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결심하자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수습사원의 퇴사 인생 제1장 1막

by 국경 없는 펜

똑똑똑.

'대표님 말씀 드릴 게 있는데요...'

긴장된 표정의 나는 노란색 포스트잇을 두 검지로 꼬깃꼬깃 돌리며 대표님과 마주 앉았다. 하고 싶은 말을 잊어먹을까 봐하고 싶은 말을 적어온 종이였다. 30 분 간 왜 이 곳을 떠나고자 하는지 주저리주저리 이유를 댔지만 상대는 내 말의 핵심을 금방 파악해냈다.

'그래서, 퇴사하고 싶다는 거지?'

'네..'

40여 분간 고맙고, 미안하고, 아쉽고, 속 시원하기도 한 다양한 감정의 오로라를 느끼며 나는 사장실을 나왔다. 입사 3개월 차, 이제 막 수습사원 딱지를 뗀 나는 며칠 전 퇴사를 통보했다. 내가 하고 싶은,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일에 절실하게 매달려 본 적이 있는지, 이곳에서 더 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되묻고 되물은 결론이었다. 그리고 회사도 나도 불완전한 유기체이기에 서로의 결을 맞대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해 내린 결론이었다. '내 마음이 더 절실하고, 행복한 일을 하자, 그리고 내가 더 행복한 곳에서 다시 에너지를 찾자'


얼마전 오랜만에 나를 본 지인들은 내 에너지가 달라졌다고 했다. 기계적으로 앉아서 일을 끝내기 위해 일을 하는 내 모습을 나도 알고 있었다. 난 동기부여가 확실하면 액셀을 밟는 사람인데, 스스로도 내 몸과 영혼이 고장 났음을 인지했다. 하지만 이게 내 문제인지, 환경의 문제인지 판단을 먼저 내려야 했다. 오랜 고민 끝 내린 결론은 둘 다 였다. 그리고 환경을 바꾸고 남아있을지 떠날지 선택하고 책임지는 것도 내 몫이었다. 회사 사람들과 갈등이 있거나 회사가 하는 일이 싫은 게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 달랐을 뿐. 협업을 할 때 좋은 커뮤니케이션은 이끌든지, 따르든지, 비키든지 셋 중 명확한 액션을 취하는 것이라 들었는데, 나는 비켜서 스스로를 이끌기로 결심했다.


퇴사 통보 1일 차, 굳은 결심을 하고 내린 결심이지만 사실 여전히 불안하다.

'이 선택이 맞는 걸까? 잘 못 되면 어떡하지? 밥벌이는 할 수 있을까? 사회생활 경험도 없는 내가 너무 자만하는 것은 아닐까? 배울 게 한참 많을 텐데' 자기 회의와 불안한 생각이 자동적으로 떠오를수록, 내면의 불안함은 곱절로 커져만 간다. 그러던 문득, 일을 하며 듣게 된 강연이 떠오른다. 잊지 않으려고 마음에 새겨둔 덕분이었다.

'우리 뇌는 부정적인 생각을 3배는 더 한대요. 그렇게 설계되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일부러라도 긍정적인 생각을 스스로에게 심어줘야 해요'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부정적인 생각을 잠시 잡고, 불안함의 본질을 들여다본다. 무엇이 그토록 두려운지 자신에게 솔직해졌다. 먼저 생각보다 불안함은 삶의 표면에 있었다. '일정한 수입'이 없어지는 점이 불안했다. 결국 먹고사는 문제였다. 인간의 가장 근원적 욕구인 의식주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두려움이 있었다. 꼬박꼬박 월급통장에 들어오는 돈이 주는 안정감은 생각보다 더 컸고, 돈이 없다 생각하니 자존감이 낮아졌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더 본질적인 두려움은 내가 원하던 것을 성취하지 못하고, 사회에서 고립될 거란 걱정이었다. 나는 실패와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압도되어 있었다. 퇴사 결심 잘한 걸까?


퇴사를 앞둔 내게 많은 분들의 걱정, 격려, 조언이 쏟아졌다. 어떤 분은 조직에서 몇 년 동안 경험을 쌓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쳐 주시기도 했고, 어떤 분은 나의 나이, 미래 그리고 가진 것 없는 현재를 걱정해주시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분은 내 결정을 아무 이유 없이 지지해주시기도 했다. 모든 사람이 각자 다른 삶을 살아왔기에 똑같은 사안을 두고, 내게 건네는 말씀이 모두 달랐다. 모두 각자의 삶에서 배운 경험과 지혜를 나눠주신 걸 알기에 참 감사한 말씀이었지만, 이 많은 것들 중 무엇을 취해야 하는지 혼란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내게 어떤 말이 필요한 지는 머리보다 마음이 먼저 아는 법이다.

'당신의 결정이 현명한 이유는 당신의 경험에 기반해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경험한 바를 믿으세요' 쪼그라들었던 마음속 깊이 무언가 꿈틀 했다.


수많은 좋은 말씀 중, 내 경험을 믿어주는 그 한 마디 과거의 나를 돌아보게 했다.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기 시작한 20대, 돌아보니 모든 경험이 다음 선택을 위한 자석이 되었다. 여행, 봉사활동, 유학 등 별거 아닌 것 같았던 선택들이 별 게 되었다. 성공 실패 여부를 떠나 마음이 동했던 선택들은 나를 행복하게 했고, 발전할 기회를 주었다. 그렇게 나는 지금의 내가 되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겪은 것에서 얻어진 결과를 가지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험뿐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경험해보지 못한 자들의 조언이 가장 위험하다'는 도전가 오현호 씨의 말을, 비로소 이제야 마음으로도 이해하게 되었다. 내 삶은 오롯이 내가 경험할 수밖에 없다.


퇴사하는 것만이 답은 아니고, 새로운 시작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안다. 용기를 잃거나 가던 길 위에서 멈춰 설까 두렵기도 하다. 역설적으로 두려워도 아무것도 바뀌는 것이 없기에 오히려 더 용감해져야만 하는 것도 안다. 세상에 안정적인 것은 없음을 받아들이고, 삶의 역동성을 즐길 준비를 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 대면하는 내 삶과의 투쟁, 줄다리기 제1막이 시작되었고, 삶의 역동적인 파도는 일기 시작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파도를 타는 수밖에. 마음을 따르자.


'가진 게 없으니 잃을 것도 없다. 진정한 서퍼는 파도에 맞서기보다 파도를 즐기는 법이야.'


아이러니하게도 파도가 일자, 쪼그라졌던 마음이 다시 움직였다.

꿈틀. 꿈. 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