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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Feb 22. 2017

스웨덴은 어떻게 좋은 국가가 되었을까?

좋은 국가는 훌륭한 오케스트라 연주와 같다

    일요일 저녁부터 '소복소복' 쌓인 눈은 우메오를 다시 겨울 왕국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곳에서는 눈이 정말 '소복소복' 내려 '소복소복' 쌓인다. 위도상 낮은 기온 때문에 11월부터 내린 눈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영상으로 기온이 올라갈 때면 길이 며칠 질척해지지만 짜증이 날 무렵 그새 눈이 다시 내려온 세상을 하얗게 덮는다. 눈이 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고 기온이 살짝 올라가 포근한데, 이번 주 내내 우메오의 하늘은 맑음이다!

    오늘은 학교 수업이 없는 날. 점심엔 3월 초에 아기를 낳는 스웨덴 친구를 위해 미역국을 끓여주기로 했다. 어제도 기숙사 친구들을 위해 짜장면, 카레라이스 치킨을 만들어 줬는데, 오늘도 미역국을 끓여주러 간다 하니 우리 어머니는 그곳에서 요리 공부만 하냐며 가끔 핀잔을 주시지만 나는 음식 나눠먹는 것이 너무 좋다. 음식을 통해 사람들이 모이고,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이야기 꽃이 피어나기 마련이고, 이야기 꽃에서 우리는 다른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게다가 임신한 내 친구 '이다'는 스웨덴 남부에서 올라와 우메오에서 남자 친구와 둘이 사는 데다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라 엄마의 마음으로 이것저것 챙겨주고 싶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사실 내가 '스웨덴'에 와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할 때가 있다. 하지만 문득 길을 걷다 보면 내가 '스웨덴'에 와 있구나라는 것을 깨달을 때가 있다. 특히 하늘 높이 솟은 나무들로 둘러싸인 숲을 볼 때 나는 나 자신을 '1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보게 되더라. 어제부터 '쾌청'한 하늘 덕분에 기분이 좋았는데 오늘도 맑은 하늘 아래 눈으로 덮인 숲길을 따라 학교를 향하던 중 문득 '내가 이 곳에 정말 와 있구나!'하고 새삼 깨달았다. 순간의 번쩍이는 깨달음은 '나는 왜 스웨덴에 왔는가?'라는 자각으로 이어졌고, 그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스웨덴에 살아보고 싶었다. 사람들이 살기 좋다고 입을 모아 말하는 북유럽 국가들 중 스웨덴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면이 꽤나 있기 때문이다. 이 비슷함을 바탕으로 내가 스웨덴에서 보고 배운 것을 나의 뿌리인 대한민국에 나누고 싶다는 작은 바람에서 스웨덴 유학을 결심했다. 책이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보는 것과 직접 살아보는 것을 다를 테니까.


     스웨덴은 다른 유럽 나라들보다 뒤늦은 사업화로 19세기까지 굉장히 가난한 나라였지만 현재는 전 세계에서도 손에 꼽히는 경제 강국이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아는 '타이타닉'호의 3등 칸에 탔던 많은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기 위한 스웨덴 사람이었다는 것을 아는가? 실제로 미국 미네소타주는 Swedish-American이 정착해 사는 곳이어서 곳곳에서 스웨덴의 문화를 많이 느낄 수 있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스웨덴과 우리나라는 재벌 의존도가 높다는 점이 비슷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성, 현대, LG 등 대기업 재벌들이 우리나라 경제의 중추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스웨덴에는 '발렌베리 가문'이 스웨덴 총생산의 30%를 차지하고, 시가 총액은 전체 주식 시장의 50%에 달한다. 이들은 금융(SEB 은행), 방산(Saab), 통신(Ericsson: 고종황제의 전화기를 설치한 회사가 스웨덴 회사였다), 항공(SAS), 전자(Electrolux) 등 다양한 분야에서 10개 이상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으며 스웨덴 사회에 이들이 끼치는 영향력은 우리나라에서 삼성이 끼치는 영향력 이상이다. 재벌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만,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은 스웨덴 갑부 명단에 이름을 올린 적이 거의 없다. 158년 동안 기업 경영으로 일군 부는 대부분 공익 재단에 넘겨져 있으며 가문 소유의 개인 재산은 ‘약소’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대신에 발렌베리 후계자들은 각 세대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남겨 기업의 수익에서 창출된 부를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실제로 발렌베리 가문의 여러 재단들은 스웨덴의 기초 과학 연구의 가장 큰 후원자다. 노벨상 수상자들도 이 후원 덕분에 연구를 시작할 수 있었고 세상을 변화시켜나갈 업적들을 해냈다. 이 외에도 발렌베리 가문의 후계자들은 늘 검소함을 실천하며 살며,  '존재하되 드러내지 않는다('Esse non videri')는 모토를 바탕으로 재단을 통해 스웨덴 사회를 발전시키는데 큰 공헌을 한 이들은 스웨덴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다고 한다.

(*KBS 다큐멘터리 '명견만리'에서 다룬 발렌베리 가문에 대한 동영상을 공유한다(클릭))



보편적 복지국가로 잘 알려진 스웨덴에서 이렇게 거대 재벌이 커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해 스웨덴에 관해 찾다가 스웨덴의 독특한 경제 모델 하나를 발견했다. '렌-마이드너 모델'이라고 불리는 경제 모델이었다. 이 모델은 스웨덴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산업적으로 호황을 누리던 시절, 인플레이션과 완전 고용에 가까운 높은 고용률을 달성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흔히,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실업률이 높아지기 마련인데 어떻게 스웨덴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었을까?

출처: http://blog.naver.com/darrel76/

'렌-마이드너 모델'은 스웨덴의 노동자 연합인 'LO'소속의 경제학자였던 '렌'과 '마이드너'가 만든 모델로, 쉽게 요약하면 시장 친화적인 정책과 노동자와 사용자 간 합의를 통해 평준화된 임금을 통해 대기업 위주의 경쟁력 있는 산업의 성장을 이끌어 내고, 경쟁력 없는 중소기업이 몰락되어 해고된 노동자들을 국가가 나서 '재교육' 시켜 급격하게 성장한 대기업의 노동 시장에 재흡수시킴으로써 경제 성장과 세수확보를 통한 사회 안전망 확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다는 것이다. 국가가 나서 재교육을 시킬 수 있는 재원은 평준화된 임금과 늘어난 고용을 통해 확보한 세수를 통해 확보한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국가가 시장 친화적인 정책을 펴는 것과 동시에 보편적 복지를 달성했다는 점이고, 임금을 합의하고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모든 과정이 노동자들과 기업들의 합의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사실 스웨덴의 전체 노동자들 중 80%가 LO라는 노동자 연합에 가입되어 있었고 거대 재벌 '발렌베리 가문'이 스웨덴의 전반적인 산업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합의가 용의 했던 점도 있다. 이를 이끌어낼 정치지도자가 있었던 것도 스웨덴의 행운이었을지도. 중소기업의 몰락과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 및 부자들의 잠정적 사회 이탈 문제 등의 한계점도 지니고 있지만 스웨덴은 이 모델을 통해 북유럽의 가난한 나라에서 지속적인 경제 성장과 더불어 '국가는 모든 국민을 위한 집이어야 한다'는 가치를 실현했다.

(*아래는 '렌-마이드너 모델'에 대해 흥미로운 글이 있어 아래에 공유한다>> 렌-마이드너 모델)

    공유한 글에서 필자가 말한 것처럼 노동 시장의 유연성이 높고 다기능의 숙련 노동자들이 많은 스웨덴에서 세계화로 인해 가속화되는 글로벌 시대에 얼마나 훌륭한 인재를 스웨덴에 남게 할 것인지 또는 유치할 것인지는 국가적 큰 과제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또 머지않은 미래에 기업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은 채 '프리랜서'로 각자가 브랜드가 되어 전 세계를 무대로 때에 따라 원하는 일이 있는 곳에서 일하는 노마드(Nomad)가 많아질 텐데, 이 자유로운 영혼들을 어떻게 국가에 기여하게 할 것인지는 이 노마드 영혼들이 성장할 수 있는 좋은 영양분을 국가가 얼마나 제공하느냐에 달려있지 않을까? 스웨덴도 풀어나가야 할 숙제가 많겠지만 스웨덴은 적어도 모든 사람들이 각자가 원하는 곳에서 자신의 소임을 다하도록 균등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스웨덴 정부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각 악기들이 제 고유한 소리를 잃지 않으면서도 다른 악기와 잘 어울릴 수 있도록 이끄는 것처럼 스웨덴 사회에서 그 누구도 낙오되지 않고 자신의 자유와 개성을 살려 사회에서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국가는 오케스트라와 같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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