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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Aug 19. 2019

포크와 나이프 대신 수저가 맺어준 새 가족

7,500km 떨어진 스웨덴에서 한식으로 맺은 우리의 인연

2017년 1월 겨울 오후 2시, 북극권에서 얼마 멀지 않은 스웨덴 북부 우메오에는 어둠이 일찍 찾아왔다. 스웨덴의 한 가정집 주방에서는 금발과 검은 머리의 서로 다른 생김새의 사람들이 서툰 솜씨로 당근, 시금치, 양파, 버섯, 계란을 다듬는다. 바로 한국식 비빔밥을 위한 재료다. 오후 5시, 식탁 위 은은하게 촛불이 빛나고, 포크와 나이프가 놓이던 테이블 위에 오늘은 대신 젓가락과 숟가락이 놓인다. 식탁에 놓인 오후 내내 손질했던 당근, 시금치, 양파, 버섯, 계란 등 형형색색의 비빔밥 재료와, 잘 익은 김치가 입맛을 자극한다. 오늘은 'Smaklig måltid(스웨덴어로 맛있게 드세요)' 대신 '잘 먹겠습니다'라는 말로 식사가 시작된다. 갓 지은 따끈한 밥 위에 준비된 비빔밥 재료를 놓기 위해, 식탁 위에서 여러 젓가락이 섞인다. 능수능란한 젓가락질로 반찬을 집는 사람이 있는 반면, 계속 미끄러지는 젓가락질에 민망하게 웃음을 참는 사람도 보인다.

 


'한국식 젓가락은 처음 써봐, 보통 초밥을 먹으러 가면 나무젓가락을 주거든, 생각보다 더 어렵다!'

검은 머리, 갈색 빛의 피부, 외까풀의 눈 나와 별반 다르지 않게 생긴 친구 안나(Anna)는 쇠 젓가락질은 처음이라며 혀를 내두른다. 하지만 끝내 포기하지 않고 젓가락으로 비빔밥 재료를 집어 자신만의 비빔밥을 완성해냈다. 새빨간 고추장 한 티스푼과 고소한 참기름도 한 방울 계란 위에 살짝 얹었다. 안나를 따라 긴 금발 머리의 남편과, 동서양의 오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안나의 두 딸도 자신만의 비빔밥을 완성했다.

'진짜 한국식 비빔밥은 처음 먹어봐! 정말 먹어보고 싶었는데... 그런데 어떻게 먹는 거야?'

비빔밥을 섞지 않고 밥 한 숟갈을 그대로 떠서 먹으려는 안나의 가족에게, 나는 비빔밥은 섞어서 먹는 음식이라며 시범을 보였다.

'비빔'은 'To mix' 라는 뜻이고, '밥'은 'Rice' 야. 그래서 진짜 제대로 섞어야 해!



안나와 두 딸의 Tyra와 Li와 함께

외형적으로는 전형적인 한국인으로, 비빔밥을 일 백번은 더 먹어봤을 것 같은 친구 안나는 나의 스웨덴 유학 시절 만난 가족 같은 친구다. 어릴 적 한국에서 스웨덴으로 입양되어, 락을 좋아하는 긴 금발머리의 남편과 예쁜 두 딸과 함께 스웨덴 북부 우메오에 살고 있다. 나는 진정한 가족이란 무슨 일이 있든 간에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는 존재라고 생각하는데, 안나네 가족은 내가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과 떨어져 스웨덴에서 사는 동안 항상 나의 울타리가 되어주었다.

 

함께 요리한 많은 한국음식들(떡볶이, 닭갈비, 김밥)


비빔밥을 시작으로 우리는 안나네 집에서 거의 1주일에 한 번은 한국 음식을 요리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비빔밥, 잡채, 된장찌개, 김치전, 닭갈비, 파전, 삼겹살, 보쌈, 김밥, 찜닭 등 수많은 한국 음식을 함께 요리하고 나눠먹는 동안, 우리는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아픈 과거, 희망적인 미래까지 우리의 역사를 함께 써 내려갔다. 우리의 이야기는 우리가 준비한 음식 위에 톡톡 뿌려져 감칠맛을 더했다. 스웨덴을 떠나온 지 1년이 되는 지금도 안나와 나는 매주 안부를 주고받으며 함께 나눴던 한국식 집밥을 기억한다. 우리가 함께 요리한 집밥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이유는 단순히 음식이 맛있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시간이 만들어준 단단한 관계 때문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안나는 타지에서 가족과 떨어져 살던 이방인인 나에게 자신의 집을 활짝 열어주었고, 아픈 데는 없는지, 외롭진 않은지  항상 보살펴주었다. 내가 그녀와 그녀의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던 일은 한국 음식을 요리하는 것이었다. 고마움을 표현할 때 가장 따뜻한 방법은 손수 지어 대접하는 식사이지 않나. 더욱이 음식은 오감을 통해 한 국가의 언어, 관습, 지리 등 문화를 느낄 수 있는 문화적 총체다. 비빔밥은 무슨 뜻인지, 언제 먹는지, 왜 비빔밥이 한국의 중요한 가치인 '조화'를 의미하는지 등 그녀가 궁금해하는 한국 문화를, 나는 가장 편안하고 따뜻한 방법으로 알려주고 싶었다. 한국은 안나를 버렸지만, 안나는 한국을 버리지 않았음을 느꼈으니까. 한국식 집밥을 먹는 시간은 안나와 내가 서로에 대해 한 층 더 이해하게 되는 시간이자, 안나와 한국이 40여 년 간 단절되었던 세월을 좁히는 시간이었다. 



'비빔밥은 무슨 뜻이야? 김치는 어떻게 만들어? 김밥은 언제 먹어?

우리가 함께 요리를 할 때마다 안나는 사소하지만 그녀에겐 절대 사소하지 않은 질문을 통해 그녀는 자신의 뿌리에 대해 알아갔다. 우리가 한식을 요리하고 나눠먹는 횟수가 늘수록 나와 안나, 안나와 한국은 조금씩 더 가까워졌다. 안나는 함께 요리를 할 때마다 음식 사진을 찍어 그녀의 SNS에 올리곤 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음식 안에 담긴 이야기와 한국을 기억하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 40여 년 간 단 한 번의 교차점도 없었던 안나와 한국의 사이는 7,500km가 넘는 스웨덴과 한국 사이의 거리가 무색할 만큼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함께 요리를 한 지 1년 반이 지난 2018년 6월, 그녀는 입양된 후 처음으로 한국에 갈 용기를 냈다.



'나 여름방학에 가족들과 한국에 가려고 해!'

안나가 한국에 가겠다고 선언한 날, 우리는 어김없이 안나네 집에서 한국 음식을 요리해 저녁을 먹고 있었다. 2018년, 내가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올 준비를 하던 즈음, 안나는 이번 여름휴가는 한국에서 약 2주간 보낼 거라고 했다.

'나에겐 한국에 아무런 연고가 없어. 하지만 내 두 딸에게 자신들의 반쪽 뿌리를 느끼게 해주고 싶어. 우리가 함께 한국 음식을 요리해 먹는 동안 한국에 대해 더 궁금해졌거든!'.
2018.06 남대문 근처에서 안나의 딸 Li와 남편 크


조금씩 좁혀지던 거리는 마침내 안나가 40여 년 전 떠난 7,500km를 거슬러 다시 한국땅을 밟았을 때 0이 되었다. 지난 푸른 여름, 서울에서 만난 안나와 안나네 가족은 태어나 처음 방문하는 한국을 그렇게 낯설어 하진 않는 것 같았다. 우리가 스웨덴에서 함께 한국식 집밥을 나눈 시간들 덕분일까? 안나네 가족은 처음 방문한 한국에서 누구보다도 더 맛있게 김치를 먹고, 자연스레 수저를 사용하고, 비빔밥을 젓가락으로 비빌 줄 알았다.


스웨덴의 한 가정집에서 매주 한국식 집밥을 먹던 시간은 끼니를 해결하거나 사회적 교류를 위한 시간 그 이상의 의미였다. 특히 서양 음식과 달리 우리 한식의 '나눠 먹는' 문화는 우리를 더욱 끈끈하게 연결시켜주었다. 보글보글 끓는 찌개를 한 국자를 뜨고, 가장 맛있는 고기 한 점을 집어 상대에게 먼저 나눠주는 이 모든 게 함께 식사하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자 배려다. 한국식 집밥을 나눠 먹으며 안나와 나는 한 가족이 되었고, 안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고향을 밟았다. 자신의 가족이 있는 곳으로. 우리가 함께한 식사 시간이 안나에게 잃어버린 40여 년의 시간을 되돌려 줄 수는 없었지만, 그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간 세월만큼 멀어진 안나와 한국 사이의 거리감을 좁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마음으로 한국을 받아들였다.




집밥. 어릴 적 나는 저녁상이 차려지면 항상 아빠 옆에 앉아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요즘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재잘대곤 했다. 그러면 아빠는 '아빠가 어렸을 땐 말이야~' 하고 아빠의 역사를 들려주시곤 했다. 온 가족이 모인 식사시간은 우리 가족이 유일하게 각자가 살아내고 있는 삶을 나누는 순간이었다. 아쉽게도 3년 간의 대입, 대학 자취 생활 6년동안 프로 급식러에서 프로 혼밥러로 진화하며, 집밥은 서서히 나의 일상에서 사라졌지만, 집을 떠나 머나먼 스웨덴에서 집밥은 다시 내게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 주었다.


스웨덴을 떠나기 전 나는 안나에게 잊혀 가던 집밥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 주고, 나를 가족처럼 챙겨줘 고맙다 말했다. 오히려 안나는 나에게 자신의 가족이 되어주고 한국을 놓지 않게 해줘 오히려 고맙다 말했다. 안나네 식탁에 포크와 나이프 대신 숟가락 젓가락이 놓이는 시간은, 나와 안나네 가족을, 안나와 한국을 단단하게 연결해주는 시간이었다.


포크와 나이프 숟가락과 젓가락이 섞이는 동안, 그렇게 우리는 가족이 되었다.

우리가 함께 저녁을 먹은 그리운 안나네 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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