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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Aug 23. 2022

빵과 밥의 연애부터 결혼까지

지난 2년, 그리고 앞으로의 평생

그와 만난 지 2년째 되는 날, 나는 그의 집을 떠났다. 대신 그와 나는 '우리 집'으로 이사를 왔다. 함께 마련한 첫 집. 8,700km 사이의 거리를 두고 평생을 다르게 살아온 우리는, 약 2년 간의 연애 끝에 내년 가족이 된다. 올해 4월, 함께 떠난 제주도 여행 중 그는 해발 1,850m 에서 깜짝 프러포즈를 했다. 화려한 데커레이션도 반짝반짝 빛나는 반지도 없었고, 그와 나 누구도 멋지게 차려 입진 않았지만 그 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으로 남았다.

그와 함께한 제주


2년 전 연애를 하려고 러닝 클럽에 간 건 아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그를 만났다. 스웨덴에 취업해 출국을 앞두고 있던 시점,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해외 취업을 포기하고 한국에서 취업을 했다. 쳇바퀴처럼 반복되던 회사-집 생활 속에 하루의 반 이상을 앉아서 지내다 보니, 금방이라도 병에 걸릴 것 같았다. 그래서 시작한 러닝. 고백건대 돈 안 들이고 운동화만 있으면 어디서 할 수 있는 운동이지만, 혼자서는 동기 부여가 도저히 되지 않았다. 나의 의지박약을 극복하기 위해 찾아간 러닝 클럽에 처음 간 날, 그곳에서 평생의 인연을 만났다.


우리의 첫 만남

우리는 매주 2~3회 함께 땀을 흠뻑 흘렸다. 운동 후 밥 먹으며 대화를 나눈 시간은 모국어도, 생김새도, 자라온 환경도 너무나도 다른 우리가 수많은 공통분모를 발견해 간 시간이다. 서로의 나이도 모른 채 데이트를 시작해, 좋아하는 운동, 책, 여행과 가치관을 나누며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8,700km 거리와 약 30여 년의 세월을 넘어 현재의 마음을 나누는 데는 우리의 국적도, 나이도, 직업도, 출신 학교도 중요치 않았다. 조건으로 평가받는 게 아닌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관계에 순수함과 따스함을 느꼈고, 사회적 위치에 관계없이 내 가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다는 데에 위안을 받았다.


'언니, 앞 날을 생각해. 상대는 아직 대학원생이고 언니는 나이도 있는데.. 현실적으로 결혼까지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게 좋지 않을까?'

그와 데이트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친한 친구가 걱정 어린 조언을 건넸다. 나이가 들면서 더욱더 인연을 만나기 어렵다는 걸 알기에, 어떤 결말을 맺을지 아무도 모르는 이 연애를 시작해야 할지 수 백 번 고민했지만, 두려움보다 우연히 찾아온 인연에 대한 설렘과 기대감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때의 막연한 두려움에 자연스레 찾아온 인연을 억지로 끝냈으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정말 아찔하고 슬퍼진다.


그와 함께한 2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우리는 데이트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는 긴 학업을 마치고 대학원을 졸업했고 자신이 원하던 분야에서 직업을 찾은 반면, 나는 다니던 회사를 퇴사했다. 그는 우리 가족을 만났고, 우리는 결혼을 약속하진 않았지만 각자가 그리는 삶에 대해 매일 이야기를 나눴다. 어디서 어떤 일을 하며 살고 싶은지, 우리가 결혼하게 된다면 어떤 가정을 꾸리고 싶은지. 프러포즈를 받기 전까진 커플이라면 누구나 으레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우리가 솔직하게 나눈 이야기 덕분에 서로 확신을 가지고 결혼을 약속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웠던 그의 고향과 문화

올 4월, 한라산 정상으로 향하던 길에 남자 친구와 여자 친구였던 우리는 약혼자가 되어 내려왔다. 그리고 5월, 그의 고향 영국에서 사랑하는 그의 가족들을 만났다. 부모님과 동생부터 할머니 할아버지 친척들까지, 이제는 곧 나의 가족이 될 그의 가족. 그의 가족이 나를 난생처음 보는 낯선 이방인이 아닌 가족의 일부로 따뜻하게 환영해 주신 덕분에, 그의 역사를 더 깊이 탐험했고, 우리 관계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은 한 층 더 묵직해졌다.


우리 둘의 만남이 가족을 넘어 다른 두 나라의 만남으로 커진 지금, 우리가 그릴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과 설렘을 즐기며, 매 순간 서로에게 솔직하고 진실되게 임하는 것만이 우리만의 삶의 지도를 그리는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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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친구와 제가 KBS1TV '이웃집찰스'에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이웃집찰스'는 한국에 사는 다양한 외국인 이웃들의 이야기를 그리는 프로그램인데요, 남자 친구의 독특한 직업 이야기와 국제 커플의 일상을 만나보세요. 많은 시청 부탁드립니다:)

>>> 8.30(화), KBS1TV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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