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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Jul 10. 2018

스웨덴에서 컴퓨터와 장애인의 연결점을 찾다

유학생 김나현, 차이를 차별로 여기지 않는 디자인을 꿈꾸다.


‘제발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세요’. 모든 인간에게 부여된 기본권 중 하나인 교육받을 권리. 기본권임에도 불구하고 그 권리를 ‘쟁취’하기 위에 어머니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고 있었다. 어머니들의 눈에서 오래전 시작된 장마는 장마가 끝나가는 이 시점에도 그칠 줄을 모른다. 언제쯤 어머니는 그 눈물을 거둘 수 있을까?
무릎꿇은 장애아동들의 어머니들/ 출처: 한국일보

스웨덴에 있는 동안 뉴스를 통해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을 놓고 주민과 특수 장애 아동들의 학부모 간에 빚어지는 갈등을 처음 접했다. 특수학교를 혐오시설로 규정하며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 앞에서 무릎을 꿇은 수많은 어머님들을 보자, 모니터 앞에서 나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현재 서울시교육청은 강서구의 한 폐교부지에 특수학교 건립을 추진 중이다. 그런데 해당 지역구 의원이 그 부지가 학교 부지임에도 불구하고, 공약으로 폐교 부지에 국립 한방의료원을 설립하겠다고 내세웠다. 이 때문에 특수학교 건립을 지지하는 장애 아동들의 학부모와 건립을 반대하는 주민들 간에 갈등이 촉발되었다. 특수학교가 건립되면 해당 지역의 집값이 떨어진다며 반대하는 주민들과, 아이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위해 학교 설립을 허가해 달라는 장애 아동들의 학부모들. 과거에도 특수학교 건립을 추친할 때 비슷한 논란이 빚어졌지만, 실제로 특수학교 건립 전후로 집값이 떨어졌거나 사람들이 주변 지역으로 이사를 꺼려한다는 증거는 없다고 한다. 그런데 증거가 있고 없고를 차치하고라도, 집값이 떨어진다는 주장의 전제는 특수학교를 혐오시설로, 장애인을 혐오대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닌가?  


장애의 사전적 정의는 ‘질병이나 사고 등에 의해 지적, 정신적, 청각, 시각, 내장, 골격, 기형적인 면에 결함이 생겨, 이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이 곤란하거나 불가능한 상태’이다(특수교육학 용어사전). 선천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날 수도 있지만 누구나 후천적으로 장애를 가질 수 있다. 나 역시도 장애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많은 사람들의 장애 그 자체와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송곳보다도 더 뾰족하다. 몇 가지 결함이 있지만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은 비장애인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숨어 다니거나 생활 전반에 걸쳐 불편함을 겪거나 불이익을 받기 일쑤다. 인간으로서의 기본권 중 하나인 교육받을 권리를 ‘장애아동’이라는 이유로 박탈당하는 아이들. 차이를 근거로 명백한 근거 없이 차별하며 불이익을 주는 사람들.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 우리가 지녀야 하는 자세가 정녕 차별하는 태도일까? 장애를 바라보는 다른 나라 사람들의 시선은 어떨까? 많은 사람들이 ‘복지국가’라고 선망하는 스웨덴에서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어떨까?

오늘은 대한민국의 장애인을 대하는 이런 각박한 현실에서 수년간 장애아동들과 함께하다, 그들의 더 밝은 미래를 위해 잠시 한국을 떠나 스웨덴으로 온 유학생 ‘김나현’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컴퓨터 이용의 편리성을 증대하여 장애인들에게도 편리한 컴퓨터 사용 환경을 제공하고 싶다는 그녀. 그녀는 컴퓨터가 장애인들이 세상과 보다 쉽게 소통하고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도구라고 믿는다. 왜 그녀는 하필 ‘스웨덴’으로 유학을 왔을까?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김나현을 정의하다
2017 장학금 수여식에서 김나현(우)

‘본인을 정의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뭐라고 생각하세요?’라고 묻자, 그녀는 ‘대한민국, Human Computer Interaction(HCI), 특수교육이요’라고 대답했다. 문화적 뿌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이라 치더라도 특수교육은 생소하다. 대학에서 특수 교육을 전공한 그녀지만 사실 처음부터 특수교육학을 전공하는 삼는 게 목표는 아니었다. ‘사실 수능에 점수를 맞춰 전공을 선택했어요.’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그녀. 유아 교육과 특수 교육 두 가지 선택의 가능성이 있었지만,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자 특수 교육을 전공하기로 했다. 그런데, 모든 일엔 제각기 의미가 있다지만 실제 공부를 하다 보니 특수교육학과 그 분야의 일이 보통 의미가 있는 게 아니었다. 한 아이의 학령기를 책임질 뿐만 아니라 그들을 이끌고 보살피는 교사에게 부여되는 책임감은 여간 무거운 게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특수교육학을 공부하기 전 그녀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제가 어떤 일을 하고 싶다거나 하여야겠다고 느낀 적이 없어요... 하지만, 특수 교육학을 공부하고 실습을 나가 아이들과 소통하면서 그들 역시 우리와 같은 세계 안에서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임을 깨달았죠. 단지, 조금 다른 경험을 하고 있을 뿐이었어요.’ 제한된 선택지 내에서 택한 길이었고 결코 함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생각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삶에 들어온 이 아이들을 져버릴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런데 그녀의 궁극적인 목표는 교사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교사로서 아이들을 이끌고 도움을 주는 일도 의미가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아이들이 자립하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그녀가 아이들에게 선물하고 싶었던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을까?


기계를 통해 발견한 아이들의 가능성

곰곰이 어떤 방향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나가야 할지 고민하던 그녀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필요한 것들을 고민하고, 그녀의 관심사와 접목시키고자 노력했다. 그녀가 찾은 답은 장애 아동들에게 보다 편리한 컴퓨터 사용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평소 첨단 기기에 대한 관심이 컸지만, 대학 생활 동안 경도 지적 장애 및 중도 지체 장애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아이패드나 핸드폰이 그들의 학습 욕구 및 이해도를 높일 뿐만 아니라 자기 효능감까지 높일 수 있음을 발견했다. 더욱이, 중도 지체 장애 학생들에게는 경직된 사지와 손가락 때문에 스스로 조작할 수 있는 물건이 많지 않았는데, 이 때문에 자기 효능감이 현저히 낮은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 전자기기를 터치하고, 음성 인식 기능을 통해 원하는 자료를 찾아내면서 아이들은 점점 자신감을 회복하였고, 자신감 회복은 더 높은 학습 동기를 부여해주었다. 공부 외에도 쉬는 시간에 간단한 모바일 게임을 하면서 재미를 느낀 아이들은 첨단 기기를 사용함으로써 꾸준하게 손의 힘을 기르고 섬세함과 민첩성을 기를 수 있었다.  


이 경험을 통해 그녀는 모바일 기기가 장애인들에게 더욱 편리하고 즐겁게 학습과 재활을 할 수 있는 도구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아무리 기기의 편리성이 증대했다 해도, 여전히 장벽은 존재했다.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터치패드나 음성인식 등 많은 입력 장비들은 장애인이 무리 없이 사용하기에는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평소 첨단 기기에 대한 큰 관심이 있었던 그녀는 아이들이 보다 편하게 첨단 기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고, 이와 관련된 학문을 공부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Computer accessibility(컴퓨터 접근성), UX design(User Experience Design, 사용자 경험 디자인), Usability(사용성)와 같은 키워드로 관련 학문을 검색하다 보니 국내에서는 컴퓨터 공학, 보조공학(휠체어, 보청기)등 공학분야로 학문이 제한되어있었다. 하지만 해외로 뻗어나가니 Human Computer Interaction라는 학문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인간과 컴퓨터의 상호작용을 보다 쉽고 편리하게 할 수 있는지 연구하는 학문, 바로 그녀가 찾던 방향이었다.


스웨덴으로 꿈을 안고 날아가다
스웨덴의 정책 중 가장 중요한 주제중 하나는 '접근성'과 '평등'이다(출처:  Imagebank Sweden/Simon-pauline(좌), Maskot(우))


공부해야 할 학문을 정하고 나니, 어디서 공부할 것인가도 중요한 문제였다. 현실적으로 미국이나 영국은 학비가 너무 비쌌고, 독일이나 프랑스에서 공부하는 것은 언어 장벽이 높았다. 학비 대비 우수한 교육 환경을 갖추고 있고, 물가가 비싸지 않던 곳을 찾다 보니 스웨덴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평소에 웁살라에 교환학생으로 다녀온 친구들이 들려주거나 미디어에서 비추는 북유럽 복지에 대한 장점 때문에 스웨덴의 복지 환경에 대해 관심은 있었지만, 유학을 생각해보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주변에 스웨덴에서 공부한 친구들로부터 스웨덴 사회가 평등이라는 가치를 중시하고, 차별에 대한 토론이 활발하며 장애인, 외국인, 노인, 아동 등 사회적 소수자에 열려있는 사회라는 것을 익히 듣고 직접 유학을 가 경험해보기로 결정했다. 직접 보고 느끼는 것만큼 소중한 경험이 어디 있을까? 그렇게 그녀는 작년 여름, 꿈을 위해 스웨덴으로 날아갔다.

Imagebank Sweden/ Maskot


기술의 발전이 급속도로 이루어지고 컴퓨터와 인터넷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인간과 컴퓨터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심지어 인공지능을 활용한 로봇들이 우리와 공존하는 세상이 성큼 다가오지 않았나. 그런데 기술에 대한 접근성이 확연히 높아졌다고는 해도, 사실 아직 전반적으로 컴퓨터 유저의 범위에 장애인을 포함시키는 경우는 드물다고 그녀는 힘주어 말했다. '전반적인 User Interface(UI/사용자 인터페이스 )를 장애인들이 사용하기에도 편리한 방향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게 제 목표예요. 대부분 사용자의 범위는 '일하는 성인 남자 - 일반 성인 - 중/고등학생- 노인- 어린아이'에 그치죠. 저는 사용자 스펙트럼을 확장해서 장애인도 고려한 인터페이스를 디자인하고 싶어요. 장애인을 특수한 유저로 포함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획 단계에서부터 장애인이 포함되도록요.' 또렷한 그녀의 말투와 목소리를 통해 나는 그녀가 유학 오기까지 얼마나 치열한 고민을 거쳐 자신의 길을 개척했는지 조금이라도 가늠할 수 있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어딜가든지 우수한 접근성이 보장되어야 한다(Sofia Marceti)

그렇다면, 소문으로 듣고 온 스웨덴과 지난 1년 간 그녀가 경험한 스웨덴 사회가 바라보는 장애인에 대한 시선은 일치했을까? 그녀는 실제로 스웨덴에 온 이후 장애인이 우리와 별반 다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더욱 크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스웨덴 사회에서는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이 조금 몸과 정신적으로 불편할 뿐이지 우리와 다른 사람이 아님을 잘 인지하고 있다 생각해요. 장애인을 볼 때나 특수한 경우에만 그들에게 특별한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 속에서 항상 그들과 함께하고, 장애인들이 숨지 않고 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죠.  때문에 장애인들이 숨거나 밖에 나오기를 꺼려하지도 않는 것 같아요. 학교뿐만 아니라 쇼핑몰, 스포츠 센터, 카페 심지어 클럽에서도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함께 여가 생활을 즐기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자신이 목표한 바를 자신이 원하던 곳에서 공부하는 그녀는 이제 유학 제 2막을 준비하고 있다. 석사 후 구체적인 방향을 아직 정하지는 않았지만, 1년 더 공부하면서 기회가 닿을 때 많은 프로젝트를 하며 자신에게 더 맞는 길을 찾겠다는 그녀. 자신 앞에 놓인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며 아직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위에서 그녀는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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