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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Sep 21. 2019

자녀가 자기만의 지도를 그리도록 믿어주세요.

주도적인 삶을 위해 필요한 것

부모가 자식에게 삶의 경험과 생각을 나누듯, 자식도 부모에게 자신의 삶의 경험과 생각을 나눌 때, 자녀는 비로소 자기 길을 닦아 나가기 시작한다. 그래서 쓰는 이야기.


엄마,

오늘은 삶에 대해 얘기해보려 해요. 제가 좋아하는 노래 중에 가수 양희은 선생님이 부른 '엄마가 딸에게'라는 곡이 있어요. 가사는 엄마가 15살의 딸에게 전하는 인생의 조언에 관한 거예요. 사랑하는 딸을 걱정하는 마음에 엄마는 딸에게 공부해라, 사랑해라, 성실해라  여러 가지 조언을 하지만, 결국 엄마가 하고 싶었던 말은'너의 삶을 살아라'는 것이었어요.


나는 엄마가 산 세월의 1/2 밖에 살지 않았는데, 인생에 대해 논할 자격이 있을까 고민했지만, 저 노래에 용기를 얻었어요. 15살의 딸도 엄마랑 인생을 논하는데, 나는 그보다 두 배는 더 살았으니 할 자격이 있지 않을까는 생각에서요(웃음). 저는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삶의 의미를 찾는다고 생각해요. 태어남과 동시에 삶의 유한함이 주어지니까요. 말과 글을 배울 때까지 언어로 표현을 못할 뿐이죠. 어떤 이유로 난 우주에 내던져졌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모든 사람이 죽는 그 순간까지 고민하는 질문이 아닐까요. 질문하지 않는다면 질문해야 하는 문제라 생각해요. 엄마는 어땠어요?


'난 왜 태어났을까? 난 어떤 삶을 살고 싶을까? 내게 주어진 소명이란 게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주변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토론하며 저만의 답을 내리려고 하는데, 쉽지만은 않아요. 그럴수록 더 찾아보고, 읽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엄마는 제가 원론적인 이야기, 뜬 구름 소리 잡는 이야기만 한다며 현실 감각을 가지라는 말씀을 하시곤 하죠. '태어났으니 그냥 사는 거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고 싶은 대로만 살 수는 없다. 소명을 찾기보다 먼저 내가 생존하는 게 먼저다. 경기가 어려운데 배부른 소리 하지 말아라'. 사실, 엄마만 이렇게 말씀하는 건 아니에요. 제 주변의 많은 친구들도 늘 한 군데 정착하지 못하고, 뜬 구름 잡는 저를 많이 걱정하기도 하거든요(웃음).'도희야, 다 그렇게 살아'.


가끔 이런 생각도 들어요. 내가 너무 유별난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건가 하고요. 하지만 저는 더욱더 현실적인 감각을 가지기 위해서 위의 질문에 대답하는 건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지금 숨 쉬고 있는 이 시간이, 어려운 경제 상황이, 또 앞으로 살아갈 변화무쌍한 수십 년의(어쩌면 백 년 이상일지도 모르는) 시간이 현실인데, 생존에만 급급하게 되면 '생각대로 사는 게 아니라 사는 대로 생각(은지상)'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가혹한 현실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오히려 더 많은 생각이 필요한 게 아닐까요? 내가 사는 환경을 이해하고, 나를 이해해야만 이 험난한 세상에서 방향키를 잡고 버텨나갈 수 있으니까요.  '산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드문 현상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그저 존재할 따름이다'. 아일랜드의 존경받는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가 말했죠. 저는 살고 싶어요.



ㅣ 나만의 지도를 그리는 일의 중요성 ㅣ

방송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과 책 과학콘서트로 잘 알려진 정재승 과학자는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게 뭔지를 알려면 세상에 대한 지도가 있어야 한다'라고 말해요(열두 발자국, 정재승, 어크로스). 아무도 내 지도를 그려주지 않기 때문에 직접 여행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책을 읽으면서 지도를 직접 그려야 한다고요. 물론, 이 과정에서 방황도 많이 하고 무수히 실패도 많이 할 거예요. 하지만 적극적인 실패와 방황을 할 때, 비로소 우리는 삶에서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살 것인지, 어떤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지에 대한 자기만의 답을 내릴 수 있다고 해요. 실제로 우리 뇌는 스스로 선택해 본 경험이 많을수록, 확신을 가지고 자기 선택을 내릴 수 있대요. 정말 많이 공감 가는 이야기였어요. 꼭 제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거든요.


정재승 과학자의 말대로 우리는 학교에서 지도를 그리는 방법을 먼저 배워야 하는데, 길을 잃지 않고 목적지까지 빠르게 도착하는 법만 배웠어요. 그런데 자기 지도가 없으니 목적지도 없어요. 다만, 빠르게 도착하는 법만 배웠죠. 그래서 종착점이 어딘지도 모르는 채, 남들이 가는 대로 가는 게 아닌가 싶어요. 우리 뇌는 다수의 선택을 따를 때 가장 안전하다고 느낀대요. 10대의 도희도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오로지 '인서울 대학'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했어요. 왜 공부하는지 몰랐고, 다들 열심히 하니까 나는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었죠. 대학에 들어와서는 남들이 다 '좋은 기업', 좋은 기업이 어떤 곳인지, 나랑 맞는 곳인지에 대한 정의도 없이, 다들 취업을 위해 스펙을 쌓으니까 매일 학교 도서관에 가서 여러 공부만 했어요. 사실 왜 하는지, 뭘 하는지도 몰랐어요. 불안했을 뿐이죠. 친구들이 커피 한 잔 하자고 제안하면, 30분 속으로 시간을 재고 내려갈 정도였다니까요.


그런데, 22살 때 아빠가 하늘나라로 가시면서 제게 숙제를 남겨줬어요. '딸아, 너는 어떤 삶을 살고 싶니?'. 답을 못 하겠더라고요.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22살 혼자 떠난 유럽 여행을 시작으로, 작년 스웨덴에서 돌아올 때까지 저만의 지도를 그리려고 노력한 것 같아요. 많은 시도를 했고, 실패를 했고 여전히 지도를 그리고 있는 걸 보면, 방황이 너무 길어진 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요(웃음). 10대 때 좀 더 일찍 방황을 시작하고, 실패를 했다면 어떨까 아쉬움도 들어요. 수능을 위한 공고한 공교육의 현장에서 탈선하긴 어려웠겠지만요(웃음).


엄마, 스웨덴에 사는 동안 자기 지도를 그리는 친구들을 많이 만났어요. 진로, 취업, 결혼 등 삶의 중대한 결정 앞에서 내가 주변 어른들의 많은 걱정과 간섭을 받는 것과 달리, 친구들은 스스로 결정을 내리더라고요. 서구사회가 개인주의 철학을 기반으로 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저는 스웨덴 사회 제도 덕분이라 생각해요. 스웨덴에서는 만 18세(우리나라 나이 20살)가 되면 대부분 집을 나와 독립해 살아요. 성인으로서 자기 삶을 설계해 나가는 거죠. 스웨덴은 평생 무상교육을 제공하기 때문에, 학비 걱정은 없어요. 생활비는 아르바이트나 정부 보조금으로 충당하죠. 스웨덴 학생들은 국가로부터 한 달 평균 30만 원을 무상으로 받고, 나머지 필요한 생활비는 국가에서 저리로 대출받거든요. 이웃나라 덴마크도 마찬가지예요. 대학 등록금, 생활비, 유학 생활비, 보증금 등 많은 경제적인 부분을 부모님께 수년간 의지해온 제겐 문화 충격이었죠!


사실  잘 사는 북유럽 국가 학생들의 삶의 고민도 별반 다르지 않더라고요. 진로, 집세, 생활비 등이요. 하지만 가장 큰 차이는 삶의 결정권을 주도적으로 행사하는 모습이었어요. 국가의 사회안전망이 기본적으로 먹고사는 문제를  보조해주는 데다, 무상교육과 실업급여나 취업 재교육 제도를 통해 실패해도 재도전할 기회를 주고 있었죠. 또 부모는 성인이 된 자녀의 선택을 믿어준다 느꼈어요. 개인주의 서구 사회에서 친구들은 성숙한 한 인격체로 존중받아요. 이와 관련해 정재승 과학자도 저서 '열두 발자국'에서 사회안전망이 부재한 상황은 사람들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키워 결정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고 주장해요. 그러니 남들이 하는 대로 할 수밖에요. 사회에서 안전하게 우리를 보호해주지 못하니, 부모님이 우리 삶의 안전망이 평생 되어주시죠. 특히 부모는 자녀의 교육과 삶을 위해 자신의 삶에서 많은 것을 희생하고, 심지어 자녀의 선택까지 대신해주려는 경향이 강해요. 경제적 의존이 심하다 보니 우리는 부모의 의사를 무시할 수는 없는 데다, 어릴 적부터 혼자 선택해본 적이 없으니 스스로 결정을 내리기가 어렵게 되죠. 내 삶의 결정권을 내가 휘두르기 어렵게 되는. 다행히(?) 엄마는 엄마가 배운 게 없다며, 저보고 알아서 하라고 늘 믿어주셔서 감사해요. 방황이 길어질 때마다 그 신뢰가 깨지기도 하지만요!(웃음)


제가 퇴사를 한다고 하니 덴마크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생존경쟁사회에서 가진 것도 아무것도 없이 스스로를 내 던지는 게 무섭지 않냐고요. 사실 무서워요. 나이 30에, 직장 경력도 길지 않고, 돈은 없고ㅎㅎ. 하지만 저는 어디에 속해서 일하는 것만이 저의 열정, 능력을 보여주진 않는다 생각해요. 제가 사는 매 순간순간이 제 발자국을 향해 나아가는 시간이고, 스스로 결과물을 만들어 증명해야겠죠! 지금 제가 목표로 하는 바는 제가 스웨덴에서 느낀 바를 글을 통해 나누는 거예요. 스웨덴에 산 2년 동안 한국에서 삶의 희망을 포기했던 제가, 희망을 찾았거든요.  



ㅣ 수신제가치국평천하 ㅣ

글을 통해 나와 내 친구들이 힘든 것이 우리의 탓이 아니라는 걸 공유하고 싶었어요. 한국 전쟁 이후 고도성장기를 거치다 저성장 시대에 맞닥뜨린 시대적 상황과, 공고해진 계층구조, 수능만을 위한 교육제도를 우리가 만든 건 아니니까요. 우리는 정답만 찾는 방법을 배웠지만, 삶에는 정답이 없어요. 자기 만의 답이 있을 뿐이라 믿어요. 오히려 자기 만의 답을 찾지 않으면 남들과 비슷해지고, 더 경쟁력이 없어지지 않을까요(웃음). 그래서 저는 아무리 상황이 힘들고, 좌절스러워도 자기 믿음을 우리가 지켜나가면 좋겠어요.  


다음으로, 우리 세대가 부모님과 삶에 대해  이야기 나누면 좋겠어요. 내가 바라는 삶은 무엇인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결혼관은 어떤지 등  생각을 부모에게 전달할 때, 비로소 부모는 자녀를 믿어주는 것 같아요. 자녀도 한 인간으로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나가는 존재임을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당장 이 글을 쓴다고 사회제도를 변화시킬 순 없겠지만, 우리가 바라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목소리늘 내는 일은 중요한 것 같아요. 민주주의 사회에서 한 목소리 한 목소리가 모이다 보면 힘이 생길 테니까요. 우리 사회가 청춘이 자기만의 지도를 그려나갈 수 있도록, 실패를 보듬어주는 곳이 되길 바라요.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저부터 제 목소리를 찾고, 엄마께 더 적극적으로 려드릴게요! 말대꾸는 아니에요(웃음)


개인의 변화, 가정의 변화가 사회의 변화로까지 이어지길 바라며, 엄마와 나 사이의 징검다리를 놓아요.


2018.04  스톡홀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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