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꿈이 있다는 말은 참으로 멋진 말이었다. 지금 당장은 실현가능하지 않은 것처럼 보여도, 막연하게나마 그 꿈을 품고 있으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는 알 것 같았다. 실현 불가능해 보여도 적어도 꿈은 내가 어디로 향하고 싶은지, 향해야 하는지 밝혀 준다는 점에서 삶의 나침반이 되어주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꿈을 잊고 살았다는 걸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사실 내 삶엔 꿈이 있는 줄 알았는데, 선명하게 빛나는 꿈이 없다는 걸 자각한 셈이다. 돈 벌기, 가사, 출산, 가족계획, 이사 등 매일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에 매몰되어 하루하루 닥치는 일들만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인생의 큰 그림은 고사하고 일상을 살아 냈다. 열심히 산 것 같긴 한데 무언가 공허했던 이유가 꿈의 부재에 있었구나.
어느새 꿈의 후보를 고민할 때도 그 꿈들이 실현 불가능한 건 아닌지, 무모한 건 아닌지 먼저 계산기를 두드려보다 보니, 아무런 꿈도 꾸지 못하게 됐다. 모든 꿈은 실현 불가능해보기 마련인데. 어떤 꿈이라도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현실의 수많은 장애물을 헤쳐나가야 하는데, 나는 그 장애물이 무서워서 어느 순간 그 꿈을 꾸기 조차 포기한 게 아니었던가. 한 번 작아진 생각의 크기는 나도 모르는 사이 무한한 삶의 가능성을 닫고 있었다. 내 삶뿐만 아니라, 우리 부부의 삶을.
"J, 우리 만의 북극성이 없는 것 같아. 열심히는 사는데 뭔가 뚜렷한 목표 없이 흘러가는 듯 사는 느낌?"
결혼 후 남편과 우리 공동의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문득 이야기를 꺼냈다.
"J가 대만에서 달성하고 싶은 단기적인 목표는 뚜렷하고, 나는 사실 그 목표를 지지해 주는 게 지금의 목표이긴 한데... 뭔가 가족 공동체로서 우리가 그리는 삶이 조금은 불명확한 것 같아."
내 말에 남편도 생각이 많아진 눈치다. 하지만 매사에 신중하고 현실주의자인 남편은 말을 아낀다.
"1주일 동안 우리가 가족 공동체로서 이루고 싶은 것에 대해 생각해 본 후,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때? 어디에 살고 싶은지, 언제 어떤 모양의 집을 사고 싶은지와 같은 꿈도 좋고, 세계여행하기와 같은 허황된 보이는 목표도 좋고... 그 어떤 것이라도 괜찮아."
남편이 지긋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우리는 1주일 동안 각자가 꿈꾸는 우리 가족의 모습을 생각해 본 후 다음 주 가족회의 시간에 논의하기로 했다.
출처: 넷플릭스
오늘 남편과 함께 넷플릭스 영화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를 보았다. 미국 장거리 수영 선수 나이애드가 쿠바에서 플로리다 키웨스트까지 아무런 안전 장비 없이 종단하는 도전 이야기. 28세에 똑같은 목표에 도전했다 실패했던 나이애드는 30여 년이 흘러 61세의 나이로 다시금 그 목표에 도전한다. 자신이 늘 꿈꿔왔지만 이루지 못했던 그 목표에 노화된 몸으로 스폰서와 팀도 없는 더 열악한 상황에서 말이다. 남들이 다 미쳤다고 안될 거라는 말을 듣고도 그녀는 자신의 몸을 단련하고, 치열하게 훈련하고, 스스로 스폰서를 찾아 도전하고 또 도전한다.
단 한 번에 성공했더라도 그녀의 이야기는 기적적으로 세상에 소개됐겠지만, 그녀는 3년에 걸쳐 총 다섯 번 도전한 끝에 64세의 나이로 자신의 목표를 이룬다. 코치, 의사, 선장, 항해사 등 그녀의 항해를 함께한 40여 명의 크루 들과 함께.미국 땅을 밟자마자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대중과 기자들에게 이 3가지를 전달한다.
여러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 딱 3가지가 있어요.
1.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2. 꿈을 꾸는 데 늦은 나이란 없습니다. 3. 그리고 수영은 고독한 스포츠 같지만, 사실은 팀 스포츠입니다.
쿠바에서 키웨스트까지 수영해 건너기. 누군가에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인생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도전일지라도 나이애드에겐 단 한 번뿐인 소중한 인생에서 꼭 이뤄내고 싶은 꿈이었다. 그녀는 거듭되는 실패에도 포기하지 않고 될 때까지 도전해 결국 꿈을 이뤘다. 그녀가 꿈을 이뤄낸 힘에는 그 꿈에 대한 간절함과, 그 꿈을 이루기 위한 현실에서의 치열한 노력도 있었지만, 나는 그 무엇보다 그 꿈의 선명함이 그녀의 도전을 성공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꿈은 선명한 만큼 간절해지니까.
결혼 후 가장 달라진 점이 있다면 삶의 모든 중대한 선택을 이제는 가족 단위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나와 남편 개별적인 이 두 존재가 가족을 구성하는 만큼 각자가 가진 생각의 크기와 꿈의 선명함은 중요하다. 그만큼 우리는 더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탐구할 수 있고, 더 명확한 목적지를 함께 그릴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