또한 올해 사업을 시작하는 것은 좋은데 자꾸 마음이 급해지니 천천히 하라는 조언을 해주셨다. 특히 친구의 직업을 때려 맞출 때는 친구와 나 모두 소름이 돋았다.






내가 물었다. 정말 사람이 사주대로 사냐고.



선생님은 사주는 신점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내려온 학문이고, 세상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주의 비밀이 있는데 사주는 그 비밀을 커닝하는 거라고 하셨다.



커닝이라는 단어에 흥미가 생긴 나는 결국 내 생년월일도 불러드렸다. 선생님의 첫마디는 이거였다.



" 딱 공무원 하면 좋은데! 고집불통 원칙주의자! 생각이 너무 많아!" 하셨다.



맞다. 내가 생각할 때 나야말로 법 없이도 살 사람이다. 규칙 수호자인 나는 교통법규도 잘 지키고 분리수거도 되게 열심히 한다. 어딜 가든 정해진 룰이 있으면 누가 하라고 하는 사람 없어도 누가 감시하지 않아도 정해진 규율을 잘 지키는 사람이 바로 나다.



그래서 나보고 연기할 때 연기는 잘했겠지만 창조력, 폭발력이 약했을 거라고 하셨다. 오 맞다. 찔리더라! 예를 들어 블랙스완 영화에서 나탈리 포트만이 정석 같은 백조 역은 잘해도 자유분방한 흑조 역은 잘 못하는 것처럼 나에게도 그런 자유로움이 부족한 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결정을 했지만 최근까지도 나의 최대 고민이었던 진로 이야기를 물어봤다.



"제가 어떤 일을 하면 좋을까요" 



선생님 : 의료 쪽이나 미용 쪽을 해봐~!

나 : 싫은데요.


선생님 : 부동산도 좋겠다.

나 : 흠.. 그것도 싫은데요.


선생님 : 유통 쪽도 잘 맞아. 중간 역할 잘해.

나 : 흠.. 유통.. 유통이요?? 글쎄요.....


선생님 : 그럼 할 게 없는데....

:.... 저는 글을 쓰고 싶은데요. 그쪽은요?


선생님 : 안 돼! 지금 돈독 올라서 글 쓰는 창작활동은 못해! 나중에 오십 정도 됐을 때 그때 맘껏 해! 지금은 하지 마!


:..... 그땐 해도 돼요??

선생님 : 그래, 차라리 그때 해.



선생님이 또 다른 직업들을 추천해 주셨고 그중 한 개는 내가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다 마치고 나오자 무려 2시간이나 그곳에 있었고, 심지어 밥값보다 더 많은 돈을 쓰고 나왔더라.




그런데 집에 돌아오자 이상하게 그 말이 계속 맴돌았다.



돈독 올라서 지금은 글 못써.

돈독 올라서 지금은 글 못써.

돈독 올라서 지금은 글 못써.



진짜 못쓰나? 진짜? 사주가 정말 그렇다고? 묘하게 기분이 상하면서도 괜히 반항심도 올라오고 마음이 불편했다.



어딘가 마음에 이물감이 있는 채로 며칠이 지났는데 갑자기 친구가 추천해줘서 읽은 책 속의 글귀 하나 떠올랐다.



<더 마인드> 하와이 대저택 지음.



이 책을 읽고 보기 시작한 유튜브의 한 구절도 떠올랐다.



유튜브 <하와이 대저택> 채널 중.


유튜브 <하와이 대저택> 채널 중.



욕망이라...그랬다. 7살부터 일기를 썼던 나였다.

초등학교 학급문집에 단편소설을 실었던 나였다.

중학교 때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아오던 나였다.

고등학교 때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스스로 독서 감상문을 정리한 나였다.

성인이 되어서도 틈틈이 글 아이디어를 메모했던 나였다.

여행을 떠났을 때 자기 전에 다이어리를 펼쳐 그날을 상세히 기록했던 나였다.

그 어떤 시점이든 어딘가에 있든 늘 기록하고 적고 내 생각을 펼쳐 써재낀 나였다.



이 모든 것이 쓰고자 하는 욕망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그래, 욕망이 있다는 것은 능력도 함께 오는 거라니까 내 욕망이 따르는 지점으로 계속 나아가자. 그래도 나는 예전부터 내 마음의 소리는 잘 듣던 사람이 아니었던가.



실패를 해도 내가 실패한다. 직접 해봐야 아는 스타일이라 간혹 돌아가기도 하지만 돌아가더라도 늘 깨닫는 바가 있더라.



이것이 사주를 보고 며칠간 약간 어지러웠던 내 마음의 결론이다. 사주 선생님은 돈 독이 올라 지금 글을 못 쓴다고 하셨지만 그래도 쓸 테다.



어쩌겠는가. 그래도 나는 쓰고 싶은데. 별수 없지 않겠는가. 쓰고 싶은데. 그럼 써야지. 그래서 오늘도 열심히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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