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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Oct 28. 2019

행복의 기준과 삶의 속도는 누가 정한건가요?

행복의 기준과 삶의 속도는 개인마다 다르다.

'내가 꿈꾸는 국가는 북유럽 국가야. 누구든 평등하고 행복할 권리를 가지는 사회'. 대학생 때 친구들과 함께한 독서토론에서 유시민 작가의 <국가란 무엇인가>를 읽었다. 나는 누구든 자신이 행복할 곳을 선택할 권리가 있으며, 나에게는 북유럽 국가가 그곳이라고 말했다. 한 번도 가보지도 않았지만, 책, 티비, 뉴스 등 미디어에서 마주한 북유럽 국가는 모두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나의 행복과,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꿈꾸던 내겐 도망치기엔 충분히적인 곳이었다.


어릴 적부터 나는 사람을 참 좋아했다. 살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도움도 많이 받았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학만 가면, 대기업에 가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 그들의 삶에서 내 미래가 보였다. 두려웠다. 은 기업에 취직하면 인생의 목적인 행복을 손에 쥘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쉽지만은 않아 보였고, 불행의 요인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었다. 미래의 행복을 담보로 현재를 수년간 유예했는데, 우리는 언제 행복할 수 있을까?



도망치고 싶었다. 사회가 세워놓은 길 위에서 탈선 없이 대학을 졸업하고 평범한 대기업 사원이 되고 싶지 않다는 에고도 단단해졌다(치열한 삶을 사는 친구들 앞에서 오만했다). 졸업을 앞두고 꿈, 사회 정의, 평등, 행복에 관해 밤새 토론을 하던, 개성 넘치던 친구들은 하나둘 비슷한 헤어스타일을 하고, 똑같은 정장을 입고, 동일한 인적성 시험에 응시하기 시작했다. 사회 변화를 함께 외치며, 비슷한 길을 강요하는 사회 구조에 대해 저항하던 동지를 잃은 슬픔이 컸다.


내 나이 스물여섯이었다. 대학을 1년 늦게 들어가고, 휴학을 1년 반이나 한 까닭에 취업 시장에서 나는 이미 늦었다 생각했다. 한국 사회에서는 나이에 따라 정해진 타임라인을 따라가는 게 무척이나 중요했고, 나는 그 타임라인을 벗어나 있었다. 더군다나 스물두 살에 아빠가 돌아가시면서 엄마와 친척들은 하고 싶은 것을 찾기보다 하루빨리 경제활동을 하라고 닦달했다. 어른들은 취직이 늦어지면, 결혼이 늦어지고, 출산까지 늦어짐을 걱정했다. 그리고 내 타임라인은 어른들이 세운 기준을 벗어나고 있었다. 내  속도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나의 친구들의 타임라인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사회가 맞춰놓은 인생시계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다. 생존이 걸린 문제였으니까.


그때부터 나는 사회제도와 분위기가 개인의 행복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 것 같다. 행복할 때가 됐는데 아직 행복하지 않은 나와 내가 사랑하는 보통의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그리고 내가 내린 행복의 답은 결국 '자유로운 삶'이었다. 스스로 자유롭고, 그 누구도 내 삶에 대해 가치 평가하지 않는 삶.


스웨덴도 완벽한 사회는 아니었지만, 2년 동안 겪은 스웨덴은 내가 꿈꾼 사회 모습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모든 국민이 개별적 존재로 존중받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는 사회. 스웨덴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는 가장 중요한 가치였다. 그것은 기회의 평등과 사회의 다양성 존중으로 이어졌다. 성별, 나이, 소득 수준, 성적 취향 등 내게 주어진 외부적인 것들이 내 행복과 자유를 추구하는 데에 우리나라에서만큼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국가가 제도적 기틀을 마련해준 덕분에 사람들의 다양성포용되었고, 개개인의 삶의 만족도는 높았다.

다양성의 상징, 스톡홀름 퍼레이드



얼마 전 홍대 거리에서 엄마뻘되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마포구 취업동호회에서 명리학을 배우는 분이었다. 요즘 청년들이 취업도 안되고, 연애, 결혼, 출산도 다 포기해 용기를 주기 위해 나왔다고 하셨다. 재미로 사주나 봐볼까 해 자리에 앉았더니, 이름, 나이, 직업부터 물으신다. 30세 퇴사생이라 말했더니, 내 앞에는 깊은 늪이 놓여있다며, 힘든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옆 테이블의 심리전문가 아주머니께 심리 상담을 받으라신다. 손거울을 들고 새빨간 립스틱 칠하기에 몰두한 그분은 전혀 전문가처럼 보이지 않았다. 재미는커녕 시간 아깝다는 생각에 자리를 뜨자, 그 아주머니는 '학생~  상담 안 받고 가면 힘들어. 쉽게 늪에서 못 나와'라고 애타게 외치며 나를 붙잡았다. 퇴사생, 취준생이라는 이유로 멋대로 내 행복을 재단한 그 아주머니의 말이 달갑지는 않았다. 난 그녀가 생각하는 만큼 절망적이지도, 힘들지는 않았는데. 잠시 쉴 타임이 필요했으며, 직장은 없었지만 소소한 일거리도 있었다.


어른들에게 묻고 싶다. 행복의 기준과 삶의 속도는 누가 정한 거죠? 여러분의 기준으로 우리의 행복을 판단하지 말아 주세요. 우리 모두 각자의 행복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으니. 복하기 위한 방법엔 정답이 없었고, 다양한 형태의 행복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나는 아직 스웨덴 이야기를 우려먹고 있다. 스웨덴에서의 경험 덕분에 적어도 내 삶은 조금 더 행복해졌으니까. 


한국과 스웨덴은 다른데 이 글이 현실적이지도 않고, 공감을 사지 못할 수도 있다. 당장 사회 제도와 문화를 바꿀 수 없는데 스웨덴 이야기가 이상적인 이야기로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재승 교수는 저서 <열두 발자국> 에서 '책을 쓰는 사람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라 말했다. 당장 내가 바꿀 수 있는 게 없지만 질문이라도 던지고 싶어 나는 스웨덴 이야기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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