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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Feb 01. 2023

영국인 아빠가 생겼다.

예비 시아버지가 채워 준 아빠의 부재

'도희는 아버지가 안 계시니까, 우리 아빠를 도희의 아버지라 생각해. 아빠는 생각지도 못한 관점을 주시거든'


최근 고민거리가 생겨 힘들어하던 나에게, 남자친구가 예비 시아버지랑 이야기를 나눠보는 게 어떨까 제안했다. 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를 남자친구나 친구들에게 나누긴 했지만, 우리보다 수 십 년을 더 산 어른의 지혜를 구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제안이었다. 그의 한 마디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가 고민하는 것에 대해 잘 알고 계신 만큼, 현실적인 대안과 어른의 지혜를 나눠주실 수 있을 거라는 말과 함께.


결혼도 하기 전에 우유부단하거나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게 괜찮을까? 멋진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데, 나에 대해 안 좋은 인상을 받으시면 어떡하지? 시아버지께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고민을 털어놓기도 전에 또 다른 고민이 생겼지만, 남자친구Be yourself(너 자신 모습 그대로를 숨기지 마)라고 응원해 준 덕분에 아버님께 나의 고민을 나누기로 했다.


지난 주말 저녁, 작은 휴대폰 스크린 너머로 8,000km 넘게 떨어진 영국에 계신 예비 시아버지를 만났다. 남자 친구가 1주일 전 아버지와 영상 통화 약속을 잡았는데, 영국과 한국의 9시간 시차 때문에 모두가 일하는 평일에는 통화를 하기가 어렵기에 전화통화 시간도 미리 약속을 해야 한다. 소중한 주말에 내 고민과 한탄을 들어주시기 위해 작은 폰 스크린 앞에 자리하신 예비 시아버지를 보자마자, 울컥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매일 만나는 은 사람들 중 우리의 이야기에 온전히 귀를 기울여 주는 사람은 몇인가. 시공간을 넘어 당신의 마음과 시간을 써주신 그 마음에 고민을 나누기도 전에 위로가 되었다.


'잘 지내니? 주말은 어떻게 보냈니?'

간단한 안부를 묻고 남자친구와 그의 아버지는 내가 편히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 덕분에 편안하지만 조금은 부끄러운 마음으로 혼자 끙끙 삭혀만 온 내 고민을 두서없이 늘어놓기 시작했다. 고민이 잘 전달되고 있는 건지는 몰랐지만, 비 시아버지묵묵히 내 이야기 귀를 활짝 열어주셨다. 대화 중간중간에 궁금한 것을 물어보시며. 약 30~40여분 동안 나의 아무 말 대잔치가 끝나고 예비 아버지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당신의 생각을 나눠주셨다. '걱정과 두려움에 압제되지 말고, 생각하는 일을 그냥 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독려와 함께.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는 말이 이런 거구나. 온전히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시는 어른이 계시다는 것에 마음에 잔잔한 진동이 울렸다. 완벽한 답을 내려주시진 않았지만, 버님과의 대화 끝에 나는 안정감을 찾고, 고민하는 문제를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용기를 얻었다. 내가 생각지 못한 현실적인 조언도 빼놓지 않으신 덕분에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도 조금은 더 분명해진 것 같다. 이라는 정글을 수 십 년 먼저 헤쳐 온 어른의 말씀에는 뼈와 살이, 내가 스스로 구할 수 없는 지혜가 있다.

20대 초에 아빠가 돌아가시고, 어느새 아빠의 부재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어버려서일까? 삶의 무게가 무거운 엄마에겐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고, 아빠에겐 털어놓을 생각조차 못했는데... 예비 시아버지 덕분에 부모에게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는다는 게 어떤 건지, 나는 어떤 부모가 되고 싶은지 자문해 본다. 나는 참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아니, 참된 어른이 되기 위해 떤 것을 배우고 나눠야 할까?

예비 시아버지에게서 나의 아버지를, 미래의 내 모습을 보았다.


지난 봄 영국에서 만난 짝꿍의 가족들

소중한 아빠를 나눠 준 짝꿍에게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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