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일 아침 7시 58분, 대만에 온 지 한 달이 다 되어 가던 날 여느 때처럼 평온한 아침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남편은 책상에서 공부를 하고, 나는 바닥에 앉아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그 여느 때처럼.
쏜살같이 책상 밑으로 벌벌 떨며 숨은 건 본능이었다. 바닥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집이 세차게 좌우로 흔들렸다. 열어두었던 베란다 문이 벽에 부딪히며 쿵쾅쿵쾅 소리를 냈고, 베란다에 걸어두었던 빨랫감은 풍선인형처럼 이리저리 흔들렸다. 주방에 세워 둔 도마와 식초, 간장병이 쓰러졌고, 건물에서는 어디선가 삐걱삐걱 소리가 났다. 지진이었다. 대만을 뒤 흔든 7.5 규모의 강진. 대만에 온 지 한 달도 안 된 시점이었다. 지진은 대만 수도 타이베이에서 100km 이상 떨어진 대만 동부 화롄 지역에서 일어났지만, 타이베이에서도 심한 진동이 느껴졌다.
지진이 일어난 당시 우리 집
"엄마... 엄마.. 엄마..."
책상 밑에서 책상다리를 부여잡고 덜덜 떨며 엄마만 애타게 찾았다. 좌우로 흔들리는 건물을 보며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심한 진동에 공포가 몰려왔다. 생애 처음으로 체감하는 지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던 나는 남편에게 "나 내려갈래... 내려갈래..."를 반복했다. 우리 집은 23층이다. 23층에서 내려간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지만, 그때의 나는 이 아파트가 무너질까 봐 너무나 무서웠다. 이제야 본 진이 40~50초 정도 지속됐다는 걸 알지만, 그 당시 체감하던 시간은 어찌나 길던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지진에 울먹이며 덜덜 떨다 보니, 어느새 대자연의 힘이 잦아들었다.
"It's okay... It's okay..."
남편 역시 태어나 처음 겪는 지진에 당황한 기색이었지만, 그는 언론인 정신을 발휘해 우리 집 내에서 경험하는 지진의 순간을 기록했다. 나보다는 침착하고 이성적인 남편은 어쨌든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어쩔 수 없지"라는 마음이었단다. 나는 지진이 일어난 당일은 물론 며칠 내내 조그마한 진동에도 어지러움과 무서움을 느끼고, 여진의 공포에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벌벌 책상 밑에서 떠는데 눈물이 찔끔 나왔고, 죽음이 떠올랐다. 죽음이 늘 곁에 있다는 걸 되새기려 하지만 막상 하루하루를 살아내다 보면 살아 있음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지 않나. 막상 이런 큰 자연재해를 직접 겪으니 너무너무너무 무서웠다.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에 종말이 온다 하더라도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고 했는데... 나도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사과나무는커녕, 며칠 내내 불안에 일상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했다.
중국어를 못하는 나는 계속 한인 교민 단톡방에서 지진 소식을 확인하고, 지진 대처법을 조사하고, 추천받은 지진 경보 앱에 미세한 진동이 느껴질 때마다 들어가 여진을 확인했다. 거대한 대자연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불안함을 당장 잠재우기는 역부족이었다. 여진이 하루에도 수 십 번 발생하고 있는데..
여전히 여진이 계속된다.
불안이 잦아들기 시작한 건,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어쩔 수 없다는 남편의 말을 받아들이면서부터다.
"지진이 일어나면 어쩔 수 없지. 지진이 언제 날 거란 보장도 없고, 그렇다고 늘 불안해하며 살 수는 없잖아 ㅎㅎ "
내가 공포에 질려 '한국에 가야겠다, 집에서 나가 있어야겠다' 말할 때마다 남편은 T의 사고로 침착하게 나를 달랬다. 그리고 대만의 우수한 지진 대처 능력에 대한 기사들을 공유해 주며, 너무 불안해하지 말라고 안심시켰다. 이성적인 남편의 설득력과 함께 대만에서 오래 사신 교민 분들의 이야기도 도움이 됐다.
"대만은 지진이 잘 일어나는 나라라 내진설계가 잘 되어 있어요. 특히 20여 년 전 큰 지진을 겪고 나서, 건축법도 강화되고, 건물들도 보강되고 지진 대처도 잘해왔어요."
"대만은 1년에 지진이 1,000회 이상 일어나는 지역이에요. 하루에 세 번 꼴이죠. 그거 다 신경 쓰면 일상생활 못해요~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먼저 갑니다~' 하고 인사하면 돼요"
지진이 났을 때 정말 벌벌 떨면서도 흔들리는 아파트를 보며 그 생각을 했다.'내진 설계 참 잘 되어 있네..'
지진이 대만을 강타한 그날, 대만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와 남편의 안부를 확인하는 메시지에 대만 친구의 안부를 물었더니 대만 친구가 말했다.
"오빠, 지진이 컸는데 괜찮았어요?"
"지진에 익숙해서 괜찮아. 그리고 내 사무실은 4층이야, 도망가기엔 늦었어. 그래서 일을 계속해ㅋㅋ"
해탈인 걸까? 정부 대비와 대처에 대한 믿음인 걸까?
지진 후에도 대부분의 일상은 평화롭다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 어느 정도 죽음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생각했는데, 나는 여전히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구나. 지진을 겪으며 죽음을 떠올리니, 우리는 매일 뭘 이리 열망하며 열심히 사나 싶어 허무해지다가도 살고 싶다는 간절함이 들었다. 대자연 앞에서 인간은 그저 힘없는 존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생각에 겸허해지면서도, 자연의 힘이 이기적이게도 나의 생명은 지켜줬으면 한다. 사실 우리 모두의 생명을.
오늘도 여전히 여진이 계속된다. 강진 후 1주일, 지진에 대한 공포가 아주 없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삶은 계속된다. 유일하게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내게 주어진 하루를 당연하지 않게 생각하고, 불안에 휩싸이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리라. 마음을 단단하면서도 유연하게 먹고 혹시나 큰일이 생기면 후회 없이 웃으며 떠날 수 있도록.
(*이번 지진으로 사고를 당하신 모든 분들께 조의를, 구조 활동을 하시는 모든 분들께 경의를 포합니다)
어쩌다 대만에서 살면서 배우고 느끼는 것을 브런치북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대만의 역사/문화와, 결혼 후 퇴사한 국제 커플이 각자의 커리어를 만들어 나가는 이야기를 나눕니다.해외 생활에 관심 있거나, 결혼 후 커리어에 대해 고민하시는 모든 분들과 연결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