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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Aug 29. 2018

식문화로 도시를 다시 살릴 수 있을까?

마장동 재생 프로젝트 마장키친에서 희망을 보았다.

(*크레딧: Herbert Dreiseitl, http://ecotraveller.tv/g,  Madeleine d'Ersu)




미국의 포틀랜드, 스페인의 빌바오, 스웨덴의 말뫼. 다른 나라의 다른 도시인 이 세 장소의 공통점은 뭘까?


바로 '도시재생' 사업으로 부활에 성공한 전 세계 사례들이다. 세계의 많은 도시들이 전통적 제조업인 중공업의 쇠퇴나 철광 산업의 몰락 등 산업 구조의 변화를 때문에 기존의 도시의 기능을 잃어버리고 쇠락하고 말았다. 산업 도시로서의 역할과 기능에 충실하다 산업이 죽자 도시도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자기다움을 잃어버린 도시, 자신의 고유한 색깔을 잃자 도시는 회색빛의 황폐한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죽었던 도시들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바로, 죽음의 도시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도시재생사업' 덕분이다. '도시재생'사업이란 본래의 기능을 잃거나, 낙후된 시설이나 이미지를 가진 도시 구역에 새로운 기능을 도입하고 창출함으로써 도시의 물리적 환경과 경제적 여건을 개선하는 사업이다. 노숙자로 들끓고 마약문제로 몸살을 앓던 포틀랜드는 지속가능성과 히피문화를 대표하는 도시로 탈바꿈했다. 철광석 산업의 몰락 이후 각종 범죄와 낙후된 도시로 몸살을 앓던 빌바오는 문화라는 새로운 산소를 공급받아 스페인을 대표하는 문화관광지로 부상했다. 내가 살던 스웨덴 남부 스코네 지방의 말뫼도 조선업의 몰락으로 죽어가던 도시를 '신재생에너지'라는 산소를 불어넣어 스웨덴을 대표하는 친환경 도시로 거듭났다. 말뫼와 코펜하겐을 잇는 다리 Oresund bridge 근처에 가면 말뫼 '친환경 주거단지'가 있는데 신재생 에너지로 에너지 소비의 많은 부분을 충당하고, 빗물을 이용하여 배수시설을 관리하며, 옥상정원을 만들어 배수 속도를 조절하고 보다 친환경적인 주거 공간을 만드는 집들이 지어져 있다. 실제 작년 6월 여행을 하면서 이 지역을 방문했는데, 여름이 해가 긴 스웨덴은 여름 내내 태양광 에너지를 비축하고, 사용하고 있었다. 자기 고유의 색깔을 잃어버린 도시들은 각각의 자기다움을 찾아 새로운 자기 색깔을 찾아나가고 있다.


비단 해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도시재생'사업이 한창이다. KBS 요리인류 다큐멘터리를 기획한 이욱정 pd는 식문화가 도시를 재생시키는데 효과적인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낙후된 서울역 및 회현 일대를 마을 레시피, 마을 쿠킹클래스를 개발하여 재생시키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함께 음식을 나눠먹는 과정을 통해 지역 주민의 연대를 도모하고, 다양한 주민 참여형 프로그램을 만듦으로써 도시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함이다.

음식을 먹는 행위는 단순한 생식의 욕구를 충족하는 것을 넘어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는 사회적 욕구의 충족이기 때문이다.

 이욱정 pd와 같은 스타 pd는 없지만 축산물 시장으로 유명한 마장동에도 식문화를 통해 도시를 재생시키는 프로젝트가 한창이다. 바로 이름하여

'마장 키친(Majang Keychin)'

 이다.


'마장키친' 프로젝트는  축산물 시장으로 유명한 마장동의 지역성을 살린 두 개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먼저, 현직 셰프들의 '팝업 레스토랑'은  현직 셰프들이 요리를 하여 파인 다이닝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벤트다. 셰프들이 재료를 직접 준비하는 경우도 있고, 근처 재래시장에서 구입하기도 한다. 하지만 고기는 꼭 마장동에서 구입한다. 셰프들과 메뉴 하나하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서비스를 받기 때문에, 일반 레스토랑에서는 경험하지 못할 요리에 숨겨진 이야기와 셰프들의 철학을 탐구할 수 있다. 함께 식사를 하는 분들의 사연을 듣는 것 또한 특별한 경험이다. 그 누가 일반 식당에서 다른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할까? 다른 하나인 '마장 쿠킹클래스'는 팝업 레스토랑과 달리 참가자들이 현지 셰프들의 레시피를 배우고 직접 요리를 하는 이벤트다. 이 역시 마장동의 지역성을 살린 메뉴 위주로 진행되며, 고기가 필요할 경우 꼭 마장동에서 구입한다. 참가 형태만 다를 뿐, 두 이벤트 모두 참가자들이 '음식'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마장동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마장 키친(Majang Keychin)'은 도시재생에 있어서 이해와 소통의 열쇠(Key) 역할을 해내고 있다. (*실제 프로젝트 이름이다)



어제 내가 참가한 팝업 레스토랑은 '어울림'을 주제로 마장키친에서 열린 4번째 행사였다. 잘 어울리는, 어울리고 싶은 사람과 함께하는 자리였기에 나와 잘 어울리기도 하고, 이 행사와 잘 어울릴 것 같은 친한 친구와 함께 갔다. 5년 전 일방적으로 내가 에너지바와 비스킷을 책상 위에 슬쩍 남겨두고 친해지려 노력했던 친구. 음식으로 이어진 인연인 그녀는 어느새 동네 친구를 넘어 나의 소울메이트가 되었다.


마장동 축산물 시장 내 위치한 마장키친은 굉장히 모던하고 깔끔하게 정비된 주방과, 주방에서 직접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바 형태의 테이블을 갖추고 있었다. 은은한 백열등 조명과 화이트 톤의 깔끔한 인테리어는 아늑한 분위기를 풍기며 모든 것을 낯설어하는 참가자들을 안아주었다. 마장키친 코디네이터를 필두로 현직에서 일하시는 젊은 셰프 세 분이 어색해하는 참가자들을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어제저녁은 총 다섯 쌍의 팀이 함께 했는데, 부부, 친구, 자매, 연인, 엄마와 아들이 각양각색의 어울림을 피워냈다.

대추 절임과 탄산수와 약간의 알코올을 가미하여 만든 식전주(대추 에이드)를 시작으로, 파인 다이닝 메뉴는 총 5코스로 구성되었다. 해초 크래커와 육회, 호박 타락죽, 이탈리아 토르텔리니, 한국적 재료(고들빼기김치와 낙지젓갈 무침, 깻잎 소금, 명란)로 페어링 한 스테이크와 마지막으로 된장 캐러멜과 밤 디저트. 각자 개성이 뚜렷한 셰프 세 분이 자신의 메뉴에 자기만의 요리 철학과 경험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자기다움이 뚜렷한 요리들이었지만, 다른 셰프들의 요리에 겉돌지 않고 오히려 잘 감겼다. 어울리기 위해 각자의 색을 포기했다면 어제의 식사는 검은색 물감으로 변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뚜렷했던 셰프님들의 개성만큼 메뉴들도 각각의 색깔을 잃지 않고 주변과 조화롭게 어울리며, 식사 시간 내내 이야기를 전달하고 사람을 연결했다. 마치 고유의 색이 뚜렷한 무지개가 하늘과 땅을 잇는 것처럼.


주제가 '어울림'이었던 만큼 셰프님들이 요리를 구성하는데 정말 많은 고민을 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식사 시간 두 시간 내내 셰프 님은 애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요리 하나하나를 직접 서빙했다. 테이블은 맛있는 음식뿐만 아니라 함께한 모든 이들의 이야기로 꽉 찼다. 각각의 접시에는 셰프들의 요리에 대한 철학, 개인 경험 등 한 사람의 미식의 역사가 오롯이 담겼다. 그리고 그 접시를 소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조미료처럼 가미되어 개개인의 입과 마음속에서 녹아 없어졌다. 같은 음식을 먹고 있었지만, 저마다 조금은 다른 경험을 하고 있었으며, 그것들을 나누는 동안 식탁은 더욱 풍성해졌고, 처음 만난 우리는 서로를 조금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  


비가 많이 오던 어제저녁, 음식을 통해 도시재생을 꿈꾸고, 그 가치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누구는 셰프로, 누구는 프로그램 기획자로, 누구는 참가자로. 우리는 각자 다른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지만 지향하는 목표는 같았다. 공통의 목표를 바라보고 있었기에 함께한 두 시간 내내 그 누구도 다른 길로 새지도 않았고, 오롯이 그 자리에 각자의 영혼과 감각을 집중할 수 있었다. 음식을 나눠먹는다는 것은 음식을 소비할 뿐만 아니라 음식에 담긴 다양한 경험과 이야기를 소비하는 과정이다. 음식을 통해 '경험'을 소비할 때 식사 행위는 마침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타인과 세상과 이어지는 선으로 남는다.


행사가 끝나기 전, 한 참가자가 마장키친으로 4 행시를 지으며 마무리했다. 바로, 결혼 25년 차에 접어드신 아버님이었다. 퇴사 후 그동안 일을 하는 내내 소홀했던 아내에게 좋은 시간을 선물하기 위해 신청하셨다는 로맨티시스트 아버님은 이 자리를 통해 아내에게 마음을 표현할 수 있어 감사하다며, 앞으로 아내와 더 많은 음식을 함께 나눠야겠다고 말씀하셨다. 여기 함께 맛있는 음식을 나눈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다고 마무리되던 아버님의 4 행시는 아쉽게도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미 마장키친에서 우리가 나눈 모든 이야기들은 각자의 가슴속에 이미 용해되어 또 다른 영혼의 한 조각을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도시재생을 위한 작은 움직임이었지만, 이런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가 사는 이 공간이 더욱 의미 있어지는 게 아닐까 깊이 느낀 시간이었다.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함께 나누며, 공감하고 연대하는 것을 보면서 식문화로 도시를 살릴 수 있는 힌트를 얻고 온 저녁. 식문화 콘텐츠는 사람들이 한 공간을 단순히 왔다 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이야기를 써내려 가고  좀 더 머물고 싶은 공간을 바꿀 수 있다. 공간의 아이덴티티가 단순히 물질 소비를 위한 공간이 아닌, 경험 소비를 위한 공간으로 바뀌 것.


나는 그런 도시를 꿈꾼다.


*마장키친은 매 월 쿠킹클래스와 팝업 레스토랑을 연다고 하니 관심있는 분들은 꼭 참가해보길 바란다. 

> 마장도시재생 현장지원센터 공식 블로그

http://blog.naver.com/majangregen

> 마장키친 공식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majangkitc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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