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극복하는 게 아니야

넷플릭스 시리즈에서 얻은 위로

by 국경 없는 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Never Ever I Have>의 주인공 데비는 눈 앞에서 아빠를 여읜다. 데비의 아빠는 그녀의 오케스트라 콘서트 공연 중 심장마비로 쓰러진다. 그리곤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다. 정말 특별한 날, 소중한 누군가를 잃는 슬픔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8개월이 지나도록 데비는 그 날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빠가 돌아가시자마자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녀의 두 다리는 마비되어 버렸다. 가족과 친구들과의 관계나 학교 생활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아빠의 죽음이 데비의 마음에 큰 상처로 다가왔고, 어린 나이에 아빠 없이 헤쳐나가야 할 이 세상이 두렵기도 했을 것이다. 슬프고 두렵지만 그 감정은 제대로 표출되지도 소화되지도 못한 채, 데비의 삶 곳곳에 침투했다. 데비의 슬픔과 충격을 내가 감히 가늠할 수 없지만, 데비를 보자 꼭 8여 년 전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Netflix Never Ever I Have(Ep.9) 캡쳐

데비의 심리 상담을 맡은 테라피스트는 데비에게 아빠가 돌아가시던 그 날의 트라우마와 아빠를 잃은 슬픔을 극복하라고 하지 않는다. 슬프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만 아빠를 떠나보내라고 한다. 떠나보내라는 말이 영영 마음에서 보내라는 말은 아니었다. 아빠의 죽음을 외면하기보다 받아들이고, 현재 삶과 감정을 보살피라는 뜻이었다. 이 시리즈는 데비와 엄마가 아빠가 돌아가신 후부터 집에 모시고 있던 아빠의 재를, 아빠의 생일날 바다에 뿌려주는 것으로 끝난다. 오히려 아빠를 떠나보내자, 아빠는 가족들의 삶에 다시 들어왔다. 데비와 엄마의 마음 한 편에서 그들의 삶을 지지해주는 존재로.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던 아빠를 내가 보는 눈 앞에서 잃은 생생한 기억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극복이라는 단어는 '힘든 무언가를 이겨낸다'는 의미인데, 슬픔은 극복하는 게 아니라 평생 품고 갈 뿐이다. 나도 슬픔을 극복하려 애써 노력한 적이 있다. 소중한 누군가와의 기억마저 묻어버리는 것만 같았다. 오히려, 극복하지 않게끔 마음속 깊은 한 편에 묻어놨다가 문득 생각날 때 그 사람을 기억할 수 있도록 품기로 했다.


@Pixabay

세상에 우리가 극복할 수 있는 감정들이 있을까. 두려움도, 슬픔도, 힘듦도 다 사라졌다 다시 온다. 그래서 나는 두려움을, 슬픔을, 힘든 것을 극복하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릴 땐 극복하는 것만이 미덕이자 강인한 사람이 되는 길인 줄 알았는데, 살아오며 오히려 진정한 강인함은 이 감정들이 극복될 수 없는 것임을 알고 내 안에 품는 데서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8여 년 전, 중간고사를 끝내고 신나게 놀던 날,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접했다. 그리고 8개월이 아닌 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나는 그 슬픔을 극복하지 못했다. 아니 극복하지 않았다.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22살이었다. 대학입시도 마친 어엿한 성인이었지만, 그때는 내가 왜 그렇게 어리게만 느껴졌을까. 난 아직 한 참이나 어린데, 왜 부모님 중 한 분을 떠나보내야 했는지 이해되지 않는 것 투성이었다.


친구들이 수군대진 않을까 학교를 가는 것이 두려웠고, 일부러 기죽지 않기 위해 장례 후 한 동안 높은 힐을 신고, 가죽 재킷을 입고, 머리에도 한 껏 힘을 주고 학교에 갔다. 문득, 나중에 결혼할 땐 부모 없는 자식이라 손가락질당하진 않을까 무섭기도 했고, 아빠한테 전적으로 의지하던 등록금이며 생활비는 어떻게 해야 할지 현실적인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가족 중 그 누구도 내게 심리적으로나 물질적인 부담을 주진 않았지만, 장녀로서 그리고 성인으로서 헤쳐나가야 할 세상이 많이 무서웠다. 세상은 내 삶을 책임져주지 않았고, 삶의 테두리가 돼주던 아빠는 가 버렸다. 그래서 오히려 아빠가 평생 일하며 살아온 이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를 그렇게나 동경했는지도. 그 어디든 내 삶은 내가 책임지는 것임을 몰랐으니까.


우연찮게도, 위의 드라마를 보기 전 문득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아빠의 마지막 모습을 봤을 때 엄마의 감정이 어땠는지 물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라 엄마조차도 아빠가 돌아가시던 순간을 함께하진 못했지만, 엄마는 쓰러진 아빠를 봤을 때 아무 생각이 안 났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서야 상실의 슬픔과 더불어 어쩌면 아프지 않게 조금은 덜 고통스럽게 가서 다행이라는 감정이 들었지, 그때는 정신없이 119 부르고 장례 준비하기 바빴다고. 하긴 장례 3일 내내 나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뭐랄까... 장례식장에는 아빠의 영정 사진이 있고, 옆 영안실에는 아빠가 계신데, 아빠는 이 세상에 없었다. 염을 할 때도, 화장터에서도, 아빠의 재를 뿌리고 나서도 죽음은 실감 나지 않았다. 하지만 8년 내내 죽음에 대한 실감은 문득문득 떠올라, 내 얼굴을 타고 흐르곤 했다.


@Netflix Never Ever I Have(Ep.9) 캡쳐

가까운 누군가를 잃는 슬픔은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 기억이 8개월이든 8년이든 80년이든. 슬픔의 농도가 옅어질 줄 알았는데, 슬픔의 농도는 여전히 그대로다. 산 사람으로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살아 내다 보면 그 슬픔을 느낄 겨를이 없을 뿐. 데비는 아빠를 떠나보내면서 아빠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슬픔을 마주했다. 나는 데비가 그 슬픔이 옅어지지도, 사라지지도 않을 거란 걸 알고 있다 생각한다. 지금 농도 그대로 마음 한편에 자리 잡은 슬픔이 문득 떠오를 때면, 그저 마주하고 다시 그 그리움으로 저장해두기를.


슬픔도 죽음도 누구에게나 찾아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