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에서 깨달은 진정한 학습의 의미
스웨덴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음이 완전히 무너져 스스로 힘듦을 이겨내지 못하고 울며 글을 쓰곤 했다. 마음속에 쌓아둔 짐들을 눈물로 펑펑 울면서 비워내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첫 발표를 앞두고 부담감이 상당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발표를 준비하고,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기준을 정해 나를 무작정 채찍질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격려와 도움을 받아 마음을 다독이고 발표를 마쳤다. 첫 발표라 긴장도 많이 하고, 잘 해야겠다는 마음을 버리자고 마음먹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이 쉽사리 사라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웬 걱정이었던 걸까 싶을 정도로 발표는 순탄하게 진행되었고 우리의 첫 토론 시간은 기존의 연구에 질문을 던지고 다양한 이슈들에 대해 의견을 교류하며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걱정을 많이 했던 발표 시간이었지만 나는 이 시간을 통해 오히려 앞으로의 학교 생활에 내가 어떻게 임해야 하는지 깨닫게 되었고, 부담감을 떨쳐낼 수 있었다. 어떤 것들이 나의 부담감을 덜어냈을까?
발표의 목적은 발표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떤 생각을 나누느냐이다.
한국에서 발표를 준비할 때에는 발표 내용에도 심혈을 기울이긴 했지만, 발표의 형식이나 태도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썼다. 교수님과 수많은 다른 학생들 앞에서 하는 공식적인 발표인지라 캐주얼하기보다 엄격하고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발표가 많았다. 특히 대부분의 발표가 공식적으로 '평가'를 받는 것이 명시되었고, 교수님의 '평가지'와 수많은 '평가 기준'이 내가 발표를 준비하는데 큰 압박을 줬다. 격식을 차리고 형식에 치중하는 발표가 캐주얼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는 발표보다 더 프로페셔널해 보이는 장점이 있지만 딱딱한 분위기에서 청중들과 평가를 하는 교수님과의 소통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 것이 사실이다.
반면에 내가 스웨덴에서 처음으로 경험한 토론 수업은 굉장히 캐주얼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나를 포함하여 세 명의 학생이 각자가 정한 저널을 읽고 이를 요약/비판하고,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주제들을 준비해왔다. 스웨덴 친구의 발표를 시작으로 나, 그리고 러시아 출신의 스웨덴 친구가 뒤를 이었다. 약 20분씩 자신이 준비한 발표를 마치고 10~15분 정도 함께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아무리 캐주얼한 분위기라도 평가에 반영되는 시간인 만큼 나도 모르게 더 좋은 점수를 받고 싶고 프로페셔널하게 마무리해야겠다는 마음이 앞서고 있었다. 그런데 첫 스타트를 끊은 스웨덴 친구의 발표와 이에 대한 교수님의 피드백은 이러한 경쟁의식을 느끼는 내 모습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사실 나는 첫 친구의 발표를 보면서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려울 거라는 생각부터 먼저 했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그 발표가 너무 캐주얼하고 말이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는 부분들이 집중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발표를 하는 동안 그리고 발표 후 교수님과 우리가 중점을 둔 부분은 발표의 형식이 아니라 그 친구가 기존의 연구에서 어떤 새로운 이슈들을 발견했고, 이미 정립된 개념들에 대해 어떤 비판적인 시각을 가졌느냐였다. 발표자는 자신이 읽은 저널에서 부족하거나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던 부분, 그리고 앞으로 연구가 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신만의 관점'을 끌어내어 왔으며 발표 내내 청중과 교수님과 질문을 주고받으며 발표를 이어나갔다. 주어진 10~15분의 토론 시간에도 교수와 학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이 궁금했던 부분에 대해 질문을 던지거나 자유롭게 의견을 나눴다. 석사생들이 모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혹자는 그래도 학생들보다 오래 공부한 교수가 발표에 대해 피드백하고 그/그녀의 통찰을 학생들과 나누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느낀 점은 우리는 질문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사물의 정의가 정답이 아님을 깨닫고, 호기심을 가지고 내가 들여다보고 싶은 주제를 찾게 된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교수 역시 모든 지식을 섭렵하고 있지 않기에 모를 수도 있는 것이 당연하다. 교수의 역할은 지식을 전달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그들만의 흥미를 발견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볼 수 있도록 그들보다 보다 깊은 통찰력을 바탕으로 우리를 이끌어주는 것이다.
매번 수업을 할 때마다 우리 교수님은 모든 사안에 대해 우리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관광 개발의 정의가 뭘까?', '이 사람은 이렇게 정의했는데, 과연 이 정의가 타당하다고 생각하니?', 'A라는 결정을 할 경우 B 입장은 어떨까?' 등등 수업 내내 우리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자연스럽게 우리의 생각을 이끌어 낸다. 사실 이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이럴 수도 있지 않을까?' , '나는 이 부분이 더 보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잘 못 된 것 같다' 등 확신에 차 있는 답이기보다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과정은 오히려 내가 관광학을 공부하면서 관련된 이슈들에 대해 다양한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데 정답이란 없으며 다만 각자의 이해관계 또는 가치관에 따라 '자신만의 관점'만이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우리가 무엇을 배우는 데 있어 그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지식을 받아들이고 암기하는 것도 중요하다. 결코 한국에서의 모든 시스템이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암기와 기존의 지식을 흡수하는 데에만 치우쳐 있었을 뿐. 그리고 더 많은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들어서 남을 이겨야 한다는 경쟁시스템에서 우리 모두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조금씩 학습은 경쟁이 아니라 결국 나를 둘러싼 환경을 이해하고 나의 생각을 정립해가는 과정임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것도 아니며, 내가 모르면 남도 모르기에 결국은 또 질문해야 함을 배우고 있다. 학습은 생각을 나누는 아름다운 과정이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왜'라고 질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