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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Mar 21. 2022

퇴사 3개월 차, 1분기 퇴사 보고서

후회는 없지만 성과도 없는데 어쩌죠?

3월도 벌써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3월의 끝에 완연한 봄이 시작되리라. 12월 31일을 끝으로 나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그리고 벌써 퇴사 후 1분기가 지나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싶다는 열망과,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일을 만들고 싶다는 갈망을 연료 삼아 결심한 퇴사. 새해의 시작과 함께 꽃을 피우겠다는 야심 찬 포부와 달리, 나의 퇴사 1분기는 긴 겨울처럼 어둡고 추웠다.

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이 겨우내 꽁꽁 얼었다 봄에 생동하듯, 다가오는 봄에 나도 꽃을 피울 것이라 믿는다. 믿을 사람은 지금 나 밖에 없기도 하지만 그게 자연의 이치이자, 인생의 이치라 믿는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니까.


퇴사 후 나는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창구로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시작한 채널은 외국인을 타깃으로 한국 문화와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소개하는 브이로그 형태의 콘텐츠였다. 영국인 남자 친구와 함께 동, 서양의 시각을 곁들여 영어로 콘텐츠를 만들었고, 우리의 시각을 통해 진짜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을 나누고 싶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지금의 영어 실력이면 충분히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생각과 실전은 달랐다. 편집 실력은 하면 할수록 내 스타일을 찾아가며 조금씩 나아졌지만, 외국어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몰입감 있게 다 전달하는 것 너무나 어려웠다. 비디오를 찍을 때마다 좌절했고, 부끄러웠다. 찍는 횟수에 비례해 실력은 크게 늘지 않았고, 연습을 한다 해도 한계가 자명했다. 결국 전에서 처참히 무너진 나는 방향을 재정비할 수밖에 없었고, 10개가 넘는 찍어둔 비디오는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한 채 그렇게 하드 드라이브라는 무덤에 갇혔다.


퇴사 후 3개월, 아무런 성과도 없었지만 좌절하지 않기로 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좌절하지 않을 자신은 없다. 다만 좌절해도 다시 일어서서 앞으로 나갈 힘을 잃지 않으려 한다. 운동하는 모든 것은 에너지를 가지고,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계속 힘을 쓰다 보면 가속도가 붙는 게 자연의 법칙이니까,  때론 버티고, 때론 한 걸음 성큼 나아가고, 또 넘어져고 일어서 움직이다 보면 올해 끝엔 내가 바라는 곳에 도착했을 거라 믿는다. 살아 있는 우리 모두에겐 역동적인 힘이 내재되어 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긴 겨울의 터널 끝에서 다시 봄을 준비한다. 어떤 콘텐츠를 내가 더 자신 있게 할 수 있는지, 내가 제공할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인지 다시 고민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보고 있다. 이 역시 삐뚤빼뚤 서툰 점 투성이지만, 우리 뇌는 하면서 배우도록 설계된 만큼 그냥 해보려 한다. 그리고 그냥 하는 것이 내가 유일하게 지금 할 수 있는 것이다.


글을 쓰는 동안 칠흑 같던 겨울밤, 좌절하고 또 좌절했던 시간들이 생생하게 눈앞에 떠오른다. 짜증 나고, 한숨 쉬고, 울고 있는 내가 그곳에 있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누구나 각자의 꽃을 피우기 전엔 외로이 인고의 시간을 지나야 한다는 것을. 누군가가 시켜서 무언가를 하기보다, 나 스스로 하고 싶은 것에 온전히 집중하고 도전해볼 수 있는 이 시간이 나에겐 더없이 소중하다. 서툴지만, 서툰 그대로의 내 모습을 받아들이고, 나누고, 그렇게 나아갈 수밖에 없다.


긴 겨울의 끝에서 찾아올 봄을 기다리며, 나는 오늘도 서툰 한 걸음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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