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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Oct 28. 2022

죽음은 곁에 있었다.

불안함을 이겨낼 용기

불안은 내 삶의 유일한 동력이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한창 꿈을 꿀 나이인 10대 때부터 내 삶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많은 대한민국의 학생들이 그렇듯,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하면 좋은 삶을 누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에 오로지 공부만 하며 열심히 버텼다. 학교 수업, 야간 자율 학습, 학원, 주말에는 독서실이 유일한 생활 반경이었고, 그 외의 삶은 없었다. 사회가 짜 놓은 경쟁판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남들만큼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으니까. 화장실에 갈 때도 영어 단어장을 들고 가고, 부족한 잠은 책상 위 쪽잠으로 보충하며, 시간을 아껴 더 열심히 하는 방법밖에 나는 몰랐다. 시키는 대로만 달려온 탓일까? 20대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방향 없이 무조건 열심히 공부하는 기계가 되어 있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만이 유일한 동력이었다.


'취업만 하고 나면 하고 싶은 거 다할 수 있어~'
꿈, 사회 정의, 평등, 행복에 관해 밤새 토론을 하던, 개성 넘치던 친구들은 하나둘 비슷한 헤어스타일을 하고, 똑같은 정장을 입고, 동일한 인적성 시험에 응시하기 시작했다. 어렵사리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원하는 기업에 취업을 해도, 친구들은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 친구들의 현재에 미래의 내 모습이 보였다. 두려웠다.

'대학만 가면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어~'. 10대의 내 행복을 유예시킨 그 마법 같은 주문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왜 그땐 깨닫지 못했을까. 20대의 나는 취업이 인생의 목표인양, 사회가 만들어 둔 길 위를 버펄로처럼 다시 전력 질주했다. 하지만, 달리기만 하면 지치는 법이다. 타의든 자의든 멈춰야 할 때를 만난다. 11년 전 아름다운 가을의 중턱, 나는 인생의 첫 브레이크를 밟을 수밖에 없었다.


노을이 지던 10월의 어느 멋진 날이었다. 삶은 한 순간에 아빠에게서 내일을 앗아가 버렸다.‘XX 자동차 30년 근속 모범 표창장'. 아빠가 그 표창장을 우리 가족에게 자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아빠는 하늘의 별이 되었다. 늘 내일의 태양이 뜰 거라 생각했는데, 죽음이 바로 곁에 있었다. 아빠도 그렇게 생각하며 60 평생을 버텨온 것이리라. 결혼하고, 애들 졸업하고, 은퇴하고 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대기업에 취업한 아빠는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엔진이나 마찬가지였다. 회색 작업복을 입고 2~3교대를 하며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과 회사의 성공에 자신의 삶을 바쳤다. 우리 가족은 가끔 방학 때 여행을 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내 머릿속에 남은 아빠의 모습은 작업복을 입고,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모습이다. '회사-집', '학교-집'이라는 각자의 쳇바퀴 생활을 반복하느라 아빠와 나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했다. 우리 가족의 외로운 울타리였던 아빠. 그런 아빠는 말고사를 끝내고 내가 집에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어느 날, 한순간에 하늘의 별이 되었다.


아빠의 삶은 어땠나? 아빠는 무얼 좋아했나? 새하얀 장례식장에서 아무리 생각하려 해도 머리는 새까매졌다. 잘 모르겠어... 정기적인 2 -3 교대, 생체 리듬이 바뀌는 일을 30년간 해 온 아빠. 그 고단함을 알기엔 나는 너무 어렸다. 새하얀 국화꽃에 둘러싸인 아빠를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아빠는 내 눈앞에 있는데, 아빠는 이 세상에 없었다. 삶과 죽음은 한 끝 차이구나. 아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무한하다 생각했던 삶의 유한함과,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음을 깨닫는 시간이자, 나만의 답을 찾아본 적이 없던 내가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질문했던 시간이다. '딸아, 삶은 유한하다. 너만의 답을 찾아보렴'

도대체 왜 사는 거지? 삶이란 뭘까? 답을 찾고 싶었다. 돈, 명예, 성공을 위해 지금의 행복을 미루는 게 당연한가? 우리가 행복해지는 길인가?러다가 내일 죽으면...?

늘 내의 행복을 그리며 불안을 참아왔는데, 처음으로 내일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절박함에 머리가 멍해졌다.


3학년 1학기에 돌연 휴학을 결심했다. 무얼 해야 할지 몰랐. 삶에서 엑셀이 아닌 브레이크가 필요했다 어떤 선택을 내릴 때 합리적인 이유 없이,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을 때가 누구나 있지 않나. 친구들은 자격증이나 어학 점수 준비로 바쁘던 그때, 휴학 후에도 자습실에만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때 존경하던 한 교수님은 가까운 나라부터 여행을 하라고 조언해주셨다. 익숙한 문화권부터 조금씩 서서히 삶에 대한 관점을 넓히는 방법이었다. '혼자 여행을 하기엔 돈도 없고 용기도 없는데...' 사치가 아닐까 싶다가도, 정처 없이 걷다 보면 어떤 답이라도 구하지 않을까하는 절박함이 솟아올랐다.


그렇게 스물셋, 난생처음으로 홀로 대만, 홍콩, 베트남을 거쳐 처음으로 유럽 대륙을 밟았다. 내 인생의 사회적 거리두기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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