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컬쳐커넥터 김도희 Feb 22. 2023

웨딩 플래너 대신, 우연과 불확실성에 베팅합니다!

한국 영국을 넘나드는 국제 결혼 준비 대작전

'도희! 드디어 그 포토그래퍼가 연락 왔어!'

똑똑 내 방문을 두드리자마자 그가 상기된 표정으로 외쳤다. 반가운 소식에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3주 뒤 영국에서의 웨딩 촬영을 위해 사진작가를 찾고 있는데, 우리가 원하던 작가가 드디어 회신이 왔다는 소식이었다. 이메일을 보낸 지 4일째였다.

'Yay(아싸)!!!!!!'

신나서 방방 뛰던 나를 남자 친구는 잠재우며, 아직 신나긴 이르다고 찬물을 끼얹었다. 넘어야 할 벽이 하나 더 있다고.

'우리가 촬영을 하고 싶은 그 공원에 다시 이메일을 보내고, 답장이 안 오면 다시 전화를 하자. 지난주 이메일을 3통이나 보냈는데, 아직 답장이 없어.'

웨딩플래너 없이 결혼을 준비하는 것은 산을 넘는 것과 같구나. 한 고개를 넘으면, 또 다른 고개가 눈앞에 나타난다.


올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끝자락, 영국인 남자 친구와 나는 결혼을 앞두고 있다. 결혼을 약속하고 맺은 우리의 첫 서약은 '우리 스스로가 웨딩 플래너가 되어 우리만의 결혼식을 만드는 것'. 플래너를 고용하는데 드는 값비싼 비용도 부담스럽지만, 누군가 골라주는 선택지 안에서 제한된 선택을 내려야 한다는 데에 대한 약간의 거부감과, 세상에 하나뿐인 우리 결혼식을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들어 나가고 싶다는 바람에서였다.

'나는 웨딩플래너 없이 결혼을 준비하고 싶어. 이것저것 우리 스스로 찾는 게 힘들고 피곤할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함께 해 나가는 재미와 성취감도 클 거라 생각해'

작년에 프러포즈를 받고 나서 웨딩플래너 없이 결혼을 준비하겠다는 나의 단호한 선언에, 남자친구는 고맙게도 흔쾌히 응해주었다. 퇴근 후나 주말마다 필요한 업체를 찾아 연락하고, 방문하고, 일정과 가격을 조율하는 일상이 이렇게 힘들 줄은 그때는 몰랐다. 남자구가 웨딩 플래너로 투잡을 뛰는 것과 같은 일상에 살짝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인터넷 검색과 친구 및 동료 찬스 덕에 마음에 쏙드는 웨딩 베뉴와 웨딩 반지 가게를 찾다. 남자 친구 예복은 웨딩 박람회, 지인 소개 그리고 블로그 후기에서 본 업체를 위주로 상담 신청을 해두었다. 한국에서 스튜디오 사진은 찍지 않기로 했다. 공장식 스튜디오의 인위적인 조명 아래서 어색한 포즈와 웃음을 카메라 셔터 소리에 맞춰 재빠르게 지어야 하는 것부터 너무 피곤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수 백, 수 천 명의 사람들과 비슷한 사진을 가지고 싶지 않아서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늘 남들과 다르지 않은 선택을 내리는 데 익숙해서일까. 심지어 우리는 평생에 한 번뿐인 결혼사진도 남들이 다 하는 대로 찍는다. 각자의 사랑에는 수 만 가지 사랑의 모양, 질감, 이야기, 무게, 추억이 새겨져 있을 텐데, 그 사랑을 두 사람만의 관점으로 더 온전하게 표현할 수 있다면 더 오래 기억에 남지 않을까?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곳에서 자연스러운 우리의 모습과, 결혼을 준비하며 느끼는 오만 감정을 액자에 예쁘게 담고 싶었다.


'촬영은 한국에서 할까? 영국에서 할까?'

'사진작가는 영국에 사는 한국 작가로 할까? 영국 사람으로 할까?'

'영국에서 한다면, 촬영은 어디서 해야 할까? 런던? 에든버러? 아니면 남자친구 고향은 어떨까?'

'드레스는? 메이크업과 헤어는 어떡하지?'

선택지가 늘어나니, 고민할 거리도 2배로 늘었다. 하지만 늘어난 선택지는 선택 장애라는 부담을 주기보다,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익숙지 않은 경험을 누려볼 수 있는 용기!


작가를 물색하기 전, 색감, 촬영 구도, 포토샵 등 촬영해 관한 모든 것을 한국인 관점에서 예쁘게 다룰 줄 아는 한국 사진작가를 찾을지, 영국인 사진작가와 촬영을 함께할지 고민을 한참 했다. 결국 영국에서 찍는 만큼, 사진에 영국스러움과 사랑하는 남자 친구의 문화가 온전히 담기면 좋겠다는 마음에 영국 작가를 선택했다.

'우리와 결이 안 맞는 사진이 나오면 어떡하지? 의사소통을 하며 잘 찍을 수 있을까?'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기도 했지만 이번 기회가 아니면 이 낯선 모험의 기회를 다시는 못 만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위험을 감수하기로 했다. 사진에 담기는 관점, 순간, 색감, 분위기가 꽤나 낯설 테지만, 어떤 결과물이 나오든 간에 낯선 환경에서 낯선 사람과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작업한 기억만은 평생 반짝반짝 빛날 테니까.


그의 고향

촬영지는 남자 친구의 고향으로 정했다. 영국을 대표하는 런던에서 찍을까, 풍광이 아름다운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찍을까 고민했지만, 평생 그가 자라온 추억이 담긴 동네를 우리의 사진 속에 담고 싶어 내가 제안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 그의 고향에서 활짝 웃고 있는 우리 모습을 아이들과 함께 보는 상상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드레스는 한국에서 미니 드레스를 구매하고, 메이크업은 직접 하기로 했다. 화려하고 풍성한 드레스 대신 캐리어에 간편하게 들고 갈 수 있으면서도, 결혼하고 나서도 예쁘게 입을 수 있는 원피스 형태의 드레스를 찾고 있다. 메이크업은 동서양의 스타일이 너무 달라, 메이크업만큼은 서양 언니들 손에 맡기기가 두려웠다. 대신 남은 3주간 열심히 유튜브를 보며, 내 피부톤, 얼굴 형에 맞는 메이크업 방법을 배워보려고 한다. 손재주가 없어 두렵지만 이 역시 내가 넘어야 할 산이겠지! 참에 메이크업이나 배우면 되지.


웨딩플래너 없이 결혼을 준비하는 일, 생각만큼 피곤하긴 하지만 생각보다 어렵지만은 않구나.

다양한 선택지 안에서 나만의 기준을 세우고, 취향이 없는 나의 취향을 깨달아가며 모험을 즐기는 과정, 이 과정이 피곤하기도 하지만 참 즐겁다. 웨딩플래너 없이 결혼 준비하기, 매사의 결정이 매일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에서 유일하게 맛볼 수 있는 짜릿한 모험이 되어 주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국인 아빠가 생겼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