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생애 처음으로 정규직으로 고용되었고, 입사 후 4개월 만에 퇴사를 했다. 그리고 반년이 지난 지금 나는 다시 조직으로 돌아가기 위해 구직을 하고 있다.
2018년 7월 스웨덴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구직을 시작했다. 20대의 마지막에 구직을 시작하는 나를 보고, 친구들은 막차를 놓치면 기회는 더 이상 없을 거라고 했다. 불안했고, 조급했고, 방향성 없이 내가 해볼 수 있는 일이다 싶으면 우선 원서를 쓰고 보았다.
'이건 내 길이 아닌데...' '내가 지금 따질 때가 아니지'
중심 없이 진자운동을 하는 추처럼 극과 극을 왔다 갔다 하며, 어찌 됐든 나를 취업 공고에 끼워 맞추어 이력서를 여러 군데 돌렸다. 이어지지 않는 점들을 잇고자 열심히 타자 위에서 바느질하다 보니 열심히는 했지만 인풋 대비 아웃풋은 당연히 적었고, 반년이 지나 2019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나는 구직자 신세였다.
'방향성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서류에서 광탈을 하기도 하고, 아예 연락을 받지 못한 곳도 수두룩했으며, 면접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합격한 곳도 있었지만 내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이라 결국 사양했고, 해외 취업에 합격까지 했으나 결국 일이 잘 풀리지 않기도 했다. 그래도 별수 있는가, 지원서를 계속 쓸 수밖에. 남들보다 사회생활을 늦게 시작한 나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고, 미래에 대해 불안감에 압도되어 우울해하기도 하다가, 어느 순간 다시 자신감을 되찾는 등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며 2019년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해 3월 감사히도 관심 있던 회사에 취업을 했다. 내 생애 최초의 정규직이었다.
4개월, 내 인생 첫 정규직 생활
내 인생의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긴장도 많이 했고, 많지는 않지만 처음으로 꼬박꼬박 월급도 받아보았다. 누군가가 열심히 일궈 놓은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일이 얼마나 감사하고 어려운 일인지 사실 그 당시에는 잘 알지 못했다. 회사가 지향하는 가치도, 동료들도 좋았지만 회사 문화에 나는 쉽사리 적응하지 못했다. 사회생활이 처음인 데다, 워낙 캐주얼하고 평등한 스웨덴 사회 문화에 바람이 들었던 걸까. 일을 하면서도 매일 칼퇴를 목표로 스스로 내 역량을 100% 발휘하지 않고 있음을 나는 잘 알고 있었고, 이는 회사에도 나에게도 마이너스였다. 결국 입사 4개월 만에 나는 책상을 정리하고 퇴사를 결심했다.
그리고 퇴사 후 반년이 지난 지금 나는 지금 다시 구직을 하고 있다. '나만의 일을 해볼 거야!' 패기 있게 퇴사를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조직 생활이 그리워졌다. 퇴사 후 프리랜서로(a.k.a 알바) 글도 쓰고, 강연도 했지만 혼자 성장하는 데는 분명 한계가 존재했다.
사람은 사람으로부터 배운다.
우리 모두는 결국 유기적으로 협동하고 있다(출처:Pixabay)
프리랜서가 되면 출퇴근으로부터 자유로울뿐만 아니라 혼자 해내는 만큼 성장의 폭이 클 줄 알았는데, 시간적 자유를 얻는 대신 나는 공동체를 잃었고, 타인으로부터 배울 기회도 잃었다. 외로움보다는 성장이 정체되어있다는 느낌이 싫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조직 생활을 시작하면서 이를 깨우쳤다.
퇴사를 한 후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조직생활을 할 기회가 생겼다. 주한 스웨덴 대사관 교육홍보팀과 스칸디나비아 뷰티 브랜드 노라젠의 마케팅 일을 돕게 된 것이다. 대사관에서는 감사히도 대사님이 스쳐 지나갈지도 모르는 아르바이트생인 내게도 대사관 전체의 팀 회의에 참여할 기회를 주셨다. 어떤 조직에서 환영받는 기분은 짜릿했기도 하지만 덕분에 어깨너머로 외교관이 어떤 일을 하고, 다양한 부서가 어떻게 협력하는지 배울 수 있었다. 나는 스웨덴 교육홍보를 전담하시는 매니저님을 도와 스웨덴 유학 홍보 행사 운영을 지원했다. 엑셀 파일을 정리하는 매일 반복되는 일부터 행사 운영을 하는 것까지, 일의 규모와 상관없이 항상 누군가와 일했다. 노라젠에서는 콘텐츠 마케팅을 전담하게 됐는데, 노라젠의 CEO는 경험이 부족한 나에게 많은 자율성을 주었고, 신뢰해주었다. 덕분에 리모트로 일하면서도 마음껏 내 아이디어를 나누고, 만날 때 마다 적극적으로 상대의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다. 혼자서 1을 봤다면 함께 일할 때는 10을 보았고, 결국 일의 결과물은 더 정교하게 다듬어지고,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혼자서 모든 걸 잘 해낼 수 있다는 과거의 내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누군가와 함께 일하는 모든 과정이 배움이었다.
일의 전문성은 차치하고라도,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엑셀 파일을 정리하거나 행사 물품을 포장하는, 어쩌면 사소한 일을 처리하는 동료를 보면서 작은 일도 잘 해내는 마음가짐과 더 효율적인 프로세스를 배웠고, 동료와 부하직원을 대하는 상사의 모습에서 나는 어떤 리더가 되고 싶은지 배웠다. 그리고 사무실에서 얼굴을 보고 대화하는 모든 시간은 다른 사람을 더욱 사랑하고 배려하는 과정이었다. 돌이켜 보면, 내가 지난 직장에서 퇴사를 결심한 이유는 조직 생활 자체에 대한 회의보다 해당 조직의 문화가 나와 맞지 않은 탓이 크다. 조직이 나빴던 것도,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싫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나와 맞지 않았을 뿐. 더군다나 당시의 나는 인내심이 부족했고, 거만하기도 했다. 나는 조직 생활 '자체'가 맞지 않다 생각했었는데 해당 조직과 나의 케미가 통하지 않은 것이었고, 나 자신을 돌아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각자의 연결점을 찾는 우리(출처: Pixabay)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떤 일을 하든 나는 타인과 함께 일을 할 때 가장 많이 동기를 부여받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인간은 홀로 성장할 수 없다. 무슨 일을 하든 우리는 항상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그 관계에서 배움을 얻는다. 우리의 사고는 서로의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면서 한층 더 유연해지거나 확장되고, 서로가 서로를 대하는 태도를 통해 인간다움을 배우고 실천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일이 커질수록 혼자 해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사업의 목표마다 다르겠지만 더 광범위한 영향력을 끼치거나 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인적자원이 필요하다. 프리랜서로 시작한 일도 1인 기업을 거쳐 결국 조직 또는 공동체의 형태를 띨 테고, 결국 우리는 더욱 유기적으로 함께 일할 것이다. 미래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더라도 결국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또 다른 모험의 시작
퇴사한 지 6개월 만에 나는 나와 맞는 조직을 찾기 위해 다시 구직을 하고 있다. 어떤 조직이든 간에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내가 그 조직과 궁합이 맞을지 알 수 없다. 취업이 연애와 같다는 말이 이제야 실감이 난다. 또 다른 모험을 해보는 수밖에. 취업난에 코로나까지 닥쳐 조금은 불안하기도 하지만 퇴사를 후회하진 않는다. 그곳을 떠났기에 홀로 또는 다른 조직에서 일하며 어떤 조직이 나와 맞는지 나름의 기준을 세웠다. 그리고 지난날의 패기와 거만함을 돌아보며 한층 겸손한 내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무엇보다도 안정된 직업이 없어도 굶어 죽지는 않겠다는 배짱이 생긴 것은 다행이다. 조직 생활 여부와 상관없이 스스로의 생존력을 길러야겠다는 교훈은 덤이다! 덕분에 재구직을 하는 지금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딘지, 앞으로 어떻게 조직 생활을 해 나갈지 기준이 서니, 더 이상 진자운동을 하는 추처럼 마음의 양극단을 오가지 않는다.
사람은 사람으로부터 배운다는 것을 깨달은 6개월 간의 퇴사가 곧 끝이 나길, 운명처럼 나와 맞는 조직을 찾길. 새로운 조직 생활에 대한 기대감으로 하루하루를 채우고자 노력하는 지금이 참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