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에서 고민하는 좋은 국가의 의미
당신은 대한민국이 마음에 드는가?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들 각자는 이 나라를 좋아하거나 싫어할 자유가 있다. 내가 이 나라를 싫어한다고 해서 누가 나를 해치지는 않는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또는 무엇을 해야 할까?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둘 있다. 하나는 다른 국적을 취득하는 것이다. 지난 100여 년 동안 강제로 다른 나라에 가서 살아야 했던 한국인도 많았지만, 스스로 이민을 선택한 사람도 많았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자발적 이민은 존중해야 마땅한 삶의 설계이며, 누구도 비난할 수 없는 실존적 선택이다.
모든 지구인에게 그렇게 할 자유와 권리를 무제한 부여한다면, 지금 당장 수십억 명이 그런 선택을 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내 마음에 들도록 국가를 바꾸는 길이다. 이것 역시 존중해야 마땅한 실존적 선택이다. 다른 국적을 취득한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한국인이 이 길을 걸었다. 이 일을 하기 위해 나라 밖으로 간 분들도 적지 않았다.
오늘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은, 다른 모든 국민국가가 그런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바친 열정과 헌신, 눈물과 희생의 산물이다. 나는 대한민국이 더 훌륭한 국가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애썼으며, 앞으로도 할 수 있다면 그 무엇이든 하고 싶다.
그렇다면 어떤 국가가 훌륭한 국가일까? 어떤 객관적 지표나 평가기준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종국적으로는 각자의 철학과 가치관에 따라 판단을 달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 정의를 세우고 모든 종류의 위험에서 시민을 보호하며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게 행동하는 국가"가 훌륭한 국가라고 생각한다. 국가는 수천 년 전에 생겨났으며 오로지 악만 행하지도 오직 선만 행하지도 않았다. 오늘날에도 모든 국가들이 악과 선을, 불의와 정의를 동시에 행하고 있다. 그렇지만 국가는 과거에 비해 악을 더 적게, 선을 더 많이 행하는 쪽으로 진화해왔다고 믿는다. 이것이 문명과 역사와 인간의 진보라고 생각한다.
- '국가란 무엇인가' 서문 中/ 유시민
2014년 유시민 작가님(전 장관)의 '국가란 무엇인가'를 처음 읽었다. 막연하게 나는 '북유럽으로 이민 갈 거야'라고만 떠들었었는데 어찌 보면 지금 내가 살길 꿈꾸던 북유럽 국가 중 하나인 '스웨덴'에서 살고 있는 걸 보니 참 인생이란 모를 일이다. 인생은 Birth와 Death 사이의 Choice 가 되는 점들이 실처럼 이어져 하나의 실타래와 같다. 그 실타래가 내 인생의 전체의 이야기라면 그걸 풀다 보면 한 개인의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는 거겠지.
나는 대한민국의 청년(靑年: 푸를 청, 해 년 / 신체적· 정신적으로 한창 성장하거나 무르익은 시기에 있는 사람)으로서 우리나라가 청년들에게 제시하는 미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직업이 꿈을 넣어 한 사람을 '규정' 지어버리는 사회, 삶과 선택의 다양성을 인정하기보다 말살하는 사회, 사회를 이루는 가장 기초가 되는 공동체인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기 어려운 사회, 사회적 약자를 보듬어주기보다 억압하는 사회...
2014년 대한민국의 청년인 친구들과 함께한 독서 모임에서 '국가란 무엇인가'를 읽고 나눈 기록을 다시 들춰보았다. 그 당시 한 친구가 내게 물었다.
'네가 생각하는 국가란 어떤 존재인가?'
'나에게는 국가란 선택의 존재이다. 단 나의 조국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해서 단지 방관하는 자가 되거나 홀연히 떠나는 국민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은 내가 큰 힘이 없기 때문에 큰 변화를 일으키지는 못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힘을 다할 것이다. 나는 그 길이 '교육'이라고 믿는다. 그 교육이 공교육이든 풀뿌리에서 시작되는 토론이든...'
'그렇다면 네가 꿈꾸는 이상적인 국가란?'
'나의 이상적인 국가란 사회적 약자를 보듬어줄 수 있는 곳이다. 미래에도 자본주의는 여전히 사회의 주요 이데올로기로서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을 것이고, 이에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인류의 역사상 교환 가치를 지니는 것은 언제나 존재했다. 그게 지금은 돈일 뿐. 다만 소득은 합리적으로 또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적법하게 발생해야 한다. 누군가가 일을 한 만큼 정당한 소득을 받든 투자를 통해 이익을 취하든 다양한 방법으로 자본을 늘릴 수 있지만 그 이익을 부당하게 취했거나 경제적 성장의 파이를 독식하고 함께 사는 민주사회의 구성원을 외면할 때 사회에는 균열이 발생한다.'
3년 전의 생각이나 지금의 생각이나 내가 생각하는 국가관과 이상적인 사회는 별반 다르지 않구나. '사민주의'가 잘 자리 잡은 사회. 그래서 나는 지금 이 곳 스웨덴에 몸을 담고 있는 것이겠지. 안타깝게도 3년 전에 내가 고민했던 우리나라의 문제를 여전히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있는 걸 보니 사회가 변하기가 참 어렵다고 느낀다. 오히려 2014년부터 우리는 더 어려운 한 해 한 해를 보내고 있는지도...
사회학자 오찬호 님이 '말하는 대로'에서 말한 것처럼 사회는 변하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목소리를 잃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목소리를 내지 않을수록 사회는 더 나쁜 쪽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나는 대한민국 시스템에 반기를 들었었고, 그 시스템에 속하면 사실 내 개인의 행복이 무너질 것 같아 스웨덴으로 도피유학이자 내가 생각하는 사민주의를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 엿보고 싶어 왔다. 지금 내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이 곳에서 내가 느끼는 것들을 많이 나누고,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들과 연대해 더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