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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May 14. 2024

해외에서 낯선 사람을 조심하지 마세요!

대만 한식당에서의 기막힌 인연

연고도 없이 이주한 대만에 온 지 두 달째, 인연은 남편이 다니는 대학교 근처의 한 중국집에서 시작됐다. 우리 부부는 평일에 외식을 하지 않는데, 그날 마침 요리할 재료가 딱 떨어져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가기로 했다. 무얼 먹을까 한참을 고민하다, 우연히 전에 구글맵에서 본 한식 중국집이 생각났다. 간만의 외식 기회를 잡아 그리웠던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으러 간 우리. 생각보다 이른 저녁 식사를 위해 학교 근처 중국집으로 향했다. 오후 5시 20분, 이른 시간임에도 홀에는 꽤나 사람이 많았다. 종업원은 딱 두 자리 비어있던 2인용 식탁에 우리를 안내해 주었는데, 그 옆에는 단체석 예약이 되어 있었다. 으레 그렇듯, 대만 사람들의 단체 식사겠거니 했는데, 우리 음식이 막 나올 무렵 한 그룹이 들어오더니, 벽에 한국어로 된 현수막을 거신다.


눈에 익은 한국어가 반가워 속으로 '교민 분들 모임이신가 보다' 했는데, 옆을 돌아보니 전에 한 행사에서 만나 뵌 교민 분이 계시는 게 아닌가! 하필이면 이 시간에, 이곳에서 그것도 바로 옆자리에. 너무나 좁은 세상과 신기한 우연에 서로 놀라 인사를 주고받고, 남편도 어른들께 인사를 드렸다. 한국말을 잘하는 영국인이 한식 중국집에서 짜장면과 짬뽕, 탕수육을 먹고 있으니 신기하셨는지, 아니면 영국도 한국도 아닌, 대만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가 특이하셨는지 우연히 교민 분들과 이야기를 주고받게 되었다. 그리곤 오랜만에 먹는 한식인데 많이 먹으라고 갓 튀긴 군만두도 나눠주셨다. 역시, 한국인의 정에 남편도 감동받았다.

그 날의 인연을 만들어 준 중국집

감사한 마음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명함에 있는 연락처로 감사 인사를 드렸더니, 점심을 사주시겠다고 이튿날 또 초대해 주시는 게 아닌가! 명함을 받아가도 부끄러워서 연락 안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인데, 메시지를 받아 적극적인 친구들이라 생각하셨단다. 나와 남편은 그저 감사해 인사를 드리고 싶었을 뿐인데. 중국집에서 만난 선배님은 이튿날 맛있는 점심을 사주시곤, 본인의 멘토와 다름없는 대만의 멋진 대어른까지 소개해주셨다. 알아 두면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는 분이라며. 한 인연이 또다른 인연으로 확장됐다.


어른과 이야기를 나누며 한국인으로서 경험하신 22년의 대만 생활, 여든이 넘으신 어른의 입을 통해 한국과 대만의 과거, 현재를 여행하고 미래를 내다볼 렌즈를 얻었다. 정치적인 이유로 다른 나라와의 수교도 없이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대만의 동력과, 10년 동안 지속되는 저임금 속에서도 동아시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가 된 비결. 팍팍한 삶에서도 희망을 갖고, 생각보다 주체적인 삶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 내가 가진 대만에 대한 편견과 궁금증이 산산조각 났던 시간들. 순식간에 연결된 한 인연의 끈 덕에 아무런 연고도 없이 온 대만에서, 수박 겉핥기식으로만 경험하 대만을 조금은 더 가까이서 들여다본 시간이었다.

그 날의 우연이 시작된 골목

삶에서 우리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인연을 만든다. 어릴 때에는 학교에서, 사회에 나와서는 직장이나 동호회 등 교육, 일이나 관심사를 기반으로 자연스레 공동체를 찾게 된다. 그런데 해외에서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연고도 없는 곳이라면. 그렇기에 우연히 쌓은 인연이 더없이 감사하고 소중하기만 하다. 그리고 그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것은 나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인사를 잘하고, 감사한 일엔 감사하다고 직접 표현하고, 궁금한 게 있으면 더 적극적으로 물어보고, 도움이 필요하면 정중히 도움을 구하되, 도움을 받은 일엔 반드시 은혜를 갚는 것.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순간순간의 진심에서 우러나온다. 그리고 그 순간이 돈독한 관계를 만들어 가는 씨앗이 된다.


사람과 사람의 신뢰가 깨진 시대. 안타깝게도 해외에 살면 특히 낯선 사람을 조심하라고 많이 듣지만, 내가 바른 생각을 하고 올바른 길 위에 있는 이상, 나에게 해가 될 사람을 만날 가능성은 적다고 생각한다. 혹여 만나더라도, 나의 판단력을 믿고 그때 거르면 된다. 대신 나는 좋은 생각을 하고 에너지를 가지면, 나에게도 좋은 인연과 환경이 주어진다고 믿는다. 그 에너지를 바탕으로 주어진 우연과 인연에 마음을 여는 일이 더 중요하다. 그러면 삶은 마법처럼 내게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준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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